식물에서 길을 찾다(최문형)
▣ 식물에서 길을 찾다(최문형 지음/넥센미디어)
* 188쪽
가로수로 대표되는 도시나무는 팔이고 다리고 어느 것 아나 마음 놓고 뻗을 곳이 없다. 땅 속 깊이 들여야 하는 뿌리는 콘크리트 벽에 막혀버리고 대기 속으로 난장 춤을 출 가지는 꺾이고 다듬어진다. 나무의 본성이라면 자연과 자유인데
도시나무는 부자연과 억압으로 포로가 되어 숨죽여 산다.
인간의 포로가 되어 인간의 기준에 따라 살아야 하는 나무는 애써 키운 가족들을 봄마다 잃고야 만다. 그렇게 나무는
길들여져서 수십 년을 넘기고 백 년을 훌쩍 산다. 셀 수 없는 상처 속에 가족을 잃은 아픔을 꽁꽁 쟁여두고서 말이다.
* 192쪽
그렇다! 나무는 식물은 하늘만 우러르면 된다. 태양만 맘껏 조이면 된다. 자연의 나무는 하늘로 하늘로 기세 있게 오르니까. 파초가 자라듯이 말이다. 문명 속에 사는 나무와 인간 모두, 땅을 딛고 일어나 태양을 바라며 파초처럼 꿈을 이루고 싶다.
* 198쪽
우리는 서로에게 꽃이 된다. 내 마음의 정수(精髓)를 상대에게 열어 보이고 그것을 나누면서 우리 서로는 수분매개자가 된다. 크게 피우고 자신 있게 많이 열어 줄 때 우리는 좋은 친구를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서로의 씨앗, 서로의 꿈을 중매해주는 소중한 존재가 된다. 되도록 먼 곳에 있는, 되도록 이질적인 친구들은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할 가슴 설레는 곳으로 안내해 주기도 한다. 꿈의 실현에도 동종 교배, 자가수분이 큰 도움이 못되기 때문에 먼 곳의 친구가 좋다. 양분을
온축해서 필생의 의지로 아음다운 꽃을 피우는 일, 꽃처럼 살아남기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멀리서 가까이서 온 소중한 벗들과 조우한다. 향기와 화밀로, 이름다운 양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꽃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 230쪽
멋진 글씨체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는 유배지에서 겨울나무를 그려서 제자 이상적에게 주었다. 유명한 ‘세한도’이다. 이상적은 추사가 제주도로 유배 간 뒤에도 한결같이 그를 대했다. 통역관이었던 그는 청나라를 드나들며 구하기 어려운 서책들을 김정희에게 보내 주었다.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던 추사에게 서책은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상적의 변함없는 마음에 감동한 김정희는 그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다. 하지만 가진 것이 없던 그는 한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는 소나무와 잣나무 그림을 그려 제자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추워지고 나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고 했는데, 그대가 나를 대함이 귀양 오기 전이나 그 후나 변한 것이 없다. 그러니 그대는 공자의 칭찬을 받을 만하지 않는가?”라고 적었다.
* 233쪽
찾아온 것은 떠나가게 마련이다. 나뭇가지에 쌓인 눈처럼 사라지게 되어 있다. 푸르른 생명력만 잃지 않는다면 새 봄을 향한 소망만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살아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