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치원 행사나 공원, 마트에 가보면, 아이를 데리고 나온 조부모를 만나는 일이 심심치 않다.
실제로 노동부가 지난 2005년 ‘일하는 엄마의 영아 보육 실태’를 조사한 결과 70% 이상이 조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육시설(15%), 가사도우미(10%)에 비해 압도적인 수치라 할 수 있다. 갈수록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데 비해, 맘 놓고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육아 시설이 부족하고, 다른 방법을 이용하는 것보다 육아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 높은 집값과 물가 때문에 자녀들이 맞벌이를 할 수 밖에 없고, 조부모들 또한 은퇴 후 마땅한 직업이 없는 상태에서 자녀들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경우, 육아를 담당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 실정이다.
그러나 이렇게 조부모들의 황혼 육아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인 다방면의 건강 문제를 유발하기도 한다. 가장 직접적으로 흔히 발생하는 신체적 문제는 요통, 관절통과 같은 근골격계질환인데, 수시로 체중이 4~10kg에 이르는 아기를 들어올리고, 씻기고 하는 과정에서 이미 노화 및 퇴행 과정에 있는 신체에 무리한 하중이 가해지게 됨으로 인해 기존 질환이 악화되거나, 진행하게 될 수밖에 없다.
황혼 육아와 관련한 건강 문제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비슷하게 일어나는 현상이다. 2003년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은 46~71세의 은퇴한 간호사 약 5만 명을 대상으로 4년간 심장질환의 위험도를 전향적으로 조사하였는데, 놀랍게도 일주일에 9시간 이상의 육아를 담당했던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와 비교하여 55%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연구자들은 이에 대한 정확한 의학적 연관성을 밝히지는 못했으나, 육아와 관련된 스트레스로 인하여, 심장질환의 발생이 증가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육아를 하면서 본래 노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각종 만성질환(고혈압, 고지혈증, 당뇨 등)에 대한 관리 및 운동이나 식사조절과 같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이 원인으로 추정되었다.
원래 영아를 돌보게 되면 밤에 자주 일어나 돌보게 되면서 수면에 방해를 받는 일이 많은데, 이는 노인들에게 흔히 있는 수면장애를 더욱 악화시켜 늘 수면이 부족하고 깊이 자지 못하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고혈압이나 심장질환이 악화될 수 있고, 우울증, 식욕저하, 무기력함이 발생할 수 있다. 정신적으로는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손자라 할지라도, 친구를 만난다거나, 외출을 한다거나 하는 본인의 사회 활동과 떨어져서 장시간 아이와 함께 있음으로 인해 고립감, 외로움, 소외를 느끼게 되는 수가 많다. 이는 아이를 키우는 젊은 주부들과 비슷한 현상인데, 노인들은 좀더 쉽게 우울증에 걸릴 수 있는데다, 신체적으로도 벅차고, 경제적인 문제, 육아를 위해 자식과 함께 생활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가 겹치면서 좀더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조부모가 손자를 양육하는 것이 반드시 건강의 적이 되는 것만은 아니다.
손자의 재롱을 보면서 얻게 되는 기쁨은 장수의 기반이 된다고 할 정도로 큰 것으로 육체적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게 해줄 만한 큰 가치를 갖는 것 또한 사실이다.그러므로 노인의 육아에 대해 부모님과 자녀의 서로간의 깊은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며, 가능한 주말이라도 육아에서 벗어나 적절히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여유를 가지도록 하고, 노인은 본인의 만성 질환과 건강상의 문제를 스스로 관리하는데 소홀하지 않도록 하여, 위와 같은 육아로 인한 건강 악화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사회적으로도 부족하나마 보육시설의 확충 및 다양화를 통해 잠깐이라도 마음 놓고 아이를 맡기고 육아를 전담하는 노인이 쉴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법이 마련되어야 하겠다.
서울아산병원 일반내과 이은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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