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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모음305

거울 앞에서(이해인) 거울 앞에서 - 이해인 - 우리에겐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에겐 미워할 시간이 많지 않다 사랑할 시간을 많이 내면 미워할 시간이 줄어들고 미워할 시간을 많이 내면 사랑할 시간이 줄어든다 사랑하면서 떠날 것인가 미워하면서 떠날 것인가 한 번 미움은 열 번 사랑으로도 지워지지 않는다 2022. 10. 3.
부 부(함민복) 부 부 함민복 긴 상이 있다 한 아름에 잡히지 않아 같이 들어야 한다. 좁은 문이 나타나면 한 사람은 등을 앞으로 하고 걸어야 한다 뒤로 걷는 사람은 앞으로 걷는 사람을 읽으며 걸음을 옮겨야 한다 잠시 허리를 펴거나 굽힐 때 서로 높이를 조절해야 한다 다 온 것 같다고 먼저 탕 하고 상을 내려놓아서도 안 된다 걸음의 속도도 맞추어야 한다 한 발 또 한 발 *함민복 : 1962년 충북 충주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우울 씨의 일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등 출간.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윤동주문학대상 등 수상. 2022. 5. 25.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 : 프라하 출신의 오스트리아 시인 내 눈의 빛을 꺼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을 볼 수 있습니다, 내 귀를 막아주소서, 그래도 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이 없어도 당신의 이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내 팔을 부러뜨려주소서, 나는 손으로 하듯 내 가슴으로 당신을 끌어안을 것입니다, 내 심장을 막아주소서, 그러면 나의 뇌가 고동칠 것입니다, 내 뇌에 불을 지르면, 나는 당신을 피에 실어 나르겠습니다. 2022. 2. 25.
첫 마음 첫 마음 --- 정채봉 --- 1월 1일 아침에 찬물로 세수하면서 먹은 첫 마음으로 1년을 산다면, 학교에 입학하여 새 책을 앞에 놓고하루 일과표를 짜던 영롱한 첫 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사랑하는 사이가, 처음 눈을 맞던 날의 떨림으로 내내 계속된다면, 첫 출근하는 날, 신발끈을 매면서 먹은 마음으로 직장일을 한다면, 아팠다가 병이 나은 날의, 상쾌한 공기 속의 감사한 마음으로 몸을 돌본다면, 개업날의 첫 마음으로 손님을 언제고 돈이 적으나, 밤이 늦으나 기쁨으로 맞는다면, 세례 성사를 받던 날의 빈 마음으로 눈물을 글썽이며 교회에 다닌다면, 나는 너, 너는 나라며 화해하던 그날의 일치가 가시지 않는다면, 여행을 떠나던 날, 차표를 끊던 가슴뜀이 식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 2022. 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