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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가정, 가족

제 몸 떼어 내… 엄마 두 번 살린 딸

by 많은이용 2014. 12. 9.

제 몸 떼어 내… 엄마 두 번 살린 딸

 

-엄마에게 臟器(장기) 준 나명주씨
10년 전엔 소장, 이번엔 신장… 간병하다 직장 못 구해
약값만 月백만원에 생활고… 수술 거부하던 엄마는 눈물만

나명주(36)씨의 소장(小腸)은 3.5m다. 길이가 보통 사람의 70%다. 스물여섯 처녀 때 1.5m를 떼줬다. 신장도 하나뿐이다. 지난달 한쪽 신장을 떼는 수술을 받았다. 그의 소장 1.5m, 왼쪽 신장은 어머니 이정숙(67)씨 몸속에 있다. '긴병에 효자 없다'지만 딸은 제 육신을 두 번씩이나 떼주며 어머니의 10년 투병을 함께해왔다.

홀어머니에 외동딸, 의지할 곳 없던 모녀의 시련이 시작된 것은 2004년이었다. 명주씨가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찾던 때였다. 어머니 이씨가 소장과 대장으로 이어진 혈관이 막히는 '장간막혈전증'이라는 희귀병 진단을 받았다. 소장 대부분이 썩어 잘라내야 했다. 누군가의 소장을 이식받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했지만, 당시 소장 이식은 국내에선 성공한 적 없는 수술이었다. 그때 딸 명주씨가 "내 소장을 이식하겠다"고 나섰다. 명주씨는 "저를 낳자마자 아빠와 헤어지고 홀로 키워주신 엄마가 죽어가는데 확률 따윈 중요치 않다"고 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성모병원 병실에서 나명주씨와 어머니 이정숙씨가 껴안고 활짝 웃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성모병원 병실에서 나명주씨와 어머니 이정숙씨가 껴안고 활짝 웃고 있다. 10년 전 어머니에게 소장을 이식한 나씨는 지난달 24일 자신의 왼쪽 신장도 어머니에게 이식하는 수술을 받았다. /오종찬 기자
2004년 4월 9일, 명주씨 소장 1.5m를 잘라내 어머니에게 이식하는 12시간 수술은 기적처럼 성공했다. 국내 첫 소장 이식 성공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경기도 부천의 2000만원짜리 전세방에 살던 모녀를 위해 서울성모병원이 수술비 8500만원 중 6500만원을 부담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수술 뒤 생활고는 더 심해졌다. 딸의 소장이 몸속에서 거부반응을 일으키지 않도록 어머니 이씨는 면역억제제를 계속 복용해야 했다. 그 약값만 매달 100만원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나오는 급여 70만원으로는 감당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간병하느라 직장도 못 구했던 명주씨는 학원 강사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그는 "과로로 쓰러진 뒤에는 카드 돌려막기로 병원비를 대야 했다"고 했다. 어머니와 딸이 함께 신용불량자가 됐다. 모녀의 힘겨운 사연은 수술 후 10년 만인 지난 8월 소장 이식 면역억제제에 대해 의료보험 혜택을 주도록 하는 정부 결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명주씨는 2011년 결혼해 아이를 가졌지만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가 끊길까 봐 혼인신고도 못 한 채 살다가 곧 헤어졌다. 이듬해 태어난 아들은 자신의 호적에 올린 뒤 정부가 어머니에게 지급한 부천 원미구의 43㎡(약 13평)짜리 주공아파트에서 세 가족이 함께 살았다. 어머니 이씨는 "소장 이식 수술 후 주변에서 딸이 아이를 못 가질 거라고 수군거릴 때 가장 마음이 아팠다. 딸은 미혼모가 됐지만, 외손자는 하늘이 준 선물"이라 했다.

불행은 끝난 게 아니었다. 강한 면역억제제 성분 탓에 어머니 이씨 신장이 망가진 것이다. 신부전증이었다. 병원에선 "이식에 필요한 신장을 구하려면 3년은 더 걸릴 것"이라 했다. 명주씨가 "그럼 내 신장을 이식해달라"고 했다. 어머니와 친척들은 "절대 안 된다"고 말렸다. 10년 전 소장 이식 수술을 집도한 이명덕(66) 교수조차 "그때 수술은 소장 이식이 절박한 많은 환자에게 희망을 주는 도전이었지만, 또 장기를 내놓는 건 무리"라며 반대했다.

명주씨는 포기하지 않고 주위 사람들을 설득했다. 그러다 올 6월, 어머니 상태가 급속히 악화돼 혈액투석마저 계속하기 힘든 상태가 됐다. 친척들과 이 교수가 고집을 꺾었다. "죽으면 죽었지 딸에게 또 짐이 될 수 없다"며 수술을 거부하던 이씨도 딸이 애원하자 결국 수술대에 올랐다. 이식수술 직전 명주씨는 병상에 누운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퇴원하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게 뭐예요?" 엄마의 답변은 뜻밖에 "쇼핑"이었다. "우리 외손자 장난감 사서 손에 쥐여줘야지." 명주씨가 말했다. "일어나기만 해요. 다 같이 손 꼭 잡고 가요."

지난달 24일 명주씨 왼쪽 신장을 어머니에게 이식하는 6시간 수술은 성공이었다. 서울성모병원 병상에 누운 이씨를 끌어안으며 명주씨가 말했다. "엄마, 얼른 집에 가자." 10년 새 딸 덕에 두 번 목숨을 건진 어머니는 말했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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