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규 교사의 ‘TED 활용 국어수업’_중등
대중 강연 TED로 말하기 능력 쑥쑥
글_ 한주희 교육평론 기자
TED는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에 관련한 전문가가 대중들에게 강연을 하는 형태를 말한다. 지금은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으며 다양하게 진행되는 TED를 국어수업에 들여온 선생님이 있다. 정명규 경남 하동 금남고 국어교사는 아이들이 ‘제2의 스티브잡스’가 되길 꿈꾸며 TED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말하기’ 수업을 만들어가고 있다.
수업은 대중 강연을 모티브로 했다. 객석은 교실이고, 강연자는 ‘아이디어’를 가진 자다.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도 학생들에게는 ‘알릴 가치가 있는’ 무언가다. 기술(Technology), 오락(Entertainment), 디자인(Design)에 관련한 전문가가 ‘알릴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를 대중들에게 강연해 인기를 모은 TED를 그대로 교실로 옮겨왔다.
청소년 삶 속 이야기로 TED 강연
‘내가 결혼을 한다면’
금남고 2학년 2반 전정윤 양은 미래 결혼계획을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경청을 하는 이들은 동 학년 3반 친구들. 국어수업 시간, TED를 활용한 특별수업에 초청돼 강연자로 교탁 앞에 섰다.
미래 남편으로 영화배우 하정우의 사진을 결혼식 사진에 떡 하니 합성해 놓으니, 아이들 사이에서 크게 웃음이 터진다. 첫째는 쇼트트랙 선수, 둘째는 개그맨, 셋째는 배구선수로 키울 거란 당찬 포부 속에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 담겨있다.
“내 둘째는 나의 체형과 성격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개그맨이 될 겁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걸 좋아하고, 하동여고 수학선생님의 권유도 있었기 때문이죠. 셋째는 초등학교 때 배구꿈나무에 들어갔다가 3일 만에 포기했던 쓰라린 경험 때문입니다. 제가 정말로 좋아하는 스포츠인데 말이죠.”
강연이 끝나자 큰 박수가 터졌다. 정윤이는 5분간 자신감에 찬 발표를 마치고 내려오고, 그 뒤를 이어 두 번째 강연자인 1반 이이정 양이 섰다. ‘연애란?’이란 주제에 여학생들의 눈이 더욱 반짝인다. 썸탈 때 팁, 연애할 때의 팁과 이별 후를 자세하게 소개했다. “남자친구에게 명품 지갑을 선물하고 3일 뒤에 차였다. 큰 상심에 빠졌지만, 이별 후 시간이 약이라는 교훈을 얻었다.”는 이정이의 말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큰 공감을 샀다. 정 교사가 아이들이 발표할 때 “그런 경험이 있었니?” 혹은 “좋은 팁이다.”며 관심을 보이자, 아이들은 경청하게 되고, 발표자는 더욱 신이 난 듯했다.
두 친구는 지난 10월 금남TED발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정명규 교사의 주도로 열린 이번 대회는 그간 수업 때마다 준비를 거쳐 모든 학년별로 치러졌다.
“공감할 수 있는 국어수업은 삶에서 필요한 능력을 배우는 일이지요. 말하기, 듣기, 읽기, 쓰기 역량을 키우는 일이 수업의 목표가 됩니다. 자기 내면에 있는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 스스로가 전문가가 됐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설명할 수 있느냐에 대한 고민은 TED를 수업에 끌어오게 된 계기가 됐지요.”
( TED로 발표한 PPT 자료 )
인생 로드맵으로 완성되는 수업
중간·기말고사나 방학 이후 마련되는 TED 특별수업은 아이들에겐 ‘제2의 스티브잡스’가 되어보는 시간이다. 정 교사는 아이들 발표가 끝난 뒤 다른 아이들의 TED 발표 사례를 소개하고, 자신의 다문화가정 한국어 교실 활동을 주제로 ‘다문화가정과 소통하기’ TED 발표로 수업을 이끌었다.
“내 생각을 남에게 전달하는 말하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정윤이와 “내 경험에 아이들이 호응해 신이 나서 얘기하게 됐다.”는 이정이는 무엇보다 말할 때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고 입을 모은다.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건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서입니다. 아이들이 입을 열고, 생각을 잘 전달하는 연습이 수업 때 꼭 필요한 이유이지요. TED 수업은 어떠한 새로운 수업이라기보다는 그간 해 온 발표나 듣기 영역을 집약했다고 볼 수 있어요.”
2011년 우연히 TED를 접한 정 교사는 로봇공학자인 데니스 홍 교수 등의 발표를 아이들에게 소개하며 “너희들도 언젠가 전문 지식을 전할 기회가 생길거야.”라며 아이들과 수업을 시작했다.
처음엔 관심 있는 내용을 PPT 형태로 만든 뒤 발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가, 이후 두 명이 함께 자료를 모아 발표하기→ 자신의 인생 로드맵을 설계한 후 발표하기→ 자신의 롤모델 발표하기 등 다양한 주제로 단계별 수업을 진행했다.
이때 룰은 간단하다. 5분 내외로 10개 내외의 PPT를 활용해 발표한다. 처음엔 관심사로 시작했다가, 그 후로 하고 싶은 일을 배우는 대학 학과를 찾아보고, 어떤 대학에 관련 학과가 있는지 선발 전형을 알아보게 된다. 롤모델을 찾은 후에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꿈을 시기별로 고민해보는 로드맵을 짠다. “30년 후까지 5년별로 삶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발표하게 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정 교사는 “아이들이 의외로 발표를 잘한다.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게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 보약공책. 각자 자신의 관심 분야를 스크랩한 후 노트에 요약한다 )
‘3분 씨부리기·보약공책’ 성공의 열쇠
TED 활동에 밑거름이 된 또 다른 비법이 있다. ‘3분 씨부리기’와 ‘보약공책’이다. 3분 씨부리기는 초임교사 시절부터 정 교사가 수업에 도입한 방법이다. ‘씨부리기’는 마음대로 이야기한다는 뜻의 사투리로, 3분간 아이들이 무슨 말이든 해 보는 시간이다. 수업시간마다 2명 정도 반 학생 모두가 돌아가며 참여한다. 이때 중요한 건 ‘책임지지 않는 말하기’라는 점이다. 어렸을 때 도둑질했던 이야기, 가출했던 경험, 과자를 먹다가 동생과 싸운 이야기 등등. 스피치가 아니기 때문에 가치 없는 이야기들을 조리에 맞지 않게 얘기해도 무방하다. 단 3분간은 꼭 ‘떠들어야 한다’가 유일한 규칙이다.
“말하는 주제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말을 여러 사람 앞에서 해보는 경험을 쌓는 일이 중요하지요.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도, 재미있게 말하지 못하는 아이도 씨부리기는 가능합니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무슨 말을 해도 교사는 인정하고 수긍해줘야 하지요.”
보약공책은 말할 수 있는 ‘거리’를 만드는 과정이다. ‘보약’은 내 삶에 도움이 된다는 의미로 이름을 붙였다. 각자 자신의 관심 분야를 스크랩한 후 보약공책에 요약하고, 한 달에 한 번 5~6명이 모여 얘기를 나누는 ‘보약 나누기 시간’도 가진다. 1년을 마무리할 때쯤 TED로 자신의 진로를 설계해 발표할 때는 보약공책이 중요한 나침반이자 발표자료가 된다.
좋은 수업은 “삶에 도움이 되는 배움”
“저도 내성적인 성격에 남 앞에서 말을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생 때부터 야학에 문을 두드렸고, 그 뒤 꾸준히 봉사활동을 하게됐지요. 제 삶의 경험과 지난 30여 년간의 교직경력 노하우를 집대성한 수업이 TED 수업입니다.”
정 교사는 2007년부터 9년째 진주다문화가정한국어교실 자원봉사교사로 결혼이주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사회활동은 그가 수업에서 아이들과 소통할 ‘말할 거리’이기도 하다. 지난해부터는 다문화가정 자녀를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엄마 나라의 말과 문화를 가르치는 ‘토요무지개교실’을 열어 이중언어 교육을 시작했다. “배움은 삶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정 교사는 “배우는 사람의 삶에 도움이 되기에 학생의 눈과 입에 미소가 지어지는 수업이 좋은 수업”이라고 말한다.
- 자료출처 : 주간교육신문사 교육평론 2016. 2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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