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비빔밥 포차 부부 "2억 기부의 맛, 최고네요"
[오늘의 세상] IMF때 부도 맞은 남편… 2억 기부하던 날 22년만에 양복 입었네요
사업 망하고 떡볶이 장사 시작… 김미자·최근영씨 각각 1억씩 '아너 소사이어티' 나란히 가입
건설사 망하고 떠돌이 트럭 노점… 서울·제천 거쳐 2002년 강릉으로
17년간 경포대 한번 안가고 장사, 기름값 없던 추운 겨울 못잊어
어르신들 난방비 지원하고 청소년 12명에 매달 후원금도
"시장 한 귀퉁이 포장마차에서 팔던 꼬막비빔밥이 6년 만에 서울 한복판 백화점에서 팔리고, 미국 LA, 뉴욕, 시카고에서도 팔릴 줄은 꿈에도 몰랐죠. 최고의 꼬막비빔밥으로 번 돈을 쓰는 최고의 방법은 기부라고 생각했어요."
지난 12일 강원도 강릉시 포남동 '엄지네 포장마차'에서 만난 김미자(53), 최근영(61)씨 부부는 "기부의 맛에 빠졌다"고 했다. 엄지네 포장마차는 전국에서 꼬막비빔밥을 맛보려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주말이면 길게는 3시간은 줄을 서야 할 정도라 '꼬막비빔밥의 성지(聖地)'로 불릴 정도다. 서울과 세종, 충북 청주 등에 9개 분점을 냈고, 작년 12월부터 미국 LA 등지에서 팝업 매장(Pop-up store·일주일 이내 짧은 기간 운영하는 임시 매장)을 열기도 했다. 마흔 살에 대형 건설회사 임원에 올랐던 남편 최씨가 1997년 "내 사업을 하겠다"고 퇴사해 차린 건설업체가 외환 위기에 휩쓸려 부도가 난 뒤 부부는 0.7t 트럭에서 떡볶이, 순대를 팔았다. 2002년 부부는 더 이상 서울에서 버틸 수가 없어 강릉으로 내려왔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다 2013년 내놓은 꼬막비빔밥이 대박이 났다. 부부는 올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에 함께 가입했다. 두 사람을 포함해 부부 아너는 모두 186쌍이다.
꼬막비빔밥집 부부는 아내 김씨가 지난 2월, 남편 최씨가 두 달 뒤인 지난 4월 아너 소사이어티에 가입하면서 강릉 최초의 '부부 아너'가 됐다. '강릉 9호 아너'가 된 김씨 가입식 때 "한 명만 더 가입하면 10명을 채운다"는 말을 듣고 최씨도 1억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최씨는 강릉시청에서 열린 가입식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아내 가입식 때 정장이 없어서 핀잔을 들었어요. 그래서 제 가입식 때 입으려고 20만원을 주고 양복 정장을 마련했어요. IMF로 회사 망하고 22년 만에 처음으로 양복을 입었네요."
부부는 지난 시절이 참 힘들었다고 했다. 아내 김씨는 "2002년 강릉에 내려와 동부시장에서 가게를 내고 17년 동안 경포대해수욕장과 설악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요"라고 했다. 김씨는 남편이 양복을 입고 찍은 아너 소사이어티 가입식 사진을 액자에 넣어 매장에 걸어놓았다. 부부는 올 초 시장 골목에서 나와 2층짜리 가게를 얻었다. '강릉엄지네포장마차'라는 이름은 2007년부터 썼다고 했다. 김씨는 "손님들이 '아이 이름이 엄지냐'고 묻는데, 꼭 최고가 되겠다고 각오하고 지은 이름"이라고 했다.
◇외환위기 당시 부도… 떡볶이 트럭 장사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230㎡(약 70평)짜리 빌라가 은행에 넘어가고 차고 다니던 롤렉스 시계, 아이들 돌반지까지 팔고도 빚이 남았어요. '라보'라고 0.7t짜리 트럭이 있어요. 거기에 조리대 얹어 3000원짜리 떡볶이, 500원짜리 어묵을 팔았습니다."
잠실역 일대와 올림픽공원부터 아내 김씨의 고향 충북 제천까지 떠돌며 장사를 했지만, 기름 값과 자릿세도 벅찼다고 했다. 2002년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으로 이사를 와서 동부시장에 낸 30㎡(약 9평)짜리 점포는 사채 1000만원을 빌려서 얻었다.
남편 최씨가 떡볶이와 순대를 팔고 아내 김씨가 닭똥집 안주에 술을 팔았다. 밤 장사를 마치고 아침 8시에야 보증금 300만원, 월세 25만원짜리 옥탑방에서 잠들 수 있었다. 100만원을 빌리면 하루 이자만 1만3000원인 고리(高利) 일수를 갚으면 남는 돈이 없었다. 겨울이면 200L들이 기름보일러를 채울 돈이 없어 1만9000원에 한 말(20L)을 사서 세숫물만 데우고 전기장판을 잠깐 틀고 잤다.
◇강릉에서 만들어낸 꼬막비빔밥 대박
2013년 남편 최씨의 고향인 전남 벌교에서 가져온 꼬막으로 만든 비빔밥을 내놓았는데, 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꼬막무침을 팔았는데 짭조름한 벌교식 꼬막무침이 강릉 사람들에게 별 인기를 끌지 못했다. 꼬막을 삶아서도 팔아봤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간을 줄이고 비빔밥으로 바꾸면서 강릉 사람들은 물론이고, 휴가 온 서울 사람들 입맛까지 사로잡았다. 그야말로 '대박'이 났다.
"꼬막비빔밥이 성공하면서 2억원짜리 조합 아파트를 샀는데, 올 들어 가정집을 겸할 수 있는 본점 상가 건물을 사들이면서 아파트를 팔았습니다.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판 돈으로 뭘 할까 생각해보니 더 어려운 사람들이 생각났습니다."
어려운 시절을 이겨낸 부부의 꿈은 최고의 꼬막비빔밥을 파는 데 그치지 않는다. 부부 아너 가입을 계기로 나눔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부부는 강릉의 또 다른 아너 회원과 함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12명에게 매월 100만원씩 후원하고 있다.
지역 어르신들 난방비 지원 사업에도 앞장서고 있다. 기름 값이 없어 난방을 제대로 못 하던 어려운 시절의 기억 때문이다.
올해 4월 산불 피해를 본 강릉시, 속초시 주민들을 위해 1000만원을 냈다. 엄지네포장마차에는 특별한 종업원들이 있다. 실직이나 사업에 실패한 단골손님 3명에게 일자리를 줬다. 김씨는 "세탁소 운영하던 손님 부부가 있었는데 일이 잘 안 돼서 남편분은 본점 주차 관리를 맡아주시고 아내분은 인근 분점 카운터를 봐주세요. 식당 하시던 단골 아주머니는 지금 본점 주방을 도와주시고요. 손님 때는 손님이라 고맙고 지금은 함께 일해주니 고마운 거죠."
어려움을 딛고 나눔에 앞장서는 부모를 지켜본 딸(33)은 분점을 운영하며 아너 가입을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대학생인 아들(24)도 5년 전부터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전 세계의 기아 아동을 돕는 데 기부하고 있다고 했다.
최씨는 차고 있는 손목시계를 자랑했다. "22년 전 부도가 나서 롤렉스 시계를 팔 때 아내가 나중에 돈 많이 벌어서 다시 사준다고 했는데 롤렉스는 아니지만 작년에 생일 선물로 사줬어요." 아내 김씨가 이렇게 받았다. "생일이 아니고, 환갑이에요. 이 사람이 젊은 척하고 있어." 인터뷰 때문에 모처럼 화장을 했다는 아내 김씨의 손을 최씨가 꼭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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