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누 두 장
김기준
여리디 여린 당신의 허리춤에 긴 마취 침 놓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당신의 눈을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손잡아주며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그 순한 눈매에 맺혀 오는 투명한 이슬방울
산고의 순간은 이토록 무섭고 외로운데
난 그저 초록빛 수술복에 갇힌 마취의사일 뿐일까?
사각사각 살을 찢는 무정한 가위소리
꼭 잡은 우리 손에 힘 더 들어가고
괜찮아요
괜찮아요
내가 옆에 있잖아요
편히 감는 눈동자 속에 언뜻 스쳐간 엄마의 모습
몇 달 후 찾아와서 부끄러운 듯 내어놓은
황토빛 비누 두 장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우리 아가 먹다 남은 초유로 만든 비누예요
그때 손잡아 주시던 때
알러지로 고생한다 하셨잖아요
혼자 남은 연구실에서 한동안 말을 잊었네
기어코 통곡되어 눈물, 콧물 다 쏟았네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내가 더 고맙습니다
김기준 : 1963년 경남 김해 출생. 연세대 의대 졸업. 2016년 ‘월간 시’ 신인상. 시집 『착하고 아름다운』,
『사람과 사물에 대하여』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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