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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정진홍의소프트파워] 백건우의 투혼이 부러운 까닭

by 많은이용 2009. 1. 11.

[정진홍의소프트파워] 백건우의 투혼이 부러운 까닭

 

9일 일요일 오후 3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을 찾았다.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 대장정의 둘째 날이었다. 특히 ‘전원’이라 불리는 제15번과 베토벤이 ‘비창’이라 이름 붙인 제8번 곡의 연주가 인상적이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다 하늘이 갈라지며 한 줄기 햇살이 대지에 내려 꽂히는 듯한 강렬함과 고요함의 극적인 대비. 촛불이 꺼질 듯 말 듯하다 다시 마지막 불꽃을 일으키며 타오르다 갑자기 사그라지는 듯한 극적인 반전과 결말. “역시 베토벤이야” 하는 감탄사가 절로 터졌다. 그날 베토벤의 그 맛은 젊디젊은 신예 김선욱이나 자신만만하고 파워 넘치는 박종화 같은 피아니스트보다 환갑·진갑을 거치며 인생의 단맛·쓴맛을 모두 맛본 노 피아니스트 백건우 같은 이만이 담아 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제 목요일 오후 8시 다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라는 별칭이 붙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29번을 듣기 위해서였다. 베토벤은 극도로 곤궁했던 1818년 영국 브로드우드사의 새 피아노 한 대를 선물받았다. 그것은 빵도 아니고 돈도 못 되었지만 그가 이제껏 접했던 그 어떤 피아노보다 강력한 해머를 장착한 말 그대로 ‘쇠망치 피아노’, 즉 함머클라비어였다. 베토벤은 이 신무기를 갖고 1819년 ‘함머클라비어를 위한 대소나타’를 작곡했다. 당시 마흔아홉 살의 베토벤은 이 곡을 쓰고 난 뒤 “이제야 작곡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을 만큼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다. 특히 그것은 피아노 소나타라고 하기보다 차라리 오케스트라가 동원돼야 할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교향곡 같은 소나타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에게 함머클라비어는 결코 쉽게 넘볼 수 없는 거대하고 또 위험천만한 산이다. 마치 히말라야의 8000m 고봉들 중에서도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K2 같다고나 할까.

그날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라는 대장정의 막바지에 다다른 노 피아니스트는 다소 지쳐 보였다. 그런 그가 과연 함머클라비어라는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산을 넘을 수 있을까. 그가 두드리는 건반은 거친 숨소리를 몰아 내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천근만근 무거워진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이 그 고통의 연주를 계속하며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산을 힘겹게 올랐다. 함머클라비어는 수많은 협곡과 크레바스를 가진 K2처럼 쉬이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K2가 수많은 알피니스트를 주저앉히고 죽음의 협곡에서 삼켰듯이 함머클라비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삼켜버릴 듯했다. 베토벤이 남긴 그 거대한 산 앞에서 그는 초라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백건우는 투혼의 몸부림을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함머클라비어라는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산을 올랐다. 마른 잔기침마저 참고 누르며 숨죽이던 청중은 그의 처절한 투혼에 박수를 그칠 수 없었다. 어쩌면 그 박수에는 넘어야 할 산을 바라만 보고 안주하던 자신들을 향한 질책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삶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하지만 대개는 평생 그 산을 쳐다만 보다 죽는다. 그 산에서 죽더라도 올라야 진짜 삶이 펼쳐짐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두렵고 겁나서 바라만 본다. 그러다 결국 인생의 막은 내리기 일쑤다. 자, 나의 산은 어디에 있나. 내가 넘다 죽어도 좋을 산은 과연 어디에 있나. 아직도 그 산을 발견조차 못 했나. 아니면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나. 진짜 행복은 내가 넘다 죽어도 좋을 그 산을 발견하고 그 산을 오르고, 또 오르다 거기서 죽는 것이 아닐까. 백건우의 투혼이 부러운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중앙일보  정진홍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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