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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칼럼

'나는 가수다'에서 배워야 할 것

by 많은이용 2011. 6. 3.

'나는 가수다'에서 배워야 할 것

                                                                               조선일보 이지훈 경제부장 jhl@chosun.com

 

▲ 사람들은 혼(魂)이 담겨 있는 것에 감동한다. 가수 임재범이 MBC의 가수 경연 프로그램 '나가수(나는 가수다)'에서 '여러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릴 때 사람들은 따라 울었다. 6분의 무대에 피를 토하듯 인생 모두를 쏟아 부었기 때문이다. 나가수의 가수들은 완벽에 도전하는 혼으로 과거의 노래를 재해석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했다.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청중과의 소통과 피드백이 기적을 낳았다.

 

우리는 나가수에서 배워야 할 게 많다.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은 진정성이다. 가식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소비자들은 진실된 것을 원한다. 성공하고 싶다면 다른 사람의 길을 따르지 말고, 자기만의 길을 가라. 임재범처럼 자기만의 눈물과 땀, 고독을 실어 자기만의 이야기를 써라. 그리고 그것을 친구처럼, 연인처럼 소비자에게 전달하라. 이 시대에 진정성은 수요에 비해 공급이 현저히 적은 희귀 자원이다. 요즘 경영계에서 진정성 마케팅과 진정성 리더십이 화두가 된 이유다.

 

또 하나 배워야 할 것은 늘 새로워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시장과 항상 소통하라는 것이다. 이 시대 최고의 가수 중 한 사람인 김건모의 패인(敗因)은 과거의 성공 공식에 갇혀 시장의 변화를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 나가수는 정부의 기업 정책에 대해서도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사람들이 나가수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역전(逆轉)이 있기 때문이다. 아웃사이더이자 마이너리티였던 임재범과 박정현이 아이돌 위주의 기존 가요권력을 뒤흔드는 모습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 기업 생태계에선 언제부터인가 역전이 사라졌다. 안철수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소기업들은 삼성과 LG, SK라는 세 동물원의 우리에 갇힌 신세를 벗어나기 힘들다. 우리 중소기업 중에서도 임재범이나 박정현 같은 숨은 스타가 많을 것이다. 그들이 동물원에서 뛰쳐나와 자신만의 끼를 마음껏 발휘하고, 대기업을 앞지를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 새 판을 짜는 지혜도 우리는 나가수에게 배울 수 있다.

 

그 하나는 어떤 기득권도 허용하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하는 룰이다. 대기업 오너가 자녀의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처럼 실력 이외의 요소가 경쟁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 대기업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중소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송두리째 가로채거나, 하도급업체가 기술을 개발해 이익을 내는 순간 납품단가를 후려쳐 기술개발 의지를 꺾어 놓아서도 안 된다.

 

또 판을 새롭게 짜는 데는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과감한 발상이 필요하다. 나가수의 룰은 가수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지 않으면 안 되게 고안됐다. 승부의 판단은 기존의 명성이 아니라 오직 시장(청중)에 맡겨졌다. 가수들은 단 2주 동안 다른 가수의 노래를 자신에게 맞는 스타일로 재해석해 부르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가수들에겐 최고 수준의 편곡과 밴드가 지원돼 노래만 열심히 부르면 됐다.

 

하지만 나가수에서 최고의 가수들이 손가락을 떨면서까지 노래하게 만든 가장 결정적인 룰은 1등부터 7등까지 순위를 공개하고 꼴찌를 탈락시킨 것이다. '퇴출'이란 제도가 매우 비정해 보이지만, 긴장감을 유지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나가수는 보여준다. 중소기업 정책 역시 실력 없는 중소기업을 언제까지나 지원하고 보호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나가수는 우리 사회가 깊이와 다양성이 인정받는 사회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다. 기업 생태계에도 나가수 같은 깊이와 다양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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