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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공부에 내몰린 아이들… 양보와 배려 교육을

by 많은이용 2011. 4. 8.

[기고] 공부에 내몰린 아이들… 양보와 배려 교육을<세계일보>

 

국제교육협의회(IEA)가 2009년 세계 36개국 중학교 2학년 학생 14만6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국제시민의식 교육연구’ 자료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사회적 상호작용 능력’에서 35위를 차지했다. 조사에 참여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22개국 중에서도 최하위였다. 

 

정부와 학교에 대한 청소년들의 신뢰도는 각각 20%와 45%로 나타났다. OECD 30개국 중 한국은 경제 10위권의 국가다. 그러나 자살률 1위, 행복지수 25위, ‘2011 종합복지지수’가 30개 OECD 가입국 중 하위권인 26위를 기록했다.

 

청소년은 어른의 거울일 뿐이다. 정치인은 주머니에 손을 감춘 채 표만 카운트하고, 기업인은 증여세를 절감하기 위해 자녀 회사에 매출 몰아주기에 바쁘고, 사법연수생들은 집단행동하고, 의사국가고시에서 의사지망생들은 조직적으로 부정행위를 한다. 중국 정부는 재스민 향기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중동 왕정국들은 수십년의 권좌가 무너질까봐 노심초사한다.

이런 사회와 국제정세 속에서 청소년들은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입시공부에 녹초가 된다. 삶의 전투에서 왜 공부만이 유일한 무기인지 의심하고 고민할 겨를이 없다. 경쟁력만이 유일한 생존전략이 된 사회에서 학생도 사회인도 모두 자신을 되돌아 볼 여유가 없다. 배려와 양보는 경쟁에서 뒤처지는 지름길이 돼버렸다.

수재들만이 진학한다는 국내 유명대학에서 학생들이 계속 삶을 포기한다. 이 대학은 학생의 성적에 따라 수업료가 결정된다. 성적이 하위권인 학생은 ‘징벌성 등록금’ 제도로 경제적인 압박감에 시달린다. 학문의 가치가 경제논리에 짓밟힌다. ‘진리와 자유와 정의’라는 사치스러운 대학의 가치는 생존권 앞에서 휴지조각이 된다. 달과 별을 바라보고, 하늘을 우러르고, 모닥불 앞에서 밤새워 대화하고, 부질없이 방황할 수 있는 청소년기의 특권은 증가하는 청년실업률과 학자금 융자상환 앞에서 루저가 되는 지름길이 된다.

‘청소년들의 공동체 의식 결여’를 청소년의 탓으로 돌릴 일만은 아니다. 경쟁 위주의 입시교육이 청소년의 건전한 인성 형성을 해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과 학교에서 입시 위주 교육이 청소년의 공동체 의식 결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셈이다. 청소년은 우리 사회의 거울이다.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 것이 아이들이다. 효율성과 경제성, 경쟁과 전투력만이 유일한 가치가 된 이 사회는 청소년에게 꿈과 낭만을 줄 여유가 없다.

워런 버핏은 행복이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는 것’이라 했다. 록펠러재단은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고 23개의 대학을 설립했다.

재단 창립자인 존 데이비슨 록펠러는 ‘일은 성공’을, ‘관계는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목표를 갖는 자는 순례자가 되지만 목표를 갖지 못한자는 방랑자가 된단다. 우리 청소년들이 방랑자가 될까 두렵다. 한경직 목사는 지팡이와 휠체어만을 남겼고, 성철 스님은 가사 두 벌만 남겼으며, 김수환 추기경은 신부복과 묵주만 남겼다. 부동산과 주식과 통장은 없었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꾸게 해야 한다. 방황하는 특권을 되돌려 주고 고뇌할 시간을 주어야 한다. 양보와 배려가 학습되도록 사회시스템을 다시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집단 이기주의 안에서 개인적·집단적 이기심만을 키워가게 해서는 곤란하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며 자살률은 경제력과는 무관하며 경쟁력은 삶을 풍요롭게 하지는 않는다.

                                                                      김용희 서울사이버대 교수·부동산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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