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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모음

가을/문태준

by 많은이용 2012. 11. 8.

가       을
 
                            = 문태준 =

이제 우리는 가을의 영토 안에 살고 있습니다.

한 해 마지막 과일들이 익으며
바람결에 향기를 풀어놓고 있습니다.

익거나 다 익어 떨어지는 것들이
가장 아름다운 모양새를 드러내는 때가 바로 가을입니다.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아
마른 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욕심을 조가비처럼 작게 하고,
이제 나에게 주어진 열매를 수확하는 일의
즐거움을 선택하는 때가 가을입니다.

모든 생명들이 여름의 빛을
안쪽으로 거두는 때가 가을입니다.

가을은 무엇보다 선명해서 좋습니다.
빛깔이 선명해서 생명 고유의 빛깔을 볼 수 있습니다.

공기가 차가워져서 소리가 선명하게 전달되므로
우리는 생명 고유의 음성을 직방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은 어느새 가을의 쾌청한 모드로
전환이 되어 있고 충분히 열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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