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부모는 아들을 同志로 키웠다
[사람을 기르는 집] ① 연극 연출가 양정웅 집안
하라 마라 대신 "네가 느껴봐" 방식… 대학 근처로 이사가 책·공연 세례
모친 글·아들 연출 작품 '소풍' '선동'…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도 수상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한다. 어제 배운 것의 쓸모가 내일이면 사라진다. 무엇에 의지해 자녀를 키워야 할지 고민도 깊어진다. 삶을 대하는 지혜와 원칙을 교육하는 집들이 있다. 사람을 키워내는 집들을 찾아 그 지혜를 들어봤다.
2003년 9월 소설가 양문길씨가 와병(臥病) 중일 때, 아들인 연극 연출가 양정웅은 이집트 카이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받고 여행 기회까지 얻었다. 주변 사람들은 "부친이 오늘내일하는데 빨리 들어와 병시중은 않고 무슨 여행이냐"고 했다. 그러나 서울의 부친은 "내 몫까지 보고 오라"고 했다. "네가 내 눈이다." 부친은 아들이 귀국하고 수 주 후에 눈을 감았다.
연극인의 꿈이라는 런던 바비칸센터 진출, 셰익스피어 글로브시어터 공연 등 '한국 최초'의 문을 잇달아 열었던 양정웅(45)씨의 부친은 고(故) 양문길(1941~2003), 모친은 소설·극작가인 김청조(68)씨다. 양씨와 김씨는 둘 다 신춘문예 출신.
2003년 9월 소설가 양문길씨가 와병(臥病) 중일 때, 아들인 연극 연출가 양정웅은 이집트 카이로실험연극제에서 대상을 받고 여행 기회까지 얻었다. 주변 사람들은 "부친이 오늘내일하는데 빨리 들어와 병시중은 않고 무슨 여행이냐"고 했다. 그러나 서울의 부친은 "내 몫까지 보고 오라"고 했다. "네가 내 눈이다." 부친은 아들이 귀국하고 수 주 후에 눈을 감았다.
연극인의 꿈이라는 런던 바비칸센터 진출, 셰익스피어 글로브시어터 공연 등 '한국 최초'의 문을 잇달아 열었던 양정웅(45)씨의 부친은 고(故) 양문길(1941~2003), 모친은 소설·극작가인 김청조(68)씨다. 양씨와 김씨는 둘 다 신춘문예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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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가 김청조씨의 모교인 서울 안암동 고려대 대강당 앞에 선 김씨와 아들 양정웅씨. 양씨는 6세 무렵 이곳에서 본 연극‘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반해 연극의 세계로 뛰어들었다. /김연정 객원기자
그들이 우선한 것은 '동지'를 위한 환경 조성이었다. 집은 김씨의 모교인 고려대(독문과 64학번) 인근 안암동이었다. 도서관이 가깝고, 공연도 볼 수 있고, 등산가기도 좋았다. 양정웅은 6세 때 고대 대강당에서 본 연극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잊히지 않는다고 했다. 꿈쩍도 않던 온달 장군의 관이 한 여인의 손길이 닿자마자 스르륵 밀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저런 것이 살아 있는 것이구나.'
출판사 현암사, 교보문고에서 일한 부친 앞으로 매일매일 책이 밀려들었다. 김씨는 책을 집 안에 널브러지게 뒀다. 책을 밟고 깔고 눕고 문지르고 던지고 안고 지고 살았다. 벽에는 '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친다)'는 족자가 걸려 있었다. 부친은 "그러니까 책을 읽어라"고 하지 않고 "안 읽으면 정말 가시가 생길까?"라고 물었다.
지시 대신 '갈증'을 심어줬다. 대표적인 것이 '밥상 전투'였다. 변변한 가구가 없어 책상으로는 밥상이 유일했다. 다른 집에서는 "아들아, 네가 써라" 했겠으나, 이 집에서는 부친, 모친, 아들, 딸 넷이서 서로 "내가 쓰겠다"며 양보 없는 '전투'를 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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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3년 고려대 인촌 묘소에서 찍은 양정웅씨의 가족사진. 왼쪽부터 부친 양문길, 양정웅, 동생 경화, 모친 김청조씨.
양정웅은 2대 독자. 그가 스물일곱에 '결혼하고 싶다'며 달려오자 부친은 물었다. "서둘러 결혼하면 너의 예술 인생이 어떻게 될까?" 곰곰이 생각하던 아들은 극단 여행자를 만들고 해외에서 인정받은 연출가로 자리를 굳힌 마흔셋에야 결혼했다.
어머니와 아들은 '동지'로서 연극 '소풍'(2005)과 '선동(2007)'을 함께 만들었다. 김씨가 쓰고 양씨가 연출했다. '소풍'은 서울연극제 우수작품상을 받았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김씨에게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을 수여했다. 양정웅은 시상식장에서 긴 편지를 읽었다. "예술이라는 두려운 바다에서, 어머니가 제 등대이십니다. 어릴 적 골목에서 제 이름을 부르던 목소리를 떠올리면 모든 불안이 잠잠해집니다." 그 소리는 굳세고 오랜 동지를 부르는 호출이었다.
[이 집안의 보물은] 외조부 때부터 내려오는 '희곡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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