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保守의 탐욕'
2009년 겨울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 어느 중학교를 찾았다. 대통령으로선 드문 일이었다. 미소를 띤 대통령이 교장·교사·학부모 앞에서 입을
열었다. 이 학교가 해 온 '수준별 방과 후 학습'을 "공교육 신뢰 회복의 핵심"이라고 칭찬했다. "학교장의 헌신적인 리더십"을 도드라지게
치켜세웠다. 김모 교장은 얼굴이 상기될 만큼 고무됐다. 자신의 노력을 대통령까지 알아주다니, 김 교장은 또 다른 꿈을 품었다.
▶이듬해 봄 김 교장은 교육감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공교육의 신화'가 돼 있었다. 미국 교육 개혁의 상징인 워싱턴 교육감에
빗대 '한국판 미셸 리'라는 말도 들었다. 김 교장이 가세했을 때 이미 보수 후보는 열 명을 헤아렸다. 뜻있는 인사들이 "전교조만은 안 된다"며
단일화하라고 했지만 허사였다. 몇몇은 "여당이 나를 민다"며 협상 테이블을 걷어찼다. 그해 6월 교육감 당선증은 진보 후보에게 돌아갔다. 4년
뒤인 올해도 판박이 같은 일이 벌어지더니 전국적 현상이 됐다.
▶어제 몇몇 신문이 조희연 서울 교육감 당선을 '9회 말 역전 만루홈런'이라고 했다. 꼴찌에서 출발해 막판 뒤집기를 했다는 뜻이다. 한 여론 전문가는 "홈런을 쳤다기보다 보수 내야수들이 자중지란에 빠진 사이 홈까지 걸어 들어온 것"이라고 했다. 올해는 서울·부산·경기·인천·세종·충북·충남·제주까지 보수는 단일화가 안 되는 불치병이 번졌다. '보수' 지지율을 합치면 60~70%에 이르는데도 30%대에 그친 '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보수는 훌륭한 두 발을 갖고 있는데도 걷는 법을 배우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국내 어느 학자는 단일화 못 하는 병을 "공익과 사익(私益)을 구별 못하는 탐욕"이라고 했다. 모두 잘난 탓에 스스로 경쟁력이 최고라고 착각한다. 착각이 병을 부른다. 4년 뒤에도 병이 나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편으론 탐욕에 찌든 사람들에게 아이들을 맡기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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