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기준
‘해주지 않는다’는 불평이 시작됐다면
그때부터 인생에서 노화가 시작되는 것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을 일컬어 ‘노인’이라고 한다. 노인복지법은 원칙적으로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유엔의 세계보건기구에서도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정의하고 있다. 오로지 세월만이 잣대이므로 나이가 노인의 기준에 포함되더라도 생물학적, 생리학적, 심리학적 측면에서 개인차는 상당하다.
특히 여성은 같은 또래의 다른 여자들보다는 아직 젊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 집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동창회 모임 등을 따라가 보면 칠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주름과 시커멓게 염색한 머리카락, 피부 탄력을 서로 비교해가며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서로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나는 의사가 아니므로 허리가 구부러진 정도나 늘어진 피부를 따질 줄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노화를 측정하는 기준이 있다. 바로 ‘해주지 않음’ 수치다.
세상에는 ‘아들이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 ‘마누라가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 ‘딸내미와 손자들이 해주지 않는다’라고 쉴 새 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노인들이 있다.
“이번에 갈 때는 나도 데려가 줄 거지?”
“나 대신 전해주지 않을래?”
“가는 김에 내 것까지 사다 줄 수 없어?”
하고 타인에게 무조건 기대려고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해주기만을 바라는 족속’이라고 부르는데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해주지 않는다’라는 불평이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면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노화가 시작되는 첫 출발임을 명심해야 된다. 나의 노화지수가 궁금하다면 ‘해주지 않는다’라고 불평하는 횟수가 하루에 몇 번이나 되는지를 세어보면 간단하다. 주름과 백발, 임플란트가 몇 개인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나의 노화 상태를 분명히 자각할 수 있게 된다.
노화가 진행되는 사람들은 금전적 도움부터 무거운 물건을 대신 들어주는 가벼운 도움까지 포함해서 ‘받는다’에 이상하리만큼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늙었으니 받는 게 당연하다’ ‘나는 늙었으니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게 당연하다’에 익숙해지면 그 인생의 말로는 타인의 영역으로 가득 채워진다.
나이 들수록 내 삶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자립을 잃은 인간은 쓸모가 없다. 사람들로부터 쓸모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나 자신에게조차 쓸모없게 여겨진다. 그런 말로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나한테 해주지 않겠니?’라는 말을 입에서 싹 지워버리고, 누구를 만나든 ‘내가 해줘도 되겠니?’라고 연습해보는 건 어떨까. 나이 듦에 자격은 없다지만 ‘나’라는 인격에 대한 ‘자격’이 인정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때부터 인생에서 노화가 시작되는 것
일반적으로 65세 이상을 일컬어 ‘노인’이라고 한다. 노인복지법은 원칙적으로 65세 이상을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유엔의 세계보건기구에서도 65세 이상을 고령자로 정의하고 있다. 오로지 세월만이 잣대이므로 나이가 노인의 기준에 포함되더라도 생물학적, 생리학적, 심리학적 측면에서 개인차는 상당하다.
특히 여성은 같은 또래의 다른 여자들보다는 아직 젊다고 믿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우리 집사람도 마찬가지여서 동창회 모임 등을 따라가 보면 칠십이 넘은 할머니들이 주름과 시커멓게 염색한 머리카락, 피부 탄력을 서로 비교해가며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인다고 서로를 칭찬하기에 바쁘다.
나는 의사가 아니므로 허리가 구부러진 정도나 늘어진 피부를 따질 줄은 모르지만 내 나름대로 노화를 측정하는 기준이 있다. 바로 ‘해주지 않음’ 수치다.
세상에는 ‘아들이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 ‘마누라가 무엇을 해주지 않는다’ ‘딸내미와 손자들이 해주지 않는다’라고 쉴 새 없이 불만을 토로하는 노인들이 있다.
“이번에 갈 때는 나도 데려가 줄 거지?”
“나 대신 전해주지 않을래?”
“가는 김에 내 것까지 사다 줄 수 없어?”
하고 타인에게 무조건 기대려고만 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해주기만을 바라는 족속’이라고 부르는데 아무리 나이가 젊어도 ‘해주지 않는다’라는 불평이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면 그때가 그의 인생에서 노화가 시작되는 첫 출발임을 명심해야 된다. 나의 노화지수가 궁금하다면 ‘해주지 않는다’라고 불평하는 횟수가 하루에 몇 번이나 되는지를 세어보면 간단하다. 주름과 백발, 임플란트가 몇 개인지를 확인하는 것보다 나의 노화 상태를 분명히 자각할 수 있게 된다.
노화가 진행되는 사람들은 금전적 도움부터 무거운 물건을 대신 들어주는 가벼운 도움까지 포함해서 ‘받는다’에 이상하리만큼 예민하게 반응한다. 우리 주변에는 이런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는 늙었으니 받는 게 당연하다’ ‘나는 늙었으니 나에게 친절을 베푸는 게 당연하다’에 익숙해지면 그 인생의 말로는 타인의 영역으로 가득 채워진다.
나이 들수록 내 삶이 사라져가는 것이다. 자립을 잃은 인간은 쓸모가 없다. 사람들로부터 쓸모가 없어지고, 나중에는 나 자신에게조차 쓸모없게 여겨진다. 그런 말로를 기대하는 사람은 아마도 이 세상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나한테 해주지 않겠니?’라는 말을 입에서 싹 지워버리고, 누구를 만나든 ‘내가 해줘도 되겠니?’라고 연습해보는 건 어떨까. 나이 듦에 자격은 없다지만 ‘나’라는 인격에 대한 ‘자격’이 인정받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김욱(작가·칼럼니스트)
자료출처 : 2017. 6. 5. 한국교직원 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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