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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500년, 루터의 길을 가다

"인간을 섬기러 오신 하나님, 루터의 인간 존엄 정신 되새겨야"

by 많은이용 2017. 10. 30.

"인간을 섬기러 오신 하나님,

루터의 인간 존엄 정신 되새겨야"

                                                                              조선일보    김한수 기자

 

[종교개혁 500주년] 김철환 루터교 총회장의 종교개혁 500주년 메시지

사도 바울은 성경 인물 중에서 최고로 꼽히고 있다. 루터는 세계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 속에서 최고의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루터의 업적은 대단하다. 유럽에서 천년 동안 성경책은 제롬이 번역한 라틴어 성경 불게이트 성경이었다. 루터는 성경을 평범한 독일인이 읽을 수 있는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루터 하면 떠오르는 것은 '만인(萬人) 사제론'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함을 주장하며, 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교회의 교권(敎權) 아래에 있었던 하나님의 권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됨(Let God Be God)'을 회복시켰다. 루터는 폰 보라 수녀와 결혼을 함으로써 가정의 숭고함을 일깨웠다. 가정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작금의 슬픈 현상에 루터로부터 가정의 가치를 크게 배워야 한다.

그러나 루터를 최고의 인물로 꼽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루터가 주장한 인간 존엄의 가르침이다. 루터는 진실한 신앙인이었다. 루터는 하나님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신실하게 믿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바르게 믿었다는 점이다. 예수를 그리스도교에서는 그리스도로 표현한다. 예수는 이름이요, 그리스도는 그 직분의 호칭이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고, 예수는 메시아라 표현한다. 그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인간 예수가 하나님이라는 발견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목적을 분명하게 일깨워준다. 신앙은 인간을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을 진정한 인간으로 회복함에 있다. 신앙의 과정이란 비(非)인간화를 인간화하는 데 있다. 현대의 세속문화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못난 모습이 산재하고 있다.

그 주범은 경쟁을 일으키는 소유욕이다. 세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불행은 절제하지 못하는 소유욕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힘의 논리는 어떠한가? 갑질로 대표되는 힘의 논리는 약자를 지독하게 비인간화로 몰아간다. 음란도 마찬가지다. 사랑의 표현인 성(性)이, 욕망 충족의 도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

인간을 비인간화하고 있는 모습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루터의 교회 개혁시대에도 만연했다. 돈으로 구원을 살 수 있다고 가르친 면죄부 사건은 그 대표적이며, 결국 이는 루터에 의해 95개조 반박문을 쓰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결과 신교(新敎), 곧 프로테스탄트가 탄생하였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사랑하셨다 한다. 그래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을 섬겼다. 일반 신(神)들은 인간의 섬김을 받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인간을 섬긴다. 이를 루터가 발견한 것이요, 루터는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모든 것에 저항한 것이다. 비록 교황과 교 황청이라고 하여도 그는 담대하게 맞서서, 인간 존엄이라는 가치 하나로 싸웠다. 그 결과로 우리는 지금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고 있다.

한국 사회는 루터에게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그 대답은 자명하다. 인간 존엄, 인간 생명의 경외라는 루터의 가치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나라가 개혁될 것이다. 사회가 바뀔 것이고, 인간이 다시 주인이 되는 나라가 될 것이다.




자료출처 : 2017. 10. 30. 조선일보 게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10/29/201710290133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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