功七過三과 적폐청산
한국은 국민통합 외면한 채 적폐청산 굿판뿐
모두에게 두고두고 불행한 일 더는 없었으면
황영기 < 법무법인 세종 고문, 前 금융투자협회장 >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다. 실수하지 않는 집단은 더구나 없다. 실수만 하는 인간도 없다. 집단도 그렇다. 한 가정을 끌고 가면서도 이런저런 실수를 하게 마련인데, 한 국가를 경영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저지르겠는가. 원래 사악한 인간이나 집단이 아니라면, 다 나름의 방식으로 잘해보려 하다가 저지른 실수요 시행착오일 것이다.
실수를 실수로 봐주면 경험이 되고 쌓이면 유산이 된다. 실수를 의도된 악행으로 보면 폐해가 되고 쌓이면 적폐가 된다. 유산인지 적폐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뒤에 오는 사람의 몫이다. 대개 성숙한 사회는 앞서간 자들의 경험을 좋은 유산으로 삼아 사회발전을 이뤄낸다. 덜떨어진 사회일수록 세상이 바뀔 때마다 지난 모든 일을 부정하면서 숙청의 굿판을 벌인다. 이런 일반법칙을 멋지게 깨뜨리고 세상을 바꿔 놓은 후진국의 지도자가 있었다. 중국의 덩샤오핑이다.
1904년생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혁명동지였다. 마오쩌둥과 대장정을 함께한 것은 물론 항일전에서 큰 공을 세우고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의 주역이 되면서 마오쩌둥이 총애하는 정치인으로 급성장했다. 젊은 시절 파리와 모스크바에서 경험한 선진문물 덕분이었을까, 덩샤오핑은 마오쩌둥과는 다소 다른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하면서 마오쩌둥과 노선갈등을 빚게 된다. 수천만 명의 아사자를 내고 대약진운동이 처참한 실패로 끝나자, 정치적 위기를 느낀 마오쩌둥은 1966년 문화대혁명을 선언하고 홍위병과 인민해방군을 앞세워 수정주의자들을 숙청한다. 덩샤오핑은 이때 반모주자파(反毛走資派)의 수괴라는 비판을 받고 실각, 유배지에서 연금 상태로 지내면서 어린 홍위병들의 온갖 수모를 참아낸다. 마오쩌둥의 사망으로 문화대혁명 광기가 가라앉자 1977년 덩샤오핑은 권력의 중심부로 복귀하고 1981년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등극하게 된다.
10년 동안의 문화대혁명이 남긴 것은 분열된 사회와 피폐한 경제뿐이었다. 당연히 마오쩌둥 비판과 격하운동이 거리를 휩쓸었다. 당시 세계 최고의 인터뷰 전문기자인 이탈리아의 오리아나 팔라치가 중국의 새로운 지도자 덩샤오핑을 인터뷰하면서, 마오쩌둥이 저지른 과오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한다. 덩샤오핑은 이때 그 유명한 공칠과삼론(功七過三論: 잘못이 셋이면 공이 일곱이다)으로 모든 문제를 정리해 버린다. 이어서 마오쩌둥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체계적으로 그리고 공식적으로 확정하는 3만5000자 길이의 ‘역사결의(歷史決議)’를 공표한다.
우리 근대정치사에서도 덩샤오핑과 닮은 얼굴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그는 독재 군부로부터 가장 큰 시련을 겪은 정치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랜 정적 김영삼 전 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독재 군부세력까지 거의 대부분 끌어안고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대의로 국민통합을 이뤄냈다.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중국에는 있었던 ‘역사결의’가 우리에겐 없어서 그랬는지 그 이후는 공칠과삼의 역사가 아니라 적폐청산의 역사로 이어진다. 중국 인구의 30분의 1밖에 안 되는 조그만 나라에 무슨 나쁜 짓을 할 게 그리 많다는 것인지 정권마다 전 정권 잘못을 들춰내느라 1년 365일이 모자란 형편이다.
덩샤오핑은 공칠과삼론 이후에도 흑묘백묘론, 남순강화, 삼보주(三步走)전략 등을 제시하면서 중국 사회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만일 당시 10억 명쯤은 됐을 중국 인민을 앞에 놓고 마오쩌둥 세력을 적폐청산 대상으로 삼았다면 중국의 발전은 최소 십수 년간은 정체를 겪었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적폐청산의 굿판이 벌어지고 있다. 나라 곳간이 비어 가도, 서민이 죽겠다고 아우성을 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청산을 하는 자나 당하는 자 모두에게 두고두고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역대급 폭염의 끝에 가을이 오기는 오는 모양이다. 우리 정치권에도 시원한 가을바람 같은 공칠과삼론이 불어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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