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백매…아름답기 梅한가지
한국경제신문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봄이 내려앉은 전남 순천
수백 년 동안 꽃을 피워낸 선암사의 ‘선암매’.
선암사의 선암매와 금둔사의 납월매
이른 봄, 글 읽는 선비들이 도포 자락을 날리며 매화를 찾아나서는 여행을 ‘탐매(探梅)’라 했다. 매화 핀 경치를 찾아가 구경하는 탐매는 그저 보고 즐기는 것을 넘어 애틋하고도 간절한 마음이 담긴 여행이다. 사군자 중에서도 매화를 맨 앞에 두었으니, 혹독한 겨울을 지나 도도하고 단아한 자태를 드러낸 매화 한 송이는 고매한 군자를 대하는 것과 같았으리라.
남쪽에서 가장 먼저 꽃망울을 틔우는 금둔사 납월홍매.
매화가 핀 또 다른 산사는 금전산(金錢山) 금둔사(金芚寺)다. 금둔사는 순천의 대표적 사찰인 선암사나 송광사에 가려진 한적한 사찰이지만 ‘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다. 금둔사 곳곳에 피는 소담한 매화나무들 때문이다. 금둔사의 매화는 ‘납월매’라고 불린다. ‘납월’은 음력 섣달(12월)을 뜻하는 말로, 그만큼 일찍부터 꽃망울을 틔운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실제로 남도에서도 가장 일찍 피어나는 매화나무 중 하나라고 한다.
탐매마을에 화사하게 핀 홍매화
깊은 산사에만 매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남 순천 원도심 골목의 오래된 주택에 홍매화 두 그루가 의연하게 서 있다. 산사의 매화도 아직 절반밖에 피지 않았는데 이곳 홍매화는 이미 만개해 마을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 홍매화가 핀 집은 ‘홍매가헌(紅梅佳軒)’이란 현판이 달려 있다. ‘붉은 매화가 아름다운 집’이란 뜻이다.순천대에서 정년퇴직한 김준선 교수가 3대를 이어 살고 있는 집이라고 한다. 김 교수댁 정원의 홍매나무가 알려지면서 매곡동 일대에 매화나무가 하나둘 심어졌다. 매곡동은 ‘탐매(探梅) 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명소가 됐다. 두 그루 홍매화에서 시작한 꽃불이 동네에 심은 매화나무로 옮겨붙게 된 것이었다. 마을 곳곳에는 홍매화가 피고, 골목마다 미술 마을 프로젝트로 그리거나 설치한 매화 그림, 조형물이 들어섰다.
순천복음교회의 매혹적인 매화정원
순천시의 외곽 왕지동에 있는 순천복음교회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매화 명소가 있다. 교회에 웬 매화인가 싶겠지만 교회 마당에 연못과 개울을 놓고 매화정원을 조성했는데 그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매화정원은 2년 전 순천복음교회를 은퇴한 양민정 목사가 30년에 걸쳐 조성한 곳이라고 한다. 교회 정원에는 동백과 소나무, 산다화 등 300여 그루의 나무가 있다. 그중 절반이 매화나무다.
무려 15종이 넘는 매화가 제각각 아름다움을 뽐내는 순천복음교회의 매화정원.
매화의 종류가 많다 보니 이제 겨우 움이 튼 것도 있고 벌써 만개해 화사해진 것도 있다. 매화정원의 매화들이 만개할 때는 3월 초라고 하니 공들여 찾아가도 결코 실망하지 않을 듯하다.
순천 월등면에는 매실 농장으로 가득한 산골 마을이 있다. 대표적인 곳이 계월리 향매실 마을이다. 봄이 무르익으면 마을 전체에 ‘꽃사태’가 난다. 월등면의 매실 밭은 주로 평지에 펼쳐져 있어 비탈에 자리잡은 섬진강변의 매실농원 풍경과 닮은 듯 다르다. 산자락을 따라 자리한 마을이 하얀 매화로 구름바다를 이루는 듯하다. 월등면의 매화는 섬진강 매화가 시들 무렵부터 피기 시작하니 늦은 봄나들이에 딱 좋은 곳이다.
자료출처 : 2022. 2. 25. 한국경제신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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