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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록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김형석 지음)

by 많은이용 2023. 7. 29.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김형석 지음/두란노서원)

 

* 125

교회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 항상 사회에 대한 선도적 역할을 책임져야 한다. 사회의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129

입으로는 주님의 뜻을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와 우리의 주장과 세력을 위해서였던 것이다. 주님 당시의 바리새파 사람들과 서기관, 제사장들의 각본을 재연하고 있었던 것이다.

 

* 162

지나치게 인위적인 행사나 또는 우리이기에 이런 일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전시성을 띤 행사는 삼가야 한다. 우리 교회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님의 뜻이 머무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귀중한 것이다. 신앙생활에 오래 머물게 되면, 나는 숨은 봉사를 할 뿐이고 영광과 찬양은 주님께 돌려지기를 바라는 자세가 된다.

 

* 184

세계의 많은 종교가 저지른 과오는 잘못된 신앙 때문에 인간이 버림받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이 희생되었다는 데 있었다. 그것을 바로잡아 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가르쳐 준 이가 예수 그리스도셨다. 주께서 주신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인간이 제물이 될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병들어서도 안 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완전을 위해서 인간이 그 수단과 방편이 되어도 좋은 듯이 가르친 면들이 있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하나님이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인간)도 완전해지라고 한다. 그것이 신약의 신앙인 것이다.

과거의 일부 지나친 교회 중심적인 지도자들이나 교리주의자들이 교회를 위해 인간적 희생을 강요하거나 개인들의 자유와 양심을 교리에 복종하도록 유도한 것은 옳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 191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닌 미래다. 우리 국민과 인류는 어떤 미래를 지향하고 있으며 우리는 어떤 길을 택해야 하는가. 세계는 지금 두 가지 선택을 요청받고 있다. ‘개방 사회로 향할 것인가, 아니면 폐쇄 사회로 향할 것인가하는 것이다.

 

* 197

교리적 전통을 고수하려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열린사회의 길을 택하지 않고, 독선적 사고, 배타적 감정, 이웃과의 선의의 대화를 배척하는 자세를 취한다면, 그것은 인격적 사랑의 길을 거부하는 과오가 될 것이다. 그것은 일부의 정치적 이념을 고수하려는 폐쇄적 사고방식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사랑의 길은 언제나 열려 있는 것이다.

 

* 220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친 F. 니체의 신들은 죽었다는 시의 내용은 우리 기독교가 갖는 신관(神觀)과는 상관이 없는 신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유신론(Theism)과 범신론(Pantheism)을 구별하고 있으며, 기독교 밖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들과 기독교의 신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니체의 저서의 주인공인 차라투스트라는 깊은 산중에서 도를 닦고 진리를 터득한 후에 인간 사회로 내려오다가 여러 신들을 믿고, 그 신들에게 도취되어 있는, 스스로를 성자라고 부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갖는다. 그때 차라투스트라는 그 성자들에게 종교적 은둔 생활을 버리고 더 이상 죽은 신들을 믿지 말라고 말하면서 저들은 산속에 오래 머무느라 신들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나는 죽은 신들이 아닌 인간에게로 간다고 선언한다. 니체는 본래 그리스 사상과 철학을 연구했고, 또 그 정신을 이어받은 철학자이다. 그가 말하는 신들은 기독교가 말하는 인격적 유일신이 아닌 범신론적인 신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런 신학적 사상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우리 교회와 신학사상은 서양 철학과는 거리가 먼 별도의 신앙과 신학 전통을 이어 왔기 때문에, 신이 죽었다면 무신론이 되는 것이며, 무신론은 기독교 신앙과는 모순되는 이론이기 때문이다.

 

* 222

교리가 인도주의를 병들게 하거나 거부할 때는 기독교가 진리가 되지 못하며, 지성인들의 부정적 비판을 받게 된다. 바리새파의 지도자들이 그 길을 택했던 것이다.

 

* 320

나는 모든 자녀가 성공과 행복을 찾아 누릴 자질과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좌절시키거나 불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오늘의 우리나라 교육이다. 왜 이런 후회스러운 걱정을 하는가. 개성을 존중히 여기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다. 그리고 그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다.

 

* 329

교육 수준이 높은 그리스도인들은 교단이나 신학교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목회자들의 문제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이 머무는 교회가 바람직스럽다고 생각한다.

 

* 335

종교개혁은 왜 일어났는가. 기독교가 기독교 정신을 외면하고 포기했기 때문에, 교회가 버림받게 되면서 발생한 개혁이었던 것이다. 지금도 교회가 그리스도와 기독교 정신을 상실한다면, 그 교회는 버림을 받아야 한다. 기독교 정신을 외면한 교회가 존재 가치를 상실하면서 기독교회가 개혁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 340

신앙의 공동체로서의 교회는 가장 중심이 되는 모체라고 볼 수 있으나 교회 밖 공동체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독교 대학과 같은 교육 기관으로서의 공동체도 수없이 많은가 하면 의료 봉사로서의 공동체의 책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는 교회주의의 폐단을 벗어나기 위해 기성교회나 전습적인 교회 제도를 벗어나려는 공동체들도 있다. 전통적인 교회는 그 모든 공동체를 도우면서도 신앙으로 이끌어 주는 책임을 가져야 한다.

 

* 341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도 많은 교회가 교회주의로 되돌아가려 한다는 사실이다. 목회자의 관심은 무엇인가. 목회자로서 성공하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 교회와 더불어 성공하려는 목적이다. 큰 교회는 교회가 크기 때문에 교회주의에 빠지며, 작은 교회는 교회를 키우고 유지하기 위해 교회주의가 된다.

기독교의 진리란 무엇인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교리가 아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도움을 받아 영광을 더하는 차원의 존재가 아니다. 예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이웃을 위해 섬기고 희생하는 사랑이라고 가르쳤다.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안고 있는 문제에 궁극적인 해답을 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확신을 주어야 한다. 세상 사람은 그 해답을 얻기 위해 종교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것이 진리인 것이다. 기독교의 높은 뜻이 있다면, 그 진리는 우리의 연구나 지혜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였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 교훈이 우리 모두의 인생관이 되고, 가치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중심이 되는 목표는 교회를 통해 참 신앙을 가진 많은 주님이 일꾼을 사회 모든 분야로 보내는 책임이다.

전 인격을 갖추고 주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며 새로운 사명을 갖고 하늘나라 건설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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