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입시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과정 개편
최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신정부의 교육개혁방안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학입시에 관련된 교육부의 기능을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에 넘기고 3불정책을 포함한 정부 규제를 풀어 학생 선발을 전적으로 대학에 일임하겠다는 자율화 방안은, 앞으로 우리나라의 대학입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과연 대교협이 그럴 능력이 있는지, 혹시 대학들이 본고사를 도입해 사교육이 늘어나지 않을지, 급격한 변화로 인해 입시 현장에 혼란이 생기지 않을지 등 우려를 표시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원칙적으로 학생 선발권을 대학에 넘겨 특색 있고 다양한 인재를 선발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고, 우리가 교육 선진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 나아가야 할 방향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처럼 대학입시 개선 방안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는 동안, 우리가 잊고 있는 우리나라 교육의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중·고교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이냐는 교육과정의 문제다. 설령 대학입시 개혁 방안이 성공해 공교육이 살고 학생들이 교과서의 내용만 제대로 이해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자. 그러나 그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내용이 학생들이 장래 지식기반 사회를 살아가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실 입시제도가 잘 정착된 선진국에서는 교육과정과 내용이 가장 큰 이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수학·과학 교육 강화를 대통령이 나서서 진두 지휘하고 있고, 최근 프랑스에서는 경제교육에 대한 토론이 불붙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대입 정상화와 사교육 완화 방안에 온 정신이 팔려 있어서, 학부모들도 교육의 본질적인 문제인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많은 문제점이 발견된다. 과연 교육과정을 만들면서 우리 학생들이 장래 21세기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얼마나 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예를 들어 대학 교수들이 학생들의 자질에 대해 가장 아쉬워하는 부분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능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이다. 기업에서도 신입사원들이 동료나 선후배와의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중·고등학교의 공교육에서는 논술이나 작문 등 타인과의 의사소통 능력을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과정이 매우 부실하다. 그러니 대학에서 논술시험을 부과하면 사교육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21세기 첨단기술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과학도 너무 가볍게 다루어지고 있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첨단기술로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기술 문맹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나 지리 등 사회교과서의 내용도 특정 지역과 시대에 너무 편중돼 있어 진정한 세계화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역대 정권들이 대학입시 제도를 이용해 교육 문제를 해결하려 무리하고 근시안적인 정책을 펴는 바람에 문제가 끊임없이 악화되었고, 그러는 사이 정작 학생들이 배우는 교육과정은 일반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주로 교육 공급자의 논리에 의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학생들이 지고 있다. 자신들의 미래 생활과는 관계 없는 공부에 시간을 낭비하고 내신이나 수능시험이 끝나자마자 잊어버리는 단편적인 지식 습득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학생들이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배운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 많으니, 이들이 외국으로 도피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지 않을까? 이제는 정말 학생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행정을 펴서, 장래에 필요한 것을 제대로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확립하는 것이 대입제도 개선에 못지않은 중요한 과제라 할 것이다.
오세정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장·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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