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등산길

진악산(금산 남이 732m)

by 많은이용 2010. 1. 5.

진악산(금산 남이)

 

◆ 높이 : 732 m

◆ 위치 : 충남 금산 남이

 

◆ 소개/특징

  진악산(737m)은 충남 금산군 금산읍에서 남서쪽으로 우뚝 솟아 보이는 산이다. 높은 산이 흔하지 않은 충남에서 최고봉인 서대산(903m)과 계룡산(845m)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진락산은 충남과 전북 등산인들에게 당일산행 코스로 인기가 높다.그도 그럴 것이 정상과 주능선을 에워싼 아기자기한 빈대바위, 도구통바위 등 기암지대도 볼 만하지만, 천년고찰인 보석사를 비롯해서 영천암, 선공암, 원효암 등이 사방으로 자리하고 있어 등산의 묘미를 더해주기 때문이다.

주릉에 펼쳐지는 기암괴봉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금산 쪽으로 깍아지른 높은 낭떠러지는 장엄하기까지 하다.

진악산을 감싸고 있는 숲도 무성하며 영천암과 원효암 골짜기의 개울도 매우 맑고 좋다.

특히 진악산 북편 관음산 일대의 암애와 암봉들, 원효암 일대의 기암괴봉과 폭포는 일품이다.


진악산에는 보석사라는 절이 있다.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 때에 조구대사에 의해서 창건된 절로 예전엔 호남의 많은 절들을 통괄했던 31본산 중의 하나였으며, 보석사 입구의 1,000년이 넘었다는 높이 48m 둘레 10.4m 인 천연기념물 보석사 은행나무도 유명하다.

보석사 외에도 영천암과 원효암, 영천약수, 도구통바위, 봉화대, 관음암과 관음굴, 원효폭포, 물골의 바위굴은 명소로서 손색이 없다.


또한 진악산에는 봉화대 자리(지금도 석축터가 남아 있다.)가 있으며, 임진년 8월(1592년) 금산벌 싸움에서 순국한 기허당 영규대사가 보석사에서 수도를 했다 하며 그 인연으로 보석사 내의 의선각에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보석사 들머리에 기허당 영규대사의 충혼을 기리는 위병승장비가 세워져 있다.

또한 개삼터가 있는 비실(성곡리) 위 물골에 있는 굴은 한때 조국의 광복을 꾀했던 젊은 의혈청년들의 은신처이기도 했다 한다.


진악산 등산은 금산터미널에서 약 5km 거리인 게진리 족실 마을에 이른 다음, 선공암 - 빈대바위를 경유하여 정상에 오르는 코스만 잘 알려져 있다.

 

■ 선공암 - 빈대바위 코스는 진악산에서 가장 가파른 북사면이기 때문에 건각들이 아니면 다소 힘든 코스다.

그러나 1977년부터 이 지역 등산인들이 해발 370m인 수리넘어재에서 북서릉을 타고 크게 힘들이지 않고 정상으로 향하는 코스를 이용하면서 지금은 계진리 코스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수리넘어재는 금산읍 음지리와 남이면 하금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최근 음지리에서 고개를 넘기 직전 오른쪽에 넓이 수백 평에 달하는 주차장과 휴게소가 생기면서 승용차를 이용, 이곳에서 진락산을 찾는 등산인구가 더욱 많아졌다.


■ 수리넘어재 - 북서릉 - 정상 코스

금산읍에서 수리넘어재로 가는 길은 노선버스가 없기 때문에 택시를 이용한다. 고개를 넘기 직전 주차장 입구 왼쪽으로 진악산 등산 안내판이 있다. 안내판 뒤 바위로 이뤄진 계곡 상단부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검은색 플라스틱 파이프에서 깨끗한 물이 나오고 있다.


산길은 물이 나오는 파이프 왼쪽 급경사 바위로 오르면서 시작된다. 바위지대를 올라선 다음, 오른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돌밭지대를 지나면서 왼쪽으로 굽돌아 계곡을 왼쪽 아래로 끼고 이어진다. 이 산길을 따라 20분 가량 오르면 동쪽 이래로 음지리와 금산읍이 내려다보이는 북서릉 사거리 안부에 닿는다.

사거리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북서릉을 타고 8~9분 오르면 정면으로 수석처럼 암골미를 드러내는 진락산 북사면이 펼쳐진다. 전망장소를 뒤로하고 5~6분 더 오르면 10여 평 공터를 이룬 무명봉을 밟는다. 여기서부터 북서쪽 멀리로 대둔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공터를 내려서서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경치가 그만인 암릉길을 타고 30분 거리에 이르면 게진리 선공암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닿는다. 삼거리를 뒤로하고 4~5분 더 오르면 '빈대굴 130m, 원효암 650m, 정상 60m' 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는 삼거리다. 이 안내판에서 서쪽으로 갈라지는 암릉길 아래로는 약 50m 길이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안내판 앞에서 주능선을 타고 7~8분 더 오르면 30여 평 넓이 헬기장인 진락산이다. 헬기장 오른쪽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왼쪽에는 삼각점(군산 28)과 함께 어른 키 높이의 정상비석(금산산악회 설치)이 있다.


조망은 막힘이 없다. 북으로는 금산면 추부면과 군북면 들판지대 너머로 육중한 서대산이 보이고, 그 오른쪽 아래로는 금산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금산읍 뒤 멀리로는 영동군 천태산도 시야에 와닿는다. 남으로는 전북 운장산과 구봉산이 함께 시야에 와닿고, 서쪽 남이면 너머로는 대둔산 정상이 뚜렷하다.


정상비석이 있는 진락산 높이는 1대 50,000 지형도에 732.3m로 되어 있고, 이 자리에 진락산이 인쇄되어 있다. 그러나 같은 지형도상에 남동쪽 주능선으로 1.3km 거리에 있는 737m봉이 있다. 그래서 금산산악회는 안내판에 정상비석이 있는 곳을 '진락산 주봉' 으로 쓰고, 737m봉에는 별도로 '최고봉' 이라 표기하고 있다.

이와같이 실제의 정상표기가 잘못된 이유 중 하나는 금산읍에서 737m봉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락산의 특이한 산세 때문에 737m봉은 남쪽 석동리나 동쪽 성곡리 등 어디에서 보아도 정상처럼 보이지 않는다.


하산은 남동쪽 737m봉을 경유하여 석동리 보석사로 내려서는 코스가 정석이다. 남동릉으로 발길을 옮겨 약 40분 거리에 이르면 737m봉을 밟는다. 737m봉에서 계속 남동릉을 타고 10분 거리에 이르면 높이 6m에 폭 2m 가량 되는 도구통바위가 반긴다. 적갈색 자연석인 이 바위의 이름 '도구통' 은 충청도 말로 절구를 일컫는다.

도구통바위를 뒤로하고 남쪽 급사면을 내려서면 100여 평 공터에 무덤이 있는 곳을 만난다. 무덤을 지나 숲터널 아래 계곡길로 10분 거리에 이르면 산중암자인 영천암이 나타난다. 영천암은 신라 정강왕 원년(886년) 조구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건물 구조가 거의 옛모습 그대로인 고풍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영천암을 뒤로하고 계류를 따라 20분쯤 내려서면 영천암과 같은 해에 창건된 고찰 보석사가 반긴다.

보석사 맞은편 은행나무도 볼거리다. 수령 1100년으로 높이 49m, 밑둥 둘레 16.5m나 되는 천연기념수다. 보석사를 내려서서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석동초교 앞 주차장이다.


수리넘어재~북서릉을 경유하여 732.3m봉에 오른 다음, 737m봉 - 도구통바위 - 영천암 - 보석사를 경유하여 석동리 주차장에 이르는 산행거리는 약 7km로, 3시간30분~4시간 소요.

 

◆ 등산코스

○ 산행은 금산읍 계진리 마을회관 앞에서 시작한다.

계곡길을 따라 선공암과 빈대바위 옆을 지나 능선길을 오르면 정상이 나온다.

정상에서 동쪽은 깎아지른 절벽이고 서북쪽으로는 대둔산∙서대산, 남쪽으로는 운장산∙구봉산이 보인다.


하산은 남쪽 능선을 따라 석동리 방향으로 암릉길을 지나 정상보다 높은 737m봉을 오른 뒤 남쪽으로 돛대처럼 생긴 도구통바위에서 서쪽으로 영천암을 지나 보석사로 내려간다. 찾아가려면 금산읍에서 계진리행이나 석동리행 버스를 탄다. (또는 역방향으로 산행)


▶족실(금산읍 계진리) 또는 위어돌굴(금산읍 음지리)-선공암 -골짜기길-기도터-관음봉-주릉-732봉-고스락(2시간 30분 소요)

▶석동초등학교-보석사-골짜기-영천암-억새발- 도구통바위-고스락 (737m)(2시간 30분 소요)

▶성곡리(금산읍, 일명 비실)-골짜기-도구통바위(1시간 30분 소요)

▶원효암 입구-원효암-바위능선-고스락(2시간 소요)



◆ 주변관광

칠백의총

임진왜란(1592)때 중봉 조헌(趙憲)선생과 승장 영규대사(靈圭大師)가 이끄는 칠백의사가 1592년 8.18 금산을 점거하고 있던 왜적을 무찌르다 전원이 순절한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있는 성스러운 곳으로서 우리민족의 빛나는 호국사상의 요람지이다.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의병은 1592년 8월 1일 청주성을 수복하고 동 18일 금산연곤평에서 고바야가와다가가게가 지휘하는 1만 5천여명의 막강한 왜적과 싸우게 되었으며 이때 의병군은 충청, 전라도의 관군과 같이 금산의 왜적을 협공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관군의 도움을 받지 못한채 외로운 군사로서, 오직 충절과 신의로 뭉쳐 필사무퇴의 정신으로 적과 혈전끝에 무수한 왜적을 무찔렀으나 중과부적으로 전원이 옥쇄하였다.

이 싸움이 끝난 나흘후 조헌선생의 제자 박정량, 전승업 등이 칠백시신을 수습하여 한 무덤에 모시고 칠백의사총(塚)이라 이름하였다.

이후 선조의 명으로 1603년 중봉조선선생일군순의비가 건립되었고 인조 12년(1634년)에 순의단(殉義壇)을 설치하여 제향을 모시기 시작하였으며 1647년 호서, 호남의 유림들이 힘을 모아 사당을 건립하여 칠백의사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으며, 1663년 현종께서 종용사(從容祠)라 친히 사액(賜額)하고 제토(祭土)를 내리었으며 이후 이지역 유림들은 정성을 다하여 대대로 제향을 모시어 왔다.

그러나 일제치하때 항일유적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인 경찰서장에 의해서 의총이 헐리고, 비석마저 파괴했고, 이곳에 소속된 토지와 재산을 강제처분하여 폐허가 되고 말았다.

해방후 이곳 주민들은 1952년 기념사업회를 조직, 성금을 모아 의총을 보수하고 종용사와 일군 순의비를 재건하였고 1963. 1월 정부에서 사적 제105호로 지정 보호하였으며 1963년 10월 새로이 단장하고 종용사를 개축하였음.


보석사

금산읍에서 약 6km 떨어진 진악산(732m)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보석사는 신라 헌강왕12년(866년) 때 조구대사가 창건한 역사깊은 절이다.

교종의 대본산이며 한국불교 31본산의 하나로 지난날 전라북도불교의 이사중추기관이었고 현재는 충남 교구 산하로 되었다.

보석사라는 이름은 절앞산 중허리의 암석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주조 하였다는데서 이름지어 졌으며 주위의 울창한 숲과 암석은 맑은 시냇물과 어울려 대자연의 조화를 이루고 속세를 떠난 듯하다.

절 안에는 대웅전, 기허당, 의선각, 산신각 등의 건물과 부속암자가 있으며, 인근에는 절경의 12폭포가 있다.

특히 높이 40m, 둘레10.4m나 되는 1,100년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천연기념물 365호)가 있어 좋은 휴식처를 제공해주며, 200~300미터 정도의 전나무길이나 있어 호젓한 산책코스를 즐길 수 있다.


의선각

보석사 대웅전 앞에 있는 건물로 의병승장 영규대사가 머물러 수도하던 곳이다.

영규대사는 공주 계룡산의 갑사와 보석사를 내왕하며 도를 닦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모집하여 중봉의 의병과 합세하여 금산이 왜적을 격퇴하려다가 700의사와 함께 전사한 분으로 그 용맹과 담력은 출중하여 싸움마다 크게 공을 세웠던 것이다.

의선각은 영규대사가 보석사에 계실때 우거하던 곳으로 창녕위 김병주의 글씨로 된 의선각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충청남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29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영천암

창건연대는 보석사와 같고 절뒤의 조그만 동굴에서 샘물이 흘러 나오는데 사계절 끊이지 않고 나오는 영험한 동굴로 알려져 있음.


◆ 도로안내

1. 경부고속도로 옥천IC-전주방향 37번국도-추부면-금산읍(40분 소요) 2. 경부고속도로 대전IC-금산방향 17,37번국도-추부면-금산읍(50분 소요)


선공암가는길

대전-금산 진입 직진하다 좌측으로 금산초등학교 보이는 신호등에서 (좌측 경찰서) 우회전-직진하다 좌측으로 꺽임-다리 건너자마자 우회전 제방길따라 1km쯤 가서 좌회전- 족실부락 가운데를 통과 올라가면 선공암(승용차 통행 가능)


원효암가는길

대전-금산 진입 직진하다 좌측으로 금산초등학교 보이는 신호등에서 (좌측 예전 경찰서) 우회전-직진하다 T자 부분에서좌회전-바로 다리 건너지 말고 우회전(하천길)- 수리넘어재(진악광장) 등산로- 고개넘어 넘어가면 좌측으로 원효암 가는길 있음


<산행기>

635번 지방도를 따라가다 수리넘어재를 넘어가는 진악산 휴게소에 도착한다. 13시 50분 일행을 내려놓고 차량 한대를 하산 지점인 반대쪽 보덕사 주차장으로 이동시키기 위해 떠난다. 진악산 휴게소는 조그만 간이 매점이고 휴게소 앞 주차장에는 진악산 종합안내도와 진악로(進樂路)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20여분이 지나 차량을 이동시키고 돌아온 일행과 합류하여 도로를 건너 들머리로 들어서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1-2분 정도 오르면 평탄한 산책로가 이어진다. 여유로운 발걸음을 10여분 옮기면 진계리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금산군수가 세운 '금산 인삼과 진악산' 이라는 팻말이 서있다. 이곳 진악산은 1500년 전 백제 시대에 효성이 지극한 강처사가 노모의 병치료를 위하여 관음봉 관음굴에서 기도하던 중 산신령의 현몽으로 인삼의 씨앗을 얻어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금산 인삼의 발생지라고 한다.


두 개의 목장승 뒤로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는 가스통이 나무에 매어져 있고 금산시내가 한 눈에 조망된다. 정상에 닿을 때까지 이 조망은 계속된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특이하게 시를 적어 놓은 예쁜 목비가 군데군데 세워져 있어 운치도 있고 산행이 즐겁다. 숨이 거치러지고 이마에는 조금씩 땀이 흐른다. 능선 양쪽으로 조망이 뛰어나고, 왼쪽 아래로 시커먼 차양막을 씌운 삼밭이 많이 보인다.


10여분 오르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대둔산과 천등산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서대산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조망된다. 정상 왼쪽으로 빈대바위가 보인다. 바위의 모습이 빈대 한 마리가 붙어있는 모양과 흡사해서 붙어진 이름으로 이곳에서 보아야 그 모습이 보인다.


잠시 숨을 돌리고 계속 10여분 정도 오르면 빈대 바위에 도착한다. 산 아래에 금산 시내가 손에 잡힐 듯 하고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빈대바위에 올라섰다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안전산행을 돕기 위한 밧줄 가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10여분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해 진행하면 원효암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원효암 650m 정상 160m 이정표가 보인다.


119 긴급 구조를 위한 통신 시설을 지나면 곧바로 진악산 정상에 도착한다. 넓은 터를 이룬 정상부는 삼각형 모양을 한 헬기장이 있다. 가장자리에 금산산악회에서 세운 표지석이 놓여 있고, 표지석 뒤엔 안용산씨의 '진악산' 이라는 시가 음각 되어 있다. 해발 732.3m다.


진악산은 해발 737m의 높이로 충남에서 4번째 높은 산으로 주릉에 펼쳐지는 기암괴봉의 경관이 아름다우며 금산 쪽으로 깎아지른 높은 낭떠러지가 아찔하다. 남쪽으로는 전북 진안의 운장산과 구봉산이 다정스럽고, 운장산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이 장엄하다. 대둔산과 천등산, 홀로 우뚝 솟아오른 충남 제일의 고봉 서대산이 보이고 색을 달리하면서 주름잡힌 산줄기들이 첩첩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펼쳐진다. 삐죽 삐죽 솟은 봉우리들은 웅장하다는 느낌보다 아기자기한 느낌을 갖게 한다.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수많은 표지기들이 형형색색으로 나부끼는 산불 감시초소 앞에 자리를 잡고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15분 정도 휴식을 끝내고 실제 정상으로 향한다. 능선 왼쪽은 까마득한 낭떠러지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며 산 아래에 조그만 저수지가 보인다. 빠른 걸음으로 20여분을 걸으면 실제 정상인 737봉에 다다른다. 쉴만한 넓은 터가 있다. 운장산과 구봉산이 더욱 가깝게 다가서고 왼쪽으로 시야를 돌리면 바위 치마를 두른 적상산 과 그 뒤로 덕유산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10여분 동안 휴식을 취하면서 숨을 고르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가파른 내림길에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3-4분 정도 조심스럽게 내려서서 5분 정도 진행하면 묘지가 길을 가로막는다. 5분 정도 진행하면 도구통 바위가 눈길을 끈다. 도구통이란 절구통의 방언인데 바위 모양이 절구통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도구통바위 옆으로 청마 유치환의 '바위' 라는 시가 액자 속에 적혀 있다. 또 그 앞에는 금산군청이 세운 '금산 인삼과 진악산' 이라는 팻말이 서있다.


낙엽 쌓인 가파른 내리막길을 지그재그로 내려서면 등로 옆에 잘 가꾸어진 묘 1기가 보인다. 그리 좁지도 않고 넓지도 않은 길은 걷기에 더없이 좋다. 16시 30분 영천암에 도착한다. 보석사에 속한 암자로 보석사와 함께 신라때 조구화상이 지은 것으로 전하며 경내에는 무량수각과 칠성각의 두 건물만 있고 무량수각 뒤쪽에는 굴속에서 흐르는 영천약수가 있다.


인기척은 없고 다만 숨쉬지 않을 자유를 얻은 처마에 매달린 물고기 한 마리가 바람을 타고 파란 하늘을 유영한다. 무념무상의 소리를 파문으로 남기며….

시작과 끝을 구분할 수 없는 길은 떠남과 돌아감을 열고, 흐름이 보이지 않는 시간은 탄생과 죽음을 연다. 돌아가는 것. 그 어느 것도 피할 수 없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잎 떨어진 감나무에는 아직 붉은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영천 약수로 목을 축이고 길을 따라 조금 내려서서 육각정자가 보이고 목장승 두 개가 웃으며 반긴다. 조금 지나서 샘물바위가 나타난다. 휴양림 산책로에는 삼림욕대와 나무의자가 곳곳에 놓여 있다.


아치목교를 건너오면 1,1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천연기념물 365호 보석사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1084년에 심었다는 거목으로 높이 48m, 둘레 16.5m으로 1982년에 천연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목교를 건너 보석사로 들어선다. 보석사(寶石寺)는 라는 이름은 절 앞산 중턱에서 금을 캐내어 불상을 주조 하였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신라 헌강왕 원년에 조구대사가 창건하여 천년을 이어오며 넉넉한 품으로 중생을 기다려온 보석사는 규모는 작은 절이지만 이 절이 지닌 역사적인 무게만은 결코 만만치 않다. 조선시대 임진년 8월(1592)의 금산벌 싸움에서 중봉 조헌선생과 함께 싸우다 순국하신 기허당 영규대사가 이곳에서 수도를 했고 그 인연으로 보석사내의 의선각에 영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종루 아래를 지나면 왼쪽으로 5기의 부도가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으며 전나무길을 따라 내려서면 오른편에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모아 왜병과 싸운 의병승장 영규대사의 뜻을 기리는 의병승장비가 서 있다.


17시 정각 단청이 없는 맞배지붕 양식의 일주문을 빠져 나온다. 여느 절 집의 화려한 비단단청 일주문과 달리 보석사 일주문은 아무런 색의 장식이 없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은 끝이 난다.



 

 

 


'등산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반산(진안, 647m)  (0) 2010.03.10
실버대전둘레산길 21개구간   (0) 2010.02.01
오대산(금산 남이, 569m)   (0) 2010.01.05
양각산(금산 부리, 565m)  (0) 2010.01.05
선야봉(금산 남이)  (0) 2010.01.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