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녹색미, 검정보리, 보라색당근, 자주색양파...
보기만 좋다고요? 몸에도 좋거든요!
“먹을거리에 색깔을 입혔더니 오감 자극하고 건강성분이 풍부한 감성ㆍ웰빙식품으로 재탄생하다.”
요즘 농업의 새로운 돌파구로 주목받고 있는 것이 감성(感性)농업이다. 가격ㆍ품질을 주로 따지던 소비자의 시선이 이제 색ㆍ디자인 등 감성으로 옮겨가고 있어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은 식품의 컬러화를 주도하는 사람들에겐 든든한 우군이다.
맛ㆍ향보다 '감성언어'인 색으로 소비자를 군침 돌게 한다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다.
식품의 ‘컬러풀 월드’(colorful world)는 주식인 쌀에서부터 시작된다.
컬러 쌀 개발엔 코팅(coating)과 육종(育種) 등 두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물에 일반 쌀을 푼 뒤 홍국균을 넣으면 균이 발효되면서 쌀이 불그스름하게 코팅된다. 홍국균 대신 감귤에서 추출한 플라보노이드 성분(황색 색소)을 첨가하면 노란 코팅 쌀이 된다.
코팅 쌀로 밥을 지으면 색이 밥물에 우러나온다. 코팅 쌀은 물에 적신 쌀에 색을 입힌 뒤 말린 것이므로 건조과정이 핵심 기술이다. 잘 말리지 않으면 쌀의 품질이 떨어져 밥맛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녹색미 등 일반 쌀보다 영양가 높은 컬러 쌀
코팅 쌀과는 달리 조반(造飯) 도중 변색되지 않는 흑색미ㆍ적색미ㆍ녹색미 등 컬러 쌀(유색미)도 여럿 나와 있다. 컬러 쌀은 대개 흰쌀과 검정 쌀을 교배해 얻는다. 이들은 본래 쌀 영양소에 더해 흑ㆍ적ㆍ녹의 색소에 담긴 건강성분까지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이다.
흑색미에는 안토시아닌(포도 등 검붉은 색 식품에 든 항산화 성분)과 식이섬유(변비 예방)가 일반 쌀보다 많다. 녹색미는 라이신(필수 아미노산의 일종) 함량이 일반 쌀에 비해 25~75% 높아 어린이 성장발육에 효과적이다.
컬러 쌀의 건강 효과가 입소문을 타면서 전체 논에서 유색벼의 재배면적 비율이 2007년 0.1%에서 2008년 0.29%, 2010년 0.53%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검정보리도 있다. 전북 고창에서 재배돼온 검정보리는 청보리 축제를 통해 관광객의 인기를 끌면서 지금은 가격이 쌀보다 1.5배나 비싸다. 짭짤한 농가소득원으로 자리를 잡았다. 덩달아 고창의 검정보리 재배면적도 10㏊(2007년)→100㏊(2009년)→180㏊(2010년)로 늘어났다.
항산화 성분 많은 보라색당근, 검정 토마토
2009년엔 보라색 당근이 선을 보였다. 색의 ‘연금술사’들이 당근에 보라색을 입힌 것은 보라색이 주황색보다 더 멋져 보여서가 아니다. 안토시아닌ㆍ라이코펜 등 항산화 성분이 풍부한 웰빙 당근을 개발하기 위해서다. 안토시아닌은 블루베리ㆍ포도ㆍ적포도주 등 보라색 식품에 많은 색소 성분이다. 라이코펜(색소 성분)은 토마토ㆍ구아바 등 붉은색 식품에 듬뿍 함유돼 있다. 안토시아닌과 라이코펜은 둘 다 유해산소를 없애는 항산화 성분이다.
우리가 흔히 먹는 주황색 당근엔 노란색 색소인 베타카로틴이 풍부하다. 보라색 당근엔 안토시아닌ㆍ라이코펜이 풍부하나 베타카로틴 함량은 주황색 당근보다 덜 들어 있다. 당근을 보라색으로 변색시키기 위해 농촌진흥청 식량과학원 연구팀은 당근의 야생종을 찾아 나섰다.
야생엔 보라색ㆍ노란색ㆍ흰색ㆍ붉은색 당근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작업의 무대는 전 세계다. 연구팀은 국내 유전자원센터와 미국 식물도입국(PI)에서 야생 당근의 유전자원을 공급받았다.
멘델의 유전법칙상 주황색은 가장 열성(劣性)이어서 보라색과 주황색을 교배하면 보라색 당근이 탄생한다. 이처럼 당근의 색깔을 보라색으로 바꾸는 것은 기술적으로 별 문제가 안 됐지만 모양이 너무 길쭉하거나 맛이 떨어지는 등 보라색 원종 당근의 낮은 품질을 우리가 먹는 당근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작업이 더 힘들었다고 한다.
검정 토마토도 나왔다. 붉은 토마토에 비해 비타민 C는 1.4배, 베타카로틴은 2배, 라이코펜(항산화 성분)은 3배 이상 함유한다. 토마토는 노란색ㆍ오렌지색으로도 변신했다.
과일도 고유의 색에서 벗어나 최근엔 ‘속까지 빨간 사과’(뉴질랜드산)가 선보였다. 기존의 사과는 겉이 빨갛고(또는 청색) 속살은 하얘 적색과 백색 식품중 어느 쪽으로도 분류하기 힘들었으나 이런 고민을 덜어준 셈이다.
‘속까지 빨간 사과’는 사과의 향ㆍ당도ㆍ맛을 유지하면서 안토시아닌ㆍ플라보노이드 등 항산화 성분이 더 많이 들어있다. 농촌진흥청은 분홍색ㆍ노란색 포도, 주황색ㆍ붉은색 배를 개발 중이다.
전립선암 억제하는 유색감자도 개발
감자ㆍ고구마ㆍ양파ㆍ버섯 등도 색의 ‘연금술사’들에겐 흥미로운 ‘캔버스’다.
컬러감자엔 일반(흰색) 감자엔 없는 안토시아닌이 다량 들어있다. 농진청이 개발한 유색감자 ‘자영’(보라색)ㆍ‘홍영’(붉은색)이 전립선암 세포에 강력한 억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은 이래서다.
겉과 속이 보라색인 ‘신자미’, 호박색인 ‘주황미’ 등 컬러 고구마도 개발됐다. 이들 고구마엔 안토시아닌ㆍ베타카로틴 등 항산화 성분이 다량 함유돼 있다.
고유의 황갈색 대신 자주색ㆍ붉은색으로 옷을 갈아입은 컬러 양파도 개발됐다. 컬러 양파를 얻기 위해 농진청 연구팀은 양파의 야생종을 수집했다.
이 과정에서 원산지인 중동에선 붉은색 양파, 인도에선 자주색 양파를 주로 먹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야생엔 다양한 색깔이 있어 농산물의 컬러화를 돕는다. 이들 중 유용한 것을 선발한 뒤 교배해 개량하는데는 대개 10년 이상이 소요된다.
‘곡물 아티스트’ 신종직업까지 배출
농산물의 컬러화는 먹을거리를 통한 웰빙을 원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측면이 크다. 컬러로 번지는 들판이 건강으로 물드는 밥상을 창조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인지 소비자의 선호도에 민감하다. 육종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색을 바꿀 수 있는 유전자변형(GM) 기술이 배제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양한 컬러 작물의 창조는 ‘곡물 아트’와 ‘논 아트’라는 새로운 예술 영역을 추가시켰다.
곡물 아트는 쌀ㆍ보리ㆍ콩ㆍ팥ㆍ녹두 등 곡물의 종자를 이용해 그림이나 홍보문구를 그리는 것이다. 곡물 아티스트라는 신종 직업까지 배출했다.
지난해 G20 정상회담을 기념해 식량과학원이 G20 국가들의 국기를 곡물종자를 이용해 그린 것이 곡물 아트의 한 예다. 크기는 보통 가로ㆍ세로 30∼40㎝와 60㎝ 정도다. 콩과 팥으로 쥐 모양의 그림을 그린 ‘콩쥐팥쥐’도 곡물 아트에 속한다. 곡물 아트 작품은 마른 곡물을 이용하므로 벌레 먹는 것만 잘 막으면 10년 이상 보전이 가능하다.
논 아트는 규모가 훨씬 크다. 30m<E0BF>200m 크기의 작품도 있다. 보통 5∼6월에 시작되며 작품 감상의 최적 시기는 벼가 논에서 무르익는 가을이다.
논 아트는 논이 캔버스가 되고 녹색과 흑색 벼가 물감이 된다. 지난해 식량과학원은 경남 밀양ㆍ전북 익산ㆍ충남 아산 등 세 곳의 철로 변에 논 아트 작품을 전시했다. 식량과학원으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지자체에서도 지난해 40여 곳에서 논 아트를 선보였다.
박태균 중앙일보 식품의약전문기자
컬러푸드는 만병통치약!!
"하루에 다섯가지 색깔의 음식을 섭취하라"
요즘은 일반 가정에서도 식욕을 높이는 붉은 색(방울토마토)과 노란 색(당근) 식품을 보기 좋게 식탁에 올리는 등 컬러를 고려하기 시작했다. 파프리카 등 원색의 채소를 써서 ‘눈으로 먹는 음식’도 만든다. 식탁보나 그릇까지 오렌지색으로 새로 장만하기도 한다. 오렌지색이 기분을 들뜨게 하고 식욕을 돋운다는 이유에서다.
한방에선 컬러 푸드의 효능을 설명하기 위해 음양오행의 원리까지 동원한다. 사람의 장기마다 오행이 있으며, 식품에도 오행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특정 장기를 돕는 색깔이 따로 있다고 설명한다. 심장은 붉은 색, 간은 녹색, 노란 색은 위, 검은 색은 신장, 흰 색은 폐를 이롭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내에선 ‘컬러 푸드=5색(적ㆍ녹ㆍ황ㆍ흑ㆍ백) 식품’으로 인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에선 더 많은 색깔을 등장시킨다. 주황색ㆍ파란색ㆍ보라색까지 추가해 ‘레인보우 다이어트’라는 용어를 흔히 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세상에 무색의 ‘투명 식품’은 물ㆍ사이다ㆍ소주 정도다. 대부분의 식품은 저마다 컬러를 갖고 있다. 그러나 백미ㆍ설탕ㆍ소금 등 3백 식품, 콜라 등 유해 논란이 있는 식품까지 컬러 푸드의 범주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 컬러 푸드는 채소ㆍ과일이 대표적이다. 따라서 ‘컬러 푸드를 즐겨 먹자’는 말은 ‘하루에 다섯 가지 색깔의 채소ㆍ과일을 섭취하자’는 의미로 흔히 읽혀진다.
채소ㆍ과일의 색깔이 주목받는 것은 그 껍질이나 가식(可食) 부위에 든 각종 파이토케미컬(phytochemical, 식물 생리활성물질) 때문이다. 채소ㆍ과일의 색소 성분인 파이토케미컬은 탄수화물ㆍ지방ㆍ단백질ㆍ미네랄ㆍ비타민 등 5대 영양소와는 다른 존재다. 토마토의 라이코펜, 콩의 아이소플라본(식물성 에스트로겐), 적포도주의 폴리페놀, 당근의 베타카로틴, 고추의 캡사이신 등이 가장 널리 알려진 파이토케미컬이다. 식물에 수만 종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까지 700여종만 밝혀졌다.
성인병과 노화 억제하는 항산화 물질 함유
같은 채소·과일이라면 색이 짙은 것이 좋아
파이토케미컬은 암 등 성인병과 노화를 억제ㆍ예방하는 항산화 물질이다. 항산화 물질이란 암ㆍ노화의 원인인 유해 산소(활성산소)를 제거하는 건강 성분이다. 식물이 각기 항산화 물질을 지닌 것은 척박한 환경ㆍ자외선ㆍ곤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멜라닌 색소가 ‘피부의 적’인 자외선(피부 주변에 유해산소를 쌓이게 함)으로부터 우리의 피부를 보호해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파이토케미컬은 일반적으로 화려하고 짙은 과일ㆍ채소에 풍부하다. 채소ㆍ과일의 색은 태양에 오래 노출될수록 더 짙어지며 일교차가 클수록 더 선명해진다.
이처럼 주변의 자연조건이 혹독할수록 색소 즉 파이토케미컬이 더 많이 생긴다. “같은 채소ㆍ과일이라면 색이 짙은 것”을 권하는 것은 이래서다.
파이토케미컬을 더 많이 섭취하려면 “채소ㆍ과일의 색이 변하기 전에 먹을 것”을 권장한다. 또 사과ㆍ포도 등의 껍질을 버리지 말고 잘 씻어서 꼭꼭 씹어 먹으라고 추천한다. 껍질째 숙성시킨 적포도주가 껍질을 벗긴 뒤 제조한 백포도주보다 건강에 더 유익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채소ㆍ과일의 색깔은 ‘먹을 수 있는 부분’을 기준으로 정해진다. 사과의 과육은 흰색이지만 껍질(붉은색)을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사과는 붉은 색 식품이다. 그러나 껍질을 먹지 않는 수박은 녹색이 아니라 붉은 색 식품으로 분류된다.
컬러 푸드는 요즘 거의 만병통치약처럼 소개된다. 젊음을 유지하고 독소를 제거하며 삶에 활력을 준다는 것이다. 또 암ㆍ당뇨병ㆍ심혈관 질환을 예방하고 피부 미용ㆍ두뇌 발달ㆍ다이어트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그런 효능이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색깔에 집착하기 보다는 다양한 식품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조언하는 전문가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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