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없는 날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SK텔레콤 가입자들의 이동전화가 6시간 동안 불통(不通)됐던 지난 20일 밤 기자는 서울 마포의 가든호텔 뒷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문자메시지로 받은 약속 장소의 전화번호만 믿고 길을 나섰다가 이동전화가 연결되지 않아서 미아(迷兒) 신세가 되어야 했다.
"실례합니다. 혹시 ○○○이 어딘지 아세요?" 길을 묻다 보니 10여분이나 늦게 약속 장소에 도착해야 했다. 불편했지만 그 덕에 비슷한 연배였던 우리 일행은 잠시 옛날이야기를 화제로 삼을 수 있었다.
1980~90년대 서울 종로서적이나 강남역 뉴욕제과 등이 약속 장소로 쓰였던 것은 일단 길을 나서면 연락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같으면 휴대전화로 '어디야?' 한마디면 끝날 일도 그때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 번 약속이 어긋나 평생을 다시 못 만난 연인들의 사연은 삼류소설의 단골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렇게 20~30대에 처음 이동전화를 접한 40대 남자들은 스마트폰이 안 터지는 밤에 '응답하라 1994' 시절 추억을 되새겼다.
스마트폰과의 연결이 끊긴 6시간은 이미 ICT(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한 젊은 층에는 꽤 큰 불안과 공포를 안겨주었던 것 같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인터넷 게시판일수록 불만의 글이 많이 올라온 것을 볼 수 있었다. 철들기 전에 디지털 기기를 접했다면 이동통신이나 인터넷 같은 것은 없다가 생긴 편리한 물건이 아니라 원래 있던 물건이니 그럴 법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 앨토스에 있는 발도르프초등학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이 학교는 컴퓨터가 창의적 사고와 인간적 교류를 막고 주의력을 훼손한다고 보기 때문에 교육과정에서 IT 기기를 최대한 배제한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이 학교 학부모의 절반 이상이 구글·애플·야후·이베이·휼렛패커드 등에 다니는 IT 전문가란 점이다. 로스 앨토스는 우리가 흔히 '실리콘 밸리'라고 부르는 곳이다. 그들은 자녀들이 IT에 의존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기에 최소한 어린 시절에는 IT 기기의 자극에서 아이들을 떼어놓는 것이다. 미국에선 어릴 때 IT 기기를 접할수록 현실 자극에 둔감하고 디지털 기기가 주는 빠른 자극에만 민감한 '팝콘 뇌'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까지 나와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주말에 가족들과 식당만 가도 4~5세 아이들까지 스마트폰에 빠져 있는 것을 종종 본다. 그 아이들은 말 그대로 '얼리 어답터'일지는 모르겠지만 창의적인 어른으로 자라날 가능성은 실리콘 밸리의 어린이들보다 결코 높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스마트폰에 열광하기만 했지 올바른 이용법을 가르치는 데 소홀했다. 이동통신 도입 초기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SK텔레콤 1998년 광고 카피)라고 했던 통신회사들도 입을 다문 지 오래다. 이번 스마트폰 먹통 사태는 다행스럽게도 옛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이참에 '스마트폰 없는 날'을 일년 중 하루라도 만들면 어떨까. 통신회사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그날 시스템을 점검해도 좋을 것이다.
신동흔 | 조선일보 산업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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