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 사계솔바람길
사계 솔바람길은 선비의 길이다.
사계 김장생 선생의 고택인 은농재를 품은 왕대산을 걷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 길을 걸으며 사계 선생의 삶과 예학의 정신을 돌아보고 소나무가 만들어내는 아늑함도 느껴보자. 조붓한 오솔길로 딱 한 사람 걷기 좋은 솔바람길. 선비의 정신을 따라 느긋하게 걷기 좋은 솔바람길은 오늘의 근심을 털어내고 내일의 힘을 얻어갈 수 있는 소중한 길이다.
계룡역에서 은농재까지는 도보로 약 1.2km다. 계룡 e편한세상 아파트를 경유해 두계터널을 지나 두마면사무소까지 걸어서 가도 된다. 사계 솔바람길은 코스가 짧다. 산책 수준이다. 물 과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시집 한 권 챙겨두는 것도 좋겠다. 왕대산 정상의 정자나 쉼터 바 위에서 쉬어가며 시집을 읽는 시간도 산책의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계룡시의 이름은 계룡산에서 따왔다. 계룡산은 산의 모양이 닭의 벼슬을 쓴 용의 모습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계룡시는 용의 정기가 깃든 도시인 셈이다. 조 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도읍지로 꼽은 명당이기도 하다. 태조는 서울에 도읍을 정 하기 전, 계룡산 남쪽 신도안면 일대를 도읍지로 정하고 터를 닦았다. 터는 지금도 남 아 있다. 계룡산에서 동남쪽으로 향하면 두마면 왕대산이 있다. 왕대산에는 사계 김 장생 선생이 살았던 고택과 사랑채인 은농재가 자리하고 있다. 김장생 선생은 조선 중 기 때의 문신으로, 스무 살 때 스승 율곡 이이의 수제자가 되어 훗날 예학의 거봉으로 우뚝 선 인물이다. 김장생 선생은 송시열과 송준길, 이유태, 윤선거, 유계 등 대가를 포함한 총 285명의 후학을 배출했다. 평생을 유학자로 살았던 그는 둘째 아들 김집과 함께 조선 유학의 18현(賢)으로 문묘에 배향되었다.김장생 선생은 기호학파의 거두다. 기호는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의 지방을 중심으 로 율곡 이이의 성리학을 추종하는 학파다. 김장생 선생의 예학은 양대 전란으로 혼란 스러운 국가의 기강을 바로 잡고 사회 폐단으로부터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은농재는 김장생 선생과 정부인 순천김씨가 말년에 기거하던 곳이다. 김장생 선생 이 55세 되던 1602년에 지었는데, 은농재란 이름은 ‘은둔하여 농사를 짓는 집’이란 뜻 이 담겨 있다. 은농재는 은둔의 공간이다. 그는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와 은농재 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했다. 입구가 있는 대문채를 지나면 은농재가 있고 행랑채와 안채가 뒤에 있다. 그리고 안채 뒤로 장독대가 있고 옆으로 김장생 선생의 영당이 있다. 영당은 김장생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출상하기 전에 시신을 모셔둔 곳이 다. 현재 영당 안에는 풍성하고 흰 수염이 가득한 사계 김장생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영당 앞에는 후학을 가르치던 성례당이 있다.
사계 솔바람길은 은농재에서 출발한다. 조선 양반가의 겸손함이 담겨 있는 은농재 에서 나와 왕대산업단지 방향으로 약 200m 걸어가면 왕대산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등산로 입구에서 조금 걸어가면 조붓한 숲길이 나온다. 소나무 사이로 햇살이 푸 르게 칠해 놓은 산길을 걷는다. 경사가 급하지 않아 걷기 적당하다. 천천히 오르면 삐 죽이 튀어 나온 풀잎들이 바지에 스쳐 사각거린다. 길 중간 중간에 벤치가 있어 잠시 숲의 향기를 맡아도 좋다.길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모원재와 왕대산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모원재로 가 는 길은 사람들의 왕래가 없는지 길 위에 잡풀이 무성하다.모원재는 김국광의 재실이 있는 곳이다. 김국광은 세종 23년에 벼슬길에 올랐고 세조의 즉위를 도와 신임을 얻어 병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에 이르렀다. 또한 경국대전 편찬에 참여한 인물이다.갈림길에서 왕대산 정상을 향해 10여 분 더 걸어가면 정상이 나타난다. 정상에는 쉬어가는 정자가 있고 사계 김장생 선생의 일대기와 허씨 부인의 설화를 적어 놓은 10여 개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정자에 음성 안내장치가 있어 음악과 함께 김장생 선생의 삶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김장생 선생은 성품이 너그럽고 문장과 글이 뛰어난 덕행군자로 알려졌다. 선생은 예의 실천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것, 성품이 올바를 것과 강한 도덕성을 강조했다. 4백 년 전의 가르침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에는 쉼터 바위가 있다. 쉼터 바위 앞에 있는 설명판에는 사 계 김장생 선생이 제자들과 학문 수영을 위해 사색하며 담소를 나누는 곳이라고 쓰여 있다. 길가에는 한 사람씩 앉기 좋은 돌이 모여 있다. 이곳에 앉아 솔솔 불어오는 바 람을 맞으며 숲의 향기를 느껴본다. 과거 바위에 모여 앉아 사색을 즐겼을 김장생 선 생과 제자들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바탕 휴식을 취한 후에는 쉼터 바위를 사이에 두고 난 길을 따라 발걸음 가볍게 걸어간다.쉼터 바위에서 하산하는 길은 비교적 넓다. 구불구불 이어진 길을 지나 내려오면 두계사에 이르고 도로변에서 우회전하면 은농재로 원점 회귀하게 된다.은농재 앞 도로 건너편에는 ‘김광수시혜불망비’와 ‘김덕정려각’이 있다. 도로 옆에 뜬금없이 서 있는 불망비 옆 ‘김덕정려각’은 계룡의 효자 김덕을 기리는 효자비다. 김 덕은 9살에 3년간의 지극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예를 다해 장례를 치러 주위를 놀라게 한 계룡의 효자였다고 전해진다.사계 솔바람길은 힘들이지 않고 걷는 길이다. 지역 사람들은 가볍게 운동 삼아 걷 는다. 뒷산에 가듯이 천천히 걸으면 되는 길이다. 세상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그동안 눈여겨 두지 않았던 세계가 보이는 것처럼 사계 솔바람길은 작은 것에 관심을 두게 하는 그런 길이다. 도시에서 즐기는 느슨한 산책이다.
대사헌 허응에게 예쁜 딸이 하나 있었다. 그녀 나이 17세 때 충청도관찰사 김약채의 아들 김문과 결혼했다. 신혼 초에 남편의 급사로 청상과부가 되었다. 그녀의 배에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친정 에서는 딸을 재혼시키려 했지만 그녀는 몸종 하나를 데리고 집을 빠져나와 시댁으로 향했다. ‘죽더 라도 김씨 가문에 가서 죽겠다’는 것이었다.어느 날 산속에서 길을 잃어 기진맥진한 그녀에게 호랑이가 나타나 시댁이 있는 연산까지 길을 안 내했다. 그녀를 인도한 호랑이는 시댁 가까이 와서 크게 한 번 울고 사라졌다. 그녀가 시댁의 문을 두드렸으나 시아버지인 김약채는 어린 며느리의 고생을 생각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린 며느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집 앞에 앉아 받아주길 간청했다. 그날 밤 많은 눈이 내렸는데 그녀가 앉아 있는 자리에는 눈이 쌓이지 않았다. 이를 본 김약채는 보통의 일이 아니라 생각하여 며느리를 받아들였 다.그녀는 광산김씨 집안을 명문가의 반열에 올린 허씨 부인이다. 평생을 수절하며 살아간 허씨 부인 에게 세조는 정문(旌門)을 세우고 정경부인의 호칭을 내렸다.
은농재 → (0.2km 8분) → 왕대산 입구 → (0.7km 15분) → 모원재 갈림길 → (0.3km 10분) → 왕대산 정상 → (0.4km 12분) → 쉼터 바위 → (0.8km 20분) → 두계터널 → (0.6km 15분) → 사계 고택(은농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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