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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일보

한 財閥 3세가 보여준 새로운 희망

by 많은이용 2014. 10. 2.

한 財閥 3세가 보여준 새로운 희망

 

오랜만에 재계에서 기분 좋은 뉴스가 나왔다. 최태원 SK 회장의 둘째 딸 민정(23)씨가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입영한 것이다. 그동안 재벌가 딸이라면 부모 잘 만나 호텔이나 음식점·갤러리를 경영하면서 명품으로 치장하고 고급 외제차 타는 여자를 떠올렸다. 하지만 민정씨는 달랐다. 고등학교 때는 방학이면 편의점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었고, 베이징대 유학 시절에는 한국 유학생을 상대로 입시 강사를 하면서 생활비를 벌었다.

면접관이 해군에 지원한 이유를 묻자 민정씨는 "영국 탐험가 섀클턴의 리더십과 도전 정신에 감동을 받아서"라고 답했다. 섀클턴은 1914년 27명의 승무원과 함께 인듀어런스호(號)를 타고 남극 탐험에 나섰던 인물이다. 배가 떠다니는 얼음덩이에 갇히는 바람에 2년 넘게 얼음 위에서 생활했다. 섀클턴은 목숨 같은 비스킷을 대원에게 양보하고, 펭귄을 잡아먹으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강력한 정신력으로 희생·절제·창의력을 실천하면서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살려냈다. 극한 상황에서 진정한 리더가 무엇인가를 보여준 것이다. 민정씨는 섀클턴이 보여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극복하는 리더십을 해군에서 배우고 싶어 했다.

태어날 때부터 남보다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무)가 절실하다. 영국 왕실의 앤드루 왕자는 아르헨티나와 벌인 포클랜드 전쟁에서 헬기 조종사로 참전했고, 조카인 윌리엄·해리 왕자도 포클랜드와 아프가니스탄에서 근무했다.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의 아들 마오안잉은 6·25전쟁에서 중공군 총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의 참모로 근무하다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미군 장성의 자식들이 대거 참전했고, 이 중 36명이 전투 중 숨졌다.

스웨덴에는 삼성과 현대차를 합친 정도로 덩치가 큰 재벌인 발렌베리 가문이 있다. 이 가문은 5대를 내려오면서 'CEO(최고 경영자)가 되려면 해군 장교로 복무해야 한다'는 불문율을 지키고 있다. 독일의 가전업체 밀레 그룹도 후계자 요건에 군 복무가 필수다. 지금 밀레 회장인 라인하르트 진칸 역시 기갑부대 장교 출신이다. 우리나라 재벌 중에도 최신원 SKC 회장 부자(父子)가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고, 쌍용그룹 오너였던 김석원·석준 형제도 자식까지 해병대 가족이다.

그러나 상당수의 재벌 3세는 이중국적 제도를 악용하거나 각종 편법을 동원해 병역 의무를 피하고 있다. 있는 집 자식은 군대에 빠지고, 없는 집 자식만 고생한다면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까? 배가 고파 봐야 음식이 귀한 줄 알고, 힘들게 훈련해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한다.

그동안 우리에게 비친 재벌 3세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그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비상장 계열사에 그룹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거액의 배당금을 챙겼다. 비상장사의 덩치가 커지면 주식 시장에 상장, 주식을 팔아 거액을 벌었다. 6·25전쟁 때 한강 다리를 끊고 도망가면서 방송으로 안심하라고 했던 대통령, 임진왜란이 터지자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기 바빴던 선조와 다를 게 없다.

힘 있는 자, 가진 자가 솔선수범하고 희생하지 않으면 국가든 기업이든 미래가 없다. 다행히 군복 입은 민정씨에게서 새로운 리더의 희망이 보였다.

                                                 -조선일보 2014. 10. 1. 김영수의 경제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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