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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넌 할 말 없어?

by 많은이용 2015. 9. 18.

넌 할 말 없어?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한현우 

 

  • '생각 말하는 법' 외면하고 正答만 강요하는 학교에서
    면박 겁내 침묵하는 청년들… 그들이 가진 생각 끌어내려
    기업이 돈·시간 들여 가며 말문 여는 교육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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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고 회사 TBWA코리아는 11일 낮 서울 홍익대에서 '망치 3'라는 수상한 이름의 발표회를 열었다. 대학생 13명이 지난 6개월간 다듬어온 나름의 주제로 한 사람당 7분씩 발표하는 자리였다. '잡아먹지 않아요' '그래, 나 못됐다' '좋아요가 싫어요' 같은 제목만으로도 흥미로운 주제 발표가 두 시간 동안 이어졌다. 광고 회사 직원들이 지난 6개월간 이들 각각의 멘토가 되어 발표 준비를 도왔다. 400명의 청중은 이들 이야기에 급속히 빨려 들어갔다가 7분 만에 박수와 환호를 신호로 빠져나오곤 했다.

    이 프로젝트는 TBWA코리아가 2003년부터 운영해오던 일종의 인턴십을 2013년부터 이런 형태로 바꾼 것이다. '대학생들에게서 들을 만한 이야기가 있겠어?' 하는 생각을 '들을 만한 이야기로 만들어주자'로 고쳐먹었다. 이 학생들에게는 '크리에이티브 0팀'이란 이름이 붙었다. '크리에이티브 1팀'으로 시작하는 정규 부서 맨 앞에 이들을 둔 것이다.

    작년 8월 '망치 2' 때 발표된 주제 중 하나인 '×년기를 지나는 우리들에게'는 이 주제를 발표한 여학생이 우연히 트위터에서 본 '여자는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에 ×년기를 거친다'는 문장 한 줄에서 시작됐다. 세탁물 수거·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던 남학생은 대변 지린 바지를 며느리 몰래 세탁 맡기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오전 10시 아파트 풍경을 소설로 쓰기도 했다. 이 이야기들은 최근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라는 책으로 엮여 나왔다.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어서 뇌관을 찾아주면 터지지만 뇌관을 못 찾으면 고철 덩어리일 뿐이라는 뜻이다.

    광고 회사가 대학생들 이야기를 6개월간 '들을 만한 이야기'로 만들어 청중 앞에서 발표시키는 이벤트가 별것 아닌 일로 들릴 수도 있다. 지난 몇 년간 대학에서 특강을 하며 그들에게 발표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아는 입장에서는 좀 다르다. 조금 과장하면 우리나라 대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의견도 주장도 없다. 할 말도 없고 하려고 들지도 않는다. 심지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수습기자 교육에서 만난 언론사 신입사원들도 대학생들과 똑같았다. 평가하지 않고 야단치지 않고 비웃지 않을 테니 제발 얘기 좀 하라고 해도 다들 어색한 웃음만 흘린다. 도대체 한국 대학생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를테면 책 한 권을 읽어오게 하고 "이 책에 대해서 아무 얘기나 해보자"라고 말한다. 아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정답을 말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틀린 답을 말할까 봐 겁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책 본문 활자가 맘에 안 들더라고" 식으로 먼저 얘기를 꺼내면 학생들 얼굴에 웃음이 번진다. '정말 아무 얘기나 해도 되나 보다' 하는 표정이다. 이런 식으로 8주를 강의하면 5~6주 차쯤엔 제법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 학생들이 생겨난다. 종강 후 뒤풀이 때 물으면 어김없이 "책 읽고 토론한 것이 가장 좋았다"고 한다. 초·중·고 12년을 오로지 정답 맞히는 기계로 살고, 대학에서도 취업 시험 정답 맞히기에 골몰해 온 이들이 실로 십수 년 만에 시험과 상관없는 책을 읽고 '나의 생각 말하기'를 경험하는 것이다.

    예전 미국 대학에서 청강하던 시절 놀랐던 것은 교수가 질문하면 서로 먼저 말하려고 여기저기서 손드는 모습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학생이 완전히 황당한 대답을 해도 교수가 절대로 '틀렸다'고 하지 않는 것이었다. 완전히 동문서답을 한 학생에게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 참 재미있는 생각이군요."

    한국의 강의실이었다면 "그걸 대답이라고 하느냐"는 면박이 날아갔을 것이고, 고교 교실이었다면 "너, 나와!" 했을 것이다. 이것이 한국 교육과 미국 교육의 차이이다. 미국은 들어주고 한국은 들어주지 않는다. 책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에도 이런 구절이 있다. "어느 날 차 마시고 수다 떨다가 이런 주제로 발표해도 재미있겠다 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제가 됐다. 이 대목에서 멘토가 한 일은 말을 잘 들어주고, 재미있는 걸 재미있다고 말해 준 것밖에 없다."

    한 광고 회사의 대학생 멘토링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공교육은 "100점 100점, 1등 1등"을 주문처럼 외우는데 기업에서 젊은이들의 눈과 입을 틔워주는 셈이다. 이 프로젝트는 대학생들에게 "넌 할 말 없어?" 하고 묻는다. 왜 할 말이 없겠는가. 허공을 떠도는 수많은 SNS 메시지를 보면 할 말 엄청나게 많다. 다만 손들고 '내 생각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을 뿐이다. 제도 교육에서는 정답만 가르치는데 정작 사회에 나와 보니 '자신만의 답'을 요구한다. 기업에서 이를 다시 가르쳐야 하니 엄청난 시간과 비용의 낭비다.

    '사람은 누구나 폭탄이다' 말미에 몇 가지 재미있는 문제가 실려 있다. 이 문제를 주변 대학생들에게 제시해 볼 것을 권한다. 물론 정답은 없다. 문제 1. 소금이 물에 완전히 용해되기까지 과정을 소금의 입장에서 기술하라. 문제 2. 팔순이신 할머니께 '뷁'이란 단어를 설명하라.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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