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꼴찌→司試 18등… 고교 야구선수의 '14년 집념'
[알파벳 p와 q구분 못했던 그, 초시계 놓고 책과 승부]
- 고3때 프로야구 지명 탈락, 장권수씨의 '인생역전 홈런'
중학교 책부터 공부 새출발…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아요"
첫 수능 모의고사 70점 받아… 유일한 공부 밑천은 체력
"야구밖에 몰랐던 시절 원망… 다른 적성 알아볼 기회줘야"
"스무 살 때까지 알파벳 소문자 피(p)와 큐(q)도 구분 못 했던 사람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게 남 얘기였다면 저도 안 믿었을 겁니다(웃음)."
그는 일단 중학교 수학 문제집부터 샀다. 유일한 공부 밑천은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었다. 매일 새벽 서울 대림동 집에서 지하철 첫차를 타고 학원에 갔다. 매일 밤 10시 학원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공부했다. 지하철에선 영어 단어장을 꺼냈고, 화장실에 갈 땐 수학 노트를 들고 갔다. 2003년 여름 모의고사 점수 250점을 넘겼다. 장씨는 "머릿속이 백지(白紙)여서 그런지 영어 단어 하나만 외워도 점수가 오르더라"고 말했다. 그해 가을 수능시험에서 서울 시내 대학에 진학 가능한 수준인 300점을 받았다. 하지만 고교 내신 성적이 전교 356등으로 꼴찌였던 게 발목을 잡았다. 3군데 대학에서 낙방하고 서울 가톨릭대 언어문화학부에 추가 합격으로 입학했다.
대학에서 노는 법부터 배우는 또래와 달리 장씨는 고전(古典) 읽는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군대에 가서도 플라톤의 대화 편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나오면 노트에 정리했다. 휴가 나오면 교수를 찾아가 노트에 적은 걸 질문했다. 그는 암기만 있을 뿐 질문이 사라진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에겐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묻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전역 후 법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담당 교수가 매일 연구실을 찾아와 모르는 걸 물어보는 장씨의 모습을 보고 사법시험을 권했다. 2008년 본격적인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 과목에 20만~30만원 하는 고시 학원 수업을 들을 형편이 안 돼서 독학으로 2년간 공부했다. 한 달 용돈 30만원으로 책값과 생활비까지 해결했다.
2010년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야구하던 시절처럼 삭발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책상 위에 초시계를 놓고 종일 책과 씨름했지만 다음해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야구도, 고시도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없어 취업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어려웠다. 결국 2013년 2월 장씨는 직업도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가장 절망에 빠졌을 때 반전(反轉)이 찾아왔다. 2014년 취업을 준비하며 '마음을 달래볼까' 하는 생각으로 나간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서 증권사에 다니던 지금의 아내 윤정미(31)씨를 만났다. 장씨는 고시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의 고민을 들은 윤씨가 "성실하니, 뭘 하든 성공할 것"이라며 응원했다. 아내의 격려로 장씨는 다시 책상에 초시계를 올려놓고 법전을 펼쳤다. 혼자서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노트에 정리해뒀다 한번씩 모교(가톨릭대) 은사였던 고려대 로스쿨 홍영기 교수를 찾아갔다. 홍 교수는 "법 철학을 유난히 좋아하고 고시 공부할 때도 한 문장이라도 이해가 안 되면 꼭 찾아와서 물을 정도로 집요하게 공부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에 사시 1차를 통과했고, 작년 10월 2차에 붙었다.
장씨는 야구를 하며 몸에 밴 규칙적 생활 습관과 집중력이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와 함께 야구하다 그만둔 친구 중엔 조폭이나 불법 도박 사업 등에 빠진 이도 있다고 한다. 장씨는 "야구를 하는 10년 동안 다른 삶에 대해서 알려준 사람도, 경험할 기회도 없었다"며 "유소년 운동선수들이 다른 적성도 알아볼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법연수원에도 초시계를 가져갔다는 장씨는 "법조인이 되면 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 더 무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17. 5. 8. 게재
대학에서 노는 법부터 배우는 또래와 달리 장씨는 고전(古典) 읽는 재미에 빠졌다고 했다. 군대에 가서도 플라톤의 대화 편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나오면 노트에 정리했다. 휴가 나오면 교수를 찾아가 노트에 적은 걸 질문했다. 그는 암기만 있을 뿐 질문이 사라진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에겐 모르는 것을 누군가에게 묻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전역 후 법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담당 교수가 매일 연구실을 찾아와 모르는 걸 물어보는 장씨의 모습을 보고 사법시험을 권했다. 2008년 본격적인 고시 공부를 시작했다. 한 과목에 20만~30만원 하는 고시 학원 수업을 들을 형편이 안 돼서 독학으로 2년간 공부했다. 한 달 용돈 30만원으로 책값과 생활비까지 해결했다.
2010년 사시 1차 시험에 합격하자 자신감이 붙었다. 야구하던 시절처럼 삭발하고 마음을 다잡았다. 책상 위에 초시계를 놓고 종일 책과 씨름했지만 다음해 2차 시험에서 떨어졌다. "야구도, 고시도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당장 돈이 없어 취업에 나섰지만 이마저도 어려웠다. 결국 2013년 2월 장씨는 직업도 없이 대학을 졸업했다.
가장 절망에 빠졌을 때 반전(反轉)이 찾아왔다. 2014년 취업을 준비하며 '마음을 달래볼까' 하는 생각으로 나간 클래식 음악 동호회에서 증권사에 다니던 지금의 아내 윤정미(31)씨를 만났다. 장씨는 고시에 미련이 남아 있었다. 그의 고민을 들은 윤씨가 "성실하니, 뭘 하든 성공할 것"이라며 응원했다. 아내의 격려로 장씨는 다시 책상에 초시계를 올려놓고 법전을 펼쳤다. 혼자서 공부하다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노트에 정리해뒀다 한번씩 모교(가톨릭대) 은사였던 고려대 로스쿨 홍영기 교수를 찾아갔다. 홍 교수는 "법 철학을 유난히 좋아하고 고시 공부할 때도 한 문장이라도 이해가 안 되면 꼭 찾아와서 물을 정도로 집요하게 공부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침내 2015년에 사시 1차를 통과했고, 작년 10월 2차에 붙었다.
장씨는 야구를 하며 몸에 밴 규칙적 생활 습관과 집중력이 공부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로 돌아가면 야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와 함께 야구하다 그만둔 친구 중엔 조폭이나 불법 도박 사업 등에 빠진 이도 있다고 한다. 장씨는 "야구를 하는 10년 동안 다른 삶에 대해서 알려준 사람도, 경험할 기회도 없었다"며 "유소년 운동선수들이 다른 적성도 알아볼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법연수원에도 초시계를 가져갔다는 장씨는 "법조인이 되면 저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으니 더 무거운 마음으로 공부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출처 : 조선일보 2017. 5. 8.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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