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한 덩이가 잠재운 아파트 공사 소음
아내를 불러 가장 크고 좋은 수박을 한 덩이 사서 공사하는 사람들에게 갖다 주자고 제안했다. 어리둥절하던 아내도 금세 내 뜻을 알아차렸다. 엘리베이터 안 공고문에 적힌 공사 책임자의 전화번호로 연락해 "바로 아랫집에 사는 사람인데 잠깐 올라가겠다"고 했다. 그 책임자는 당연히 항의하러 오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더운데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제 보니 공사 시작과 종료 시간도 잘 지키시고, 끝난 뒤 쓰레기도 말끔히 치우시더군요. 휠체어 생활 중인 저를 위해 가능하면 소음을 적게 내려고 배려하시는 마음도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감사의 말씀 드리려고 올라왔습니다."
짐작하건대 예상과 다른 나의 말에 어안이 벙벙해진 공사 책임자가 어쩔 줄 몰라 했다. "제 평생 집수리 여러 번 해봤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입니다. 수박을 제가 받아도 될지 모르겠군요. 이해해줘 정말 고맙습니다" "죄송하긴요. 오래된 아파트라 집수리 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요." 집으로 내려와 있는데 잠시 후 그 책임자라는 분이 전화를 했다. "아까는 제가 감사도 제대로 못 드렸네요. 혹시 고치실 거 있으면 무료로 다 수리해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고칠 것 없고요, 있더라도 비용 들여서 해야지요."
전화를 끊고 나니 마음이 참 가볍고 신선했다. 이어진 한 달간의 공사는 예상대로 소음과 전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별로 거슬리지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용하면 이 사람들이 공사를 제대로 하는지 궁금할 지경이 되었다. 그야말로 천국과 지옥이 내 마음속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 후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한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불만을
토로하려다가 내가 그분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하는 것을 보면서 입을 다물기도 했다. 올여름은 수박 한 덩이로 집수리의 소음을 전혀 소음으로 느끼지 않는 평안을 체험했고 덩달아 이웃 간에 따뜻함을 주고받았으니 그것만으로도 올여름은 잘 보낸 것 같다. 그 와중에 시간은 흘러 나도 이제 휠체어를 벗고 조금씩 걷고 있으니 신선한 초가을 바람이 더 신선하게 느껴진다.
자료출처 : 2019. 9. 17. 조선일보 게재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16/20190916028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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