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2007. 12. 6.]
어제 검찰은 그동안 대선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BBK사건에 대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신당과 국민들이 검찰 발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지만, 결론은 이명박 후보가 주가조작에 개입하지도 실제 소유한 것도 아니며, 이면계약서는 위조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대선 후보들은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 왔다. 상대방을 “단 한 방이면 날아간다”고 공격하고, “실탄이 없는 헛방일 뿐이다”고 응수해 왔다. 다른 후보는 “한 방에 날아가면 누군가 나서야 할 것이 아니냐, 나밖에 더 있느냐”고 외쳐댔다. 대통령선거가 아니라 서부활극을 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대선 후보들이 서로 인신공격적인 싸움에 몰두하는 사이 선거공약이나 정당정책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검증의 기회도 없었다. 최근에야 비로소 신문사들이 대선 후보들의 교육 분야 선거공약을 검증해 달라고 요청했다. 보내 온 자료들 가운데 소위 ‘빅3’라고 불리는 이명박·정동영·이회창 후보의 교육공약을 살펴보았다. 무너져 가는 공교육을 살리기 위해 이회창 후보는 교사 10만 명을 추가로 확보하고, 영어교육을 강화하며, 저소득층의 교육복지를 확대하고, 사립고 특성화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내용도 빈약하고, 이렇게 한다고 공교육이 내실화될 수 있을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스스로를 ‘교육대통령’이라고 선언한 정동영 후보는 어떤가? 0세부터 고교까지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우수 공립고 300개를 집중 육성하며 영어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겠다고 했다. 교육대통령이라는 소리만 요란했지 내용이 빈약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명박 후보는 상대적으로 공약수가 많다. 자율형 사립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고등학교를 300개 정도 선정하고, 영어교육을 강화하며, 대학입시를 단계적으로 자율화하고, 기초학력을 증진해 현재 30조원에 달하는 사교육비를 6년 후에는 15조원으로 줄이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찬이 많다고 먹을 것이 많은 것은 아니다. 영양가 있고 맛있는 반찬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공약이 핵심에서 벗어나고 있다. 이 후보의 공약에는 지식정보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 낼 수 있는 비전과 교육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의 교육민생고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대통령의 선거공약이 이 수준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 사교육비 대책에 치중하는 것은 마치 위암에 걸린 환자를 배가 아프다고 하니 소화제만 처방하고 있는 꼴이다. 사교육비 팽창의 근본원인은 공교육체제의 부실에 있다.
우리의 공교육은 현대의 지식정보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해 내지 못하고 있다.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교과서 내용을 외우는 것보다 넘쳐 나는 지식과 정보 가운데 필요한 것들을 탐색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과 새로운 지식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과 자질을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이러한 인재를 길러 내기 위해서는 국가교육 과정을 철폐하거나 최소화하고, 교과서 제도를 바꿔야 한다. 규제와 통제 위주의 교육행정구조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제까지의 소품종 대량생산위주의 공업사회적 교육방식에서 벗어나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학교를 개방해 교사뿐 아니라 사회의 다양한 전문가들이 미래세대를 다 함께 가르치고 지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미국·영국·독일 등의 세계 각국은 20세기 초반부터 이러한 방향으로 교육을 지속적으로 개혁하고 있다.
대통령 후보의 선거공약은 국가정책의 방향을 결정하고 국정운영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대선 후보들의 선거공약이 이토록 내용도 빈약하고 시대적 흐름과 사회적 변화에 뒤떨어져 있어 국가의 앞날이 걱정된다. 차기 정권에서도 공업사회적인 교육체제에 안주한다면 우리의 공교육체제는 무너져 버리고 우리는 2등 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지만 이제부터라도 서부활극적인 대선판에서 벗어나 후보들 간의 본격적인 정책대결을 펼쳐 나가고 이를 세밀히 검증해야 할 것이다.
정진곤 한양대 사회교육원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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