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하게 공부하는 한국 학생, 재미부터 찾으시라
한국 수학자 첫 정교수로 임용돼 화제, 진은숙씨와 수학·작곡 관계 풀 예정
부친인 김우창 梨大 교수 영향 받아 두 아들과 질문 이끄는 대화 자주해
좋은 질문에서 답 찾는건 쉬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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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 서울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음과 수의 판타지’를 주제로 강연하는 김민형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 /인터파크 제공
김민형(50)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교수는 영국 시각으로 지난 1일 오전 8시 출근 준비를 서두르며 전화를 받았다. 그는 5일 서울에서 열리는 'KAOS 음(音)과 수(數)의 판타지' 콘서트 무대에 선다. '무대 위 지식이 깨어나다(Knowledge Awake on Stage)'란 의미의 KAOS는 인터파크가 후원하는 '과학 토크콘서트'. 김 교수와 같은 세계적 학자들이 초청돼 국내 청소년 및 성인들에게 '일상 속의 과학'에 대해 들려준다. 콘서트 준비로 분주한 그를 전화와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서울대 수학과를 나오고 미국 예일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 MIT, 퍼듀대, 영국 UCL 교수를 거쳐 지난해 한국 수학자로는 처음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로 임용돼 화제가 됐다. 수론(數論)을 가르치며 수와 공간, 수와 기하학 사이 관계를 연구하는 산술기하학 전문가. 지난해 그는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이드 섀플리와 데이비드 게일 교수의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을 활용해 결혼 상대와 직장, 원하는 대학을 선택할 때 안정적 선택 방법이 존재하는지에 대해 청중들에게 들려줬다.
이번 콘서트엔 음악계의 노벨상인 그라베마이어상을 수상하고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을 만든 재독(在獨) 작곡가 진은숙씨가 초청돼 김 교수와 함께 작곡과 수학의 관계를 풀어 보일 예정. 김 교수는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원작자 루이스 캐럴이 수학자였던 것을 아느냐"면서 "그가 이야기 속에 숨겨 둔 '수학적 농담'이 오페라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KAOS는 인터파크 이기형 회장과 같은 수학자이자 김 교수의 '절친'인 포항공대 박형주 교수가 의기투합해 만들었다. 세 사람 모두 서울대 82학번 동기. 사회는 화학자이자 가수인 루시드 폴이 맡는다. 김 교수는 "학교 강의도 따지자면 일종의 '공연'"이라면서, "미국과 영국에서도 초·중·고등학생 대상 강의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는 강의에서 학생들이 대화를 통해 '모호했던 것이 차츰 명료해져 가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유도한다. 이런 경험이 쌓여 학생들이 공부에 흥미를 갖게 된다는 것. 한국과 미국, 영국 학생들을 모두 접해본 그는 "우리나라는 이미 상당한 수학 강국인 데다, 학생들 수준도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한국 학생들의 지적 성취를 가로막는 것은 '심각함'이 아닐까 생각된다"며 "공부의 목적의식이 너무 강한 것 같다"고 했다. "하루하루 의미를 찾으려는 것이 인생을 무겁게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그가 접한 영국 학생들은 의미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우리 대학들은 어마어마한 목적의 공부뿐만이 아니라, 작은 즐거움과 하루하루의 완결을 추구하는 장인정신 같은 '공부 문화'가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중학교 1학년에 학업을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에 들어간 이력을 갖고 있다. 1970년대 창의력을 억압하는 주입식 한국 교육 탓이었을까. 하지만 그는 "공부는 외울 것도 있고, 생각해야 할 것도 있는 법"이라며 "경험 많고 뛰어난 선생님일수록 암기도 시키고 생각도 하게 만들면서 두 가치를 다 아우른다"고 했다.
인문학자인 부친 김우창 이화여대 석좌교수의 영향도 컸다. 그는 "아버님께선 사람이 우주에 대해 할 수 있는 질문들, 과학이든 인문학이든 자연스러운 철학적 궁금증이 생기면 그것을 따라가라고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14세, 11세 두 아들을 둔 그 역시 "아이들과 질문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한다"고 했다. "학문과 일상생활 모두 좋은 질문을 하고 나면 답을 찾는 과정은 덜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 외국에서 자녀를 키우며 살아가는 데 고민도 있었다. 그는 "미국과 영국에서 자란 큰아들을 포항의 중학교에 보내 우리말을 배우게 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너무 쉽게 영어로 대화를 해줘서 계획이 실패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수준은 정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웃음)."
조선일보 신동흔 기자 2013. 10. 05.(토) A22면 People &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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