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여름의 풍성함과 작열하는 태양을 정리해 사색을 하게 되는 시절이다.

좋은 글을 읽어보자.

 

“그토록 화려한 햇살도 오는 계절에 무너지고 말갛게 다가오는 가을의 향기.

풀벌레 울음소리에 고향집의 애달픈 향수 밀려오는 진한 그리움.

돌아서 가던 길 멈추고 저미는 쪽빛 하늘아래 서있는 코스모스 닮은 여린 미소.

높고 푸른 하늘을 향한 환한 모습으로 향기로 가득 채운 가을사랑.

초록빛 조금씩 퇴색돼 가고 무성했던 들녘도 황금빛으로 가을을 익힌다. 무르익은 희망.

풍성한 꿈으로 가는 가을의 길목 뜨락에 나가 가슴을 열어 구월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본다”


몇 편의 가을시를 감상해보자.

①라이너 마리아 릴케(1870-1926)의 ‘가을날’을 보자.

“주여, 때가 됐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놓으시고 벌판에 바람을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을 결실토록 명하시고 그것들에게 또한 보다 따뜻한 이틀을 주시옵소서.

그것들을 완성으로 몰아가시어 강한 포도주에 마지막 감미를 넣으시옵소서.

지금 집 없는 자는 어떤 집도 짓지 않습니다.

지금 외로운 자는 오랫동안 외로이 머무를 것입니다.

잠 못 이뤄 독서하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리고 잎이 지면 가로수 길을 불안스레 이곳저곳 헤맬 것입니다.”

②레미 드 구르몽(1838-1915)의 ‘낙엽’을 읽자.

“시몬, 나무 잎새 떨어진 숲으로 가자. 낙엽은 이끼와 돌과 오솔길을 덮고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낙엽 빛깔은 정답고 모양은 쓸쓸하다. 낙엽은 버림받고 땅위에 흩어져 있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해질 무렵 낙엽 모양은 쓸쓸하다. 바람에 흩어지며 낙엽은 상냥히 외친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발로 밟으면 낙엽은 영혼처럼 운다 /

낙엽은 날개소리와 여자의 옷자락 소리를 낸다 /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

가까이 오라. 우리도 언젠가는 낙엽이니 가까이 오라. 밤이 오고 바람이 분다”

③샤를로 보들레르(1821-1867)의 ‘가을의 노래’도 감상해보자.

“이윽고 우리는 가라앉을 것이다. 차디찬 어두움 속으로 /

너무나도 짧은 우리의 여름날. 그 강력한 밝음이여 안녕히! /

불길스러운 충격을 전해 안마당 돌브로크 위에 던져지고 있는 모닥불 타는 소리를 나는

벌써 듣는다 /

이윽고 겨울 그것이 내 존재에 돌아오리니 /

분노와 증오와 전율과 공포와 강제된 쓰라린 노고 그리고 북극의 지축에 걸린 태양과

같이 나의 심장은 이제 언 붉은 한 덩어리로 지나지 않게 되리라 /

던져지며 떨어지는 장작더미 하나하나를 나는 떨면서 듣노니 /

세워진 단두대의 울음조차 이렇듯 둔탁하지 않다 /

나의 정신은 성문을 파괴하는 무거운 쇠망치를 얻어맞고. 허물어지는 성탑과도 같아라 /

이 단조로운 충격에 내 몸은 흔들려 어디선가 관에다 서둘러 못질하고 있는 듯하다 /

누구를 위해? 어제는 여름이었으나 이제는 가을!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는 어디엔가

문 밖에 나서기를 예고하는 듯하다 /

나는 사랑한다. 네 기다란 눈, 그 초록빛 띤 빛을. 상냥하고 아름다운 사람이여 이제

내게는 모든 것이 흥미 없다 /

그 어떤 것 그대의 사랑도 침실도 또 난로도. 해변에 빛나는 태양보다 낫게 생각되지

않는다 /

그래도 상냥스러운 사람이여! 역시 나를 사랑해주오. 비록 내가 은혜를 모르는 자요,

심술쟁이라도 내 어머니가 됐다오 /

연인이면서 누이동생이기도한 사람이여 비록 순식간에 사라지기는 하더라도 /

석양의 상냥스러움, 빛나는 가을의 상냥스러움이 됐다오 /

얼마 남지 않은 노력! 무덤이 기다리고 있나니. 탐욕스러운 무덤이다 /

아아! 당신의 무릎에 이마를 기댄 채 나로 하여금 한껏 잠기게 해다오.

백열의 여름을 그리워하며 만추의 날, 그 상냥스러운 황색 광선속에서”

④A.S.푸쉬킨(1799-1873)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란 시도 오랫동안 애송된 시

중의 하나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마라 /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은 오고야 말리니 //

마음은 미래를 바라느니 /

현재는 한없이 우울한 것 /

모든 것 하염없이 사라지나 /

지나가 버린 것 그리움이 되리니”

⑤왕유(王維 699-759)의 ‘송별’은 이러하다.

“산 속에서 배웅을 끝내고 /

저녁 어스름에 사립을 닫는다 /

봄풀은 명년에도 다시 푸르겠지만 /

왕손(王孫)은 언제 돌아올까? 아니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