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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오징어 트럭 찾아가 "제가 팔아볼게요"… 장사꾼으로 인생 역전

by 많은이용 2014. 10. 2.

오징어 트럭 찾아가 "제가 팔아볼게요"

… 장사꾼으로 인생 역전

[CEO가 말하는 내 인생의 ○○○] 이영석 '자연의 모든 것' 대표의 오징어

한강서 만난 오징어 장수에게 "제자로 써달라" 맨몸으로 시작
매출 10배 올리고 홀로 독립…
바나나·야채 行商 1~2년만에 서울 강남에 가게 내고 승승장구

1992년 여름의 어느 저녁. 나는 서울 한강 뚝섬 둔치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회사에 다녀오겠다"며 출근하는 척 집을 나왔지만, 막상 갈 데가 없었다. 대학에서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하고 이벤트 회사에 취업했지만, 6개월을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뛰쳐나왔다. 변변한 학연(學緣)과 지연(地緣)이 없는 탓인지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강변에 앉아 한숨만 내쉬던 그때, 멀리서 장사하는 트럭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나이 서른 정도 돼 보이는 한 남성이 마른오징어를 판매하고 있었다. 그는 영업할 의지가 별로 없어 보였다. 손님이 다가와 "얼마예요"라고 물으면 그제야 성의없는 목소리로 "3마리, 1000원"이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저 일을 내가 하면 참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인맥이 없어도 발로 뛰면 장사는 할 수 있지 않은가. 다가가서 부탁했다. "아저씨, 저 오징어 좀 팔아보게 해 주세요. 제가 앞으로 참 크게 될 사람인데 용기가 없어서요. 용기 낼 수 있게 원가에 오징어 2만원어치만 주시면 제가 한번 팔아보겠습니다."

얼떨결에 오징어 여섯 축을 건네받은 나는 한강변을 돌며 오징어를 팔았다. "쫄깃쫄깃하게 잘 구워진 오징어가 3마리 1000원이요. 이웃집 뚱순이가 먹고 반한 오징어가 3마리 1000원이요." 이렇게 외치며 돌아다녔다. 무리에서 마음씨가 가장 착해 보이는 사람이나 곳곳에 손잡고 앉아 있는 연인들을 타깃으로 했다. 오징어는 1시간도 안 돼 다 팔았다. 트럭으로 돌아와 오징어 4만원어치를 더 받았다. 그 역시 한 시간 만에 팔았다.

오징어 장수, 이것이야말로 내 천직(天職)이었다. 그날 저녁 한강에서 만난 오징어 장수에게 "스승으로 모실 테니 부디 제자로 받아달라"고 졸랐다. 밤늦도록 트럭 곁에 붙어 매달리자 그는 "내일 새벽 물건 떼러 가야 하니 오전 3시까지 서울 중구의 중부시장으로 나오라"며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때부터 나의 오징어 장사가 시작됐다. '스승'은 새벽 3시까지 시장에 나오라고 했지만, 나는 자정에 미리 도착해 거래처를 돌아다녔다. 어느 매장이 저렴한 가격에 괜찮은 물건을 가져다 놓았는지 돌아보고 스승이 도착하자 즉시 보고했다. 스승도 처음에 미덥지 못했는지 늘 물건 떼는 일에 훈수를 놓다가, 6개월이 지나니 내 실력과 성실성을 인정해 나에게 돈 가방을 맡겼다.

오징어 행상에서 시작해 서울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50개 농수산물 전문매장을 운영하는 이영석 대표. 그는 “성공의 기회는 치열한 개인의 노력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징어 행상에서 시작해 서울 전역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50개 농수산물 전문매장을 운영하는 이영석 대표. 그는 “성공의 기회는 치열한 개인의 노력 없이는 찾아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연의 모든 것 제공

그날부터 내 하루는 늘 자정에 시작됐다. 물건을 떼고 트럭에 싣고 난 뒤 오전에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점심부터 장사가 시작됐다. 평일에는 도심을 돌아다니고, 주말에는 유원지로 향했다. 낮에는 은행 앞으로 향했다. 점심때 잡무를 보러 들른 직장인들이 은행에서 돈을 찾아 나오면서 바로 오징어를 사먹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오후에는 시장 입구에 서 있었다. 장 보러 오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오징어를 팔았다. 월요일은 성수시장, 화요일은 자양시장 등등 시장도 매일 달리했다. 저녁에는 지하철역 앞을 지켰다. 퇴근길 직장인들을 노린 것이다.

매출은 10배가 올랐다. 스승이 혼자 판매할 땐 하루 20만~30만원어치를 팔았는데, 내가 합류한 이후엔 하루 매출이 200만원이 넘었다. 그렇게 1년 반을 따라다닌 뒤에야, 나도 종잣돈 300만원으로 창업을 했다. 250만원으로 중고 트럭 한 대 사고, 나머지 50만원은 전부 오징어를 샀다.

스승은 주로 강북 지역에서 장사했기 때문에, 나는 강남 지역을 선택했다. 나는 낮에는 지하철역 인근과 시장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밤에는 강남의 술집·유흥가 인근을 다녔다. 처음엔 말없이 질 좋은 국내산 쥐포를 몇 장씩 돌렸다. 오징어를 팔아달란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하루 이틀 쥐포를 가져다주니 술집 사장들이 "당신은 뭐 하는 사람인데 쥐포를 가져다주느냐"며 물어왔다. 그제야 내가 오징어를 팔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니 선뜻 오징어를 사줬다.

오징어를 판매하면서 쌓은 노하우로 1년 뒤엔 바나나를 팔기 시작했다. 오징어를 팔던 때와 달라진 건 별로 없었다. 새벽같이 서울 가락시장에 가서 바나나를 떼왔다.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 냈다. 서울 황학동 시장에서 조련된 원숭이를 300만원에 샀다. 그리고 원숭이와 바나나를 실은 트럭을 몰고 여러 초등학교 인근을 돌았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먹으며 재롱을 부리는 모습에 어린이들이 몰려들었고, 결국 엄마들은 지갑을 열 수밖에 없었다. 바나나 장사는 오징어를 팔며 벌었던 것보다 매출이 2~3배 많았다.

바나나 장사를 시작한 지 1~2년 뒤인 1998년 서울 강남의 은마아파트 후문에 첫 야채가게를 낸 이후 나는 점점 사업을 키워갔다. 대형 농수산물 유통업체를 운영하는 지금도 나는 새벽 3시쯤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20여년 동안 매일 반복해온 일이지만 지금도 새벽에 눈을 뜨긴 어렵다. 성공으로 가는 길에 우연이란 없다. 기회와 계기는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이영석, 그는 누구인가]

"과일도 AS 가능"… 서울서 '이영석의 총각네' 50개 운영

농수산물 유통업체 자연의 모든 것 이영석 대표는 장사꾼다운 열정과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똘똘 뭉친 사람이다. 오징어·바나나·야채를 트럭에 싣고 다니는 행상(行商)으로 장사를 시작해 현재는 서울 전역에서 농수산물 전문 매장 '이영석의 총각네'를 50개 운영한다. 야채가게에 활기찬 '꽃미남 청년'들을 직원으로 고용하는가 하면 '오늘 들여온 생선은 내일 팔지 않는다' '과일도 AS가 가능하다' '눈과 귀로 단골의 취향을 기억하라' 등 고객지향적 운영 방식으로 성공을 거뒀다. 이 대표의 장사 경험을 담은 책 '총각네 야채가게'도 큰 인기를 끌었다.

 

 

                                                       -조선일보 2014. 10. 1. 심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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