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30% 유대인 교육의 비밀, 하브루타
차례
1. 교육 방법론의 차이
2. 하브루타의 정의
3. 뇌를 격동시키는 하브루타
4.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브루타
5. 짝을 지어 큰 소리로 내는 논쟁
6. 하브루타의 기원
7. 하브루타의 전형, 탈무드 논쟁법
8. 하브루타의 핵심, 질문법
9. 질문은 지식과 지혜를 캐내는 도구
10. 질문 잘하는 법
11. 하브루타 학습 순서와 팁
12. 하브루타를 위한 몇 가지 조언
13. 하브루타 학습법의 실제
14. 교사와 함께 하는 쉬우르
15. 유대인 랍비들의 하브루타에 대한 생각
16. 하브루타 학습의 예-논술
17. 참고: 취학 전 아동을 위한 하브루타 질문학습법
1. 교육 방법론의 차이
나라별로 보면 우리 한국인의 지능이 평균 106으로 세계 최고이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IQ는 평균 94로 45위에 머물러 있다. 우리 학생들은 세계에서 가장 긴 시간 동안 공부한다. 세계적으로 학업성적이 가장 우수하다는 핀란드 학생보다 매일 2배 더 공부한다. 그러면서도 국제학업성취도비교평가(PISA)에서 핀란드에 뒤지는 결과를 낳고 있다. 유대인 학생들과 비교해도 우리가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길다. 유대인들의 교육열이 높다고 하지만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의 우리 교육열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스라엘의 경우 대학을 졸업하든지 하지 않든지 급여 차이가 거의 나지 않으므로, 힘들게 대학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입시 경쟁이 우리처럼 치열하지 않다.
한국인은 지능도 세계 최고이고, 공부하는 시간도 세계 최고이고, 교육열도 가히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어떻게 된 일인지 유대인과 비교해서 영 신통하지 않다. 우리는 노벨상이 평화상 1명이지만, 유대인은 스스로 유대인이라 밝힌 경우만 해도 2011년 현재 185명으로 노벨상의 22%에 이른다. 유대인이라고 밝히기를 꺼려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숫자까지 합하면 대략 30% 정도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에 입학하는 한국계 학생이 1% 될까 말까 하지만, 유대인들은 2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인구 8천여 만 명의 한국인과 1500여 만 명의 유대인의 비교 결과이다. 그들은 어떤 한 두 분야가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특출난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다. 20세기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친 아인슈타인이나 프로이트, 칼 마르크스를 비롯하여, 아브라함에서부터 다윗, 솔로몬, 예수, 바울, 스피노자, 샤갈, 카네기, 키신저, 스필버그, 찰리 채플린, 로스차일드, 골드만삭스, 조지 소로스, 그린스펀, 버냉키 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사람들 중에 유대인이 많다.
왜 우리는 세계 최고가 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서도 세계적인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유대인은 그런 조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인물이 많을까? 왜 그들은 노벨상을 그렇게 많이 차지하고, 아이비리그에 그렇게 많이 들어가며, 각계각층에서 뛰어난 인재들을 그렇게 많이 배출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가?
유대인을 다룬 책들에는 유대인들이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가 수도 없이 나열되어 있다. 역사교육, 고난 교육, 영재교육, 쉐마교육, 유머, 경제교육, 탈무드 교육, 침대머리 교육, 밥상머리 교육, 쩨다카 정신, 티쿤 올람 등등. 하지만 필자는 교육학을 30여 년 전공한 전문가로서 ‘하브루타’라는 말을 접하자마자 “아하! 바로 이거다.”라고 소리쳤다. 바로 교육 방법론이 유대인 영재들의 비결이었고 그것이 바로 우리와 큰 차이점이었던 것이다.
2. 하브루타의 정의
하브루타는 보통 2명이 짝을 지어 프랜드십(friendship), 파트너십으로 공부하는 것(study partnership)을 말한다. 때에 따라 여러 명이 하는 경우도 있으나 4명을 넘지 않는다. 교사 없이 학생들이 짝을 지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앉아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논쟁 수업 방식을 말한다. 즉 친구를 통해 배우는 것이다. 하베르는 히브리어로 친구라는 뜻이다. 하브루타는 이 하베르에서 왔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단어가 ‘샬롬 하베르’ 이다. 이것은 친구야 안녕? 너에게 평화가! 등으로 해석되는 인사말이다.
유대인들의 개념에서 친구는 서로에게 효율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이다. 친구를 뜻하는 히브리어 ‘하베르’의 어원은 ‘하브’인데 이 말은 ‘신세’나 ‘은혜’를 말한다. 친구란 은혜를 끼치고 되갚아주는 역학적 관계임을 의미한다. 이처럼 하브루타 수업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창의적인 생각을 일깨워주므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게 된다.
하브루타는 고립되어 혼자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탈무드의 해석을 놓고 서로 모여 토론하고 논쟁하여 의미와 교훈을 깊게 파고들어가는 방법이다. 교사는 수업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도움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논쟁으로 수업이 시작되면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이 전통은 예수님 당시 가말리엘이 가르쳤던 힐렐학교에서도 행해지던 교육방법이라고 하니 얼마나 오랜 전통을 가졌는지 짐작할 만하다.
유대인들이 아이를 임신했을 때 태아에게 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가정에서 식사를 하면서 아버지와 자녀가 질문하고 답변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자녀가 잠들기 전에 어머니가 동화를 들려주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자녀가 암기와 이해를 잘하기 위해 돌아다니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중얼거리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질문하면서 수업하는 것도 하브루타고, 학생들끼리 짝을 지어 서로 가르치면서 토론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예시바에서 토라와 탈무드의 구절을 놓고 둘 씩 짝을 지어 심각하게 논쟁하는 것도 하브루타이고, 회당에서 평생지기와 만나 탈무드 공부를 하면서 토론하는 것도 하브루타이다.
하브루타를 간단히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서로 짝을 지어 질문하고 대화하고 토론하고 논쟁하는 것”
이것을 단순화 하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아버지와 자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 이야기가 약간 전문화 되면 질문과 대답이 되고, 대화가 된다. 거기서 더 깊어지면 토론이 되고, 더욱 깊어지고 전문화 되면 논쟁이 된다.
3. 뇌를 격동시키는 하브루타
짝을 이루어 대화하고 토론하는 하브루타가 어떻게 특별한 유대인을 만들어 가는가? 하브루타가 어떻게 유대인들로 하여금 노벨상을 받게 하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들어가게 하며, 의사나 변호사, 교수 같은 전문가가 되게 하고,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만드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그것은 하브루타가 뇌를 격동시켜 최고의 뇌로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뇌과학에 관심을 가져왔고 자녀교육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가장 많이 읽은 책이 뇌에 대한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곧 나의 뇌이고, 공부는 바로 뇌로 하기 때문이다. 암기하는 것도 뇌에 저장하는 것이고, 책을 읽는 것도 뇌에 지식을 쌓거나 안목과 통찰력을 얻기 위함이다. 학교에서 몇 시간 동안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것도 모두 뇌를 계발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교육을 통해 기르고자 하는 지식, 안목, 지혜, 사고력, 가치관, 정체성, 지성, 감성 그 어떤 것이든 모두 뇌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뇌를 모르고서 교육을 논할 수 없다. 그런 뇌를 공부한 배경이 있었기에 하브루타를 접하자마자 “아하! 바로 이거다.”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브루타는 무엇보다도 뇌를 격동시키는 교육이다. 왜 그런가? 질문과 토론, 논쟁만큼 뇌를 움직이게 하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변호사와 검사의 법정 논쟁을 떠올려 보라. 그들의 논쟁은 가장 격렬한 머리싸움이다. 법정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준비를 해야 하고, 상대방의 말을 정확하게 듣고 그 논리를 파악해야 하며, 자신이 왜 옳은지에 대해 치밀한 논리로 설득해야 한다. 상대방이 예기치 못한 질문을 하거나 증거를 댈 때 그것에 대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거나 대응하지 못하면 판결에서 지게 된다. 토론과 논쟁은 뇌를 계발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며, 고등 사고력을 기르는 최고의 방법이다. 이렇게 변호사와 검사가 논쟁하듯이 어렸을 때부터 짝을 지어 토론과 논쟁으로 공부한다면 뇌가 계발되지 않는 것이 이상한 일이다.
뇌를 격동시킨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생각하게 만든다는 말이다. 질문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토론과 논쟁을 하려면 그 과정에서 치열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도 동시에 그것에 대해 반박할 말과 논리를 치열하게 생각해야만 한다. 하브루타는 세상의 모든 대상과 사물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하게 만든다.
또 하브루타의 가장 큰 장점 중에 하나는 다양한 견해, 다양한 관점, 다양한 시각을 갖게 한다는 점이다. 창의성이란 다르고 새롭게 생각하는 능력이다. 현재 세계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창의성인데, 그 창의성을 가장 잘 계발할 수 있는 방법이 하브루타이다. 왜냐하면 하브루타는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과는 다른 생각,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탈무드 자체가 랍비와 현자들의 토론과 논쟁집인데, 그런 대가들의 견해에 대해서도 질문하게 하고 다른 견해를 갖게 하는 것이 하브루타의 특징이다. 토론과 논쟁은 어떤 객관적인 사실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게 만든다.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까지도 뒤집어 생각하게 한다. 상대방의 의견과는 다른 나만의 견해를 가져야 토론이 가능하다.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토론에 이길 수는 결코 없다. 그래서 하브루타는 나만의 생각, 새로운 생각, 남과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든다.
더불어 하브루타는 의사소통 능력, 경청하는 능력, 설득하는 능력을 기르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현대에 들어 소통과 관계의 중요성은 더욱 더 부각되고 있다. 아무리 실력을 갖추어도 그것을 인간관계를 통하여 풀지 못하면, 그것은 썩고 만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설득하지 못하면 전혀 쓸모가 없다. 하브루타 자체가 대화하고 토론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사소통 능력이 저절로 생기게 마련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할 수 있게 하고 다른 사람을 설득하는 능력을 길러준다.
특히 친구 관계를 돈독하게 만들어주고 인간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만들며, 평생지기를 만들어준다. 만일 우리에게 평생 동안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한 명만이라도 있다면 행복할 것이다. 하브루타는 그런 친구를 여러 명도 만들어준다. 하브루타 짝은 학교에서 회당에서 예시바에서 여러 명이 생기기 때문에 아주 친한 친구가 여러 명 생기게 된다. 그리고 회당 하브루타까지 연결되면 죽을 때까지 매일 만나는 평생지기도 생기게 된다. 유대인 인간관계 네트워크의 핵심에 하브루타가 있는 것이다.
하브루타의 장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르치는 것이 최고의 공부다. 진도보다는 심도 있는 공부를 통해 친구에게 전달하고, 가르치고, 토론한다.
-뇌를 격동시키는, 뇌를 움직이게 하는, 뇌를 계발하는 교육이다.
-생각하게 하는 교육, 생각하는 힘을 기른다.
-부모와 깊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고, 부모와 대화하는 중에 모든 고민을 가정에서 해결한다.
-말을 논리적으로 잘하게 하고 표현력과 발표력을 길러 소통 능력을 크게 향상시킨다.
-사회성이 크게 발달한다.
-남과 다르게 생각하게 하고, 남과 다르게 보게 하고, 대안을 찾게 하는 탁월한 방법이다.
-한 가지에 대해 수많은 방법, 수많은 시각, 다양한 관점으로 보게 하고 생각하게 하여 사고의 폭을 넓히고 창의력을 고양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충분한 대화로 여러 가지 문제가 쉽게 풀리고 쌓인 스트레스를 날리며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게 한다.
4. 호기심을 자극하는 하브루타
아이가 4-5살 정도일 때는 세상의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수많은 질문을 부모에게 한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너무나 사소하고 당연한 것들을 아이들은 계속 질문한다.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궁금한 것투성이 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이 보기에 나중에 당연히 알게 되는 것들이고, 하찮게 보이는 것일지라도 아이들 시각에서는 너무나 알고 싶은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호기심과 자기 동기, 질문을 유지만 시켜주어도 우리의 교육은 성공이다. 왜냐하면 바람직한 교육에서 추구하는 모든 것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호기심과 자기 동기를 가지고 스스로 알고 싶어서 계속 질문하면서 공부하기만 하면 부모나 교사가 해줄 것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기가 하브루타를 정착시키느냐, 정착시키는데 실패하느냐가 달려 있다. 아이의 그런 호기심을 계속 살려서 아이가 스스로 궁금한 것들을 조사하고 생각하고 공부하게 할 수 있느냐는 부모가 그 호기심을 얼마나 받아주고, 계속 자극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 시기의 호기심이나 질문하는 것이 꺾이면 계속 타율적으로 공부를 하게 될 것이고, 이 시기에 호기심과 질문이 유지되면 스스로 찾아서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계속 질문을 하면 부모 입장에서 귀찮고 짜증이 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할 때 계속 답을 가르쳐주게 되면 부모 입장에서 힘들고 귀찮게 되어 있다. 그래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하라고 질문하는 아이에게 면박을 주기도 하고, 다양한 의견이나 견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 입장에서의 답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의 질문을 자녀와 대화하는 시간, 아이가 그 궁금증을 스스로 풀어가게 하는 시간으로 만들면 부모에게 힘든 시간이 아니다. 즉 아이가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 것에 대해 해답을 알려주지 말고 다시 질문을 해서 아이가 스스로 생각하게 하거나, 함께 책을 찾아보면서 계속 그것과 관련된 대화를 이어가다보면 부모에게도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토론을 하려면 부모가 공부하지 않으면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의 수준은 점점 높아지고 공부하는 내용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 부모들은 대부분 자발적으로 책을 읽고 공부한다. 어려운 수학이나 과학 등을 공부해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관심 분야를 공부해서 자녀와 토론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공부하는 부모들의 모습은 유대인 교육의 기본이다. 그래서 유대인 공동체에서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성인 교육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회당이나 공동체에서 지속적으로 토론과 논쟁을 통해 공부하는 것은 그 자녀들에게 그들의 문화와 가치관을 전수하려는 강력한 의지가 자리하고 있다. 스스로 공부하는 부모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 어떻게 스스로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렸을 때의 호기심을 유지한 사람들은 성공의 길로 가게 되어 있다.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은 짓궂은 장난을 무엇보다 좋아했다. 미켈란젤로나 피카소, 모차르트, 브람스, 베토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모두 장난기가 넘쳤고 호기심이 많았으며 풍부한 상상력과 창의력,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이 있었다. 이런 특성은 영유아 아이와 동일한 모습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모습은 어른이었지만 내면은 모두 아이였던 것이다.
아이들은 완벽하지 않다. 미성숙하고 변덕스럽고 무책임하다. 하지만 그들은 온몸으로 삶을 받아들이고 있다. 바로 이것이 핵심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수록 온 몸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멀어진다. 이것이 바로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이다. 천진스럽게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곧 삶이 놀랍고 경이로운 것임을 경험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그 아이다움과 깨달음을 간직한다. 즉 어린이다움과 어른다움을 함께 간직하는 것이다. 그것을 유지시키는 방법이 하브루타에 있다.
5. 짝을 지어 큰 소리로 내는 논쟁
학생들이 하브루타로 수업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둘이서 말싸움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논쟁한다. 소리 내어 공부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빠르게 익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들으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듣기 때문이다. 그 속도가 빠를수록 뇌는 빠르게 움직이다. 뇌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뇌는 발달하고 사고는 넓고 깊어지며 상황 대처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은 높아진다. 이들은 책을 읽어도 속으로 읽지 않고 소리를 내서 읽는다. 그러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들은 소리를 내고, 일어나 걸어 다니면서 외우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를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 움직임을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그만큼 효과도 높아진다.
유대인들은 탈무드를 공부해야 한다. 탈무드는 그들이 거룩하게 여기는 성전聖典이기 때문이다. 이때 탈무드 공부법으로 개발된 것이 하브루타다. 탈무드가 완성된 것이 AD 500년경이니 탈무드의 역사가 1600년, 하브루타 학습법도 그만큼 역사가 깊다고 하겠다. 하브루타 학습법은 일대일로 친구와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는 학습법이다. 지금도 여전히 유대인은 이 교육법으로 공부한다.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과 달리 한국 사람들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나머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건 하브루타 학습에 큰 장애물이다. 주입식 교육과 하브루타 교육은 정반대 교육이다. 주입식이 선생, 진도, 지식습득에 초점을 맞춘다면 하브루타는 친구, 심도, 지혜습득에 초점을 맞춘다. 물론 유대인들이 하브루타만 하는 건 아니다. 쉬우르(Shiur)라고 하는 수업도 병행한다. 이는 선생과 학생들이 함께 수업하는 시간이다.
하브루타든 쉬우르 수업이든 가장 핵심적인 학습 키워드는 질문이다. 서로 묻는 것이다. 서로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질문은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고력을 확장하고 논리력과 발표력, 경청력, 포용력까지 두루 갖추게 한다. 질문은 그래서 배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심장과도 같은 것이다. 그 심장이 없이 교육한다? 그것은 심장 없는 좀비 교육과 전혀 다르지 않다.
따라서 질문하는 법을 훈련하지 않으면 하브루타를 할 수 없다. 친구가 친구를 만나 공부하는 것은 바로 질문과 답하는 과정이다. 그런 과정이 없이 학습한다면 그것은 잡담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6. 하브루타의 기원
앞에서 천재가 된 제롬에서는 힐렐 학교에서 하브루타가 시작되었고, 랍비 하이가 예후다 하 나시에게 제안한 것으로 설명하지만, 그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하브루타가 구전 율법과 관련이 깊으며 탈무드의 형성 과정과 그 괘를 함께 한다는 점이다.
토라가 완전히 정리되고 편집되어 확정된 시점을 학자들은 에스라와 느헤미야 시대로 본다. 토라를 정리 편집한 뒤로 토라를 한 글자라도 변경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토라의 율법을 일상생활에 그대로 실천하는 데는 여러 가지 무리가 따랐고, 시대와 상황에 따라 해석이 필요했다. 에스라가 처음으로 그 해석을 시작했고, 또 허용했다. 그런 토라에 대한 주석과 해석이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 구전 율법이다. 초기에는 이 구전 율법을 기록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그래서 글로 남길 수 없기 때문에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수밖에 없었다. 토라는 전혀 변경이 불가능했지만, 토라에 대한 해석과 주석은 학자들마다, 랍비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었다.
일상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토라의 정신에 맞는 것인지 학자나 랍비들 사이에 서로 토론과 논쟁이 붙었다. 그런 토론과 논쟁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더 풍부해지고 다양해졌다. 해석과 주석에 대한 토론과 논쟁의 구전 율법을 편집한 것이 미쉬나이고, 그 미쉬나에 대한 토론과 논쟁을 모은 것이 게마라이며, 이 둘을 합친 것이 탈무드이다.
그러므로 하브루타의 기원은 토라를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적용할 것인가에 대해 학자나 랍비들이 계속 토론하고 논쟁하는데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 미쉬나나 게마라가 글로 남기는 것이 금지되면서 구전으로 이어졌고, 이것을 잊지 않고 후대에게 계속 전하는 한 방법으로 하브루타가 시작되었다. 토라에 대한 해석이나 미쉬나, 게마라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에 대해 여러 가지 충돌이 있었고, 그것은 토론과 논쟁을 통해 정리되고 정교화 되었다. 그런 토론과 논쟁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파트너가 필요했고, 둘 사이에 토론이 가장 효율적이었으므로 하브루타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말을 많이 할 수 있고 토론을 활발하게 할 수 있는 팀이 두 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브루타는 BC로 그 역사가 올라가며, 2000년이 훨씬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하브루타는 AD 70년경에 벤 자카이에 의해 예시바가 탄생하면서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었다. 예시바 학생들은 온종일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논쟁하면서 연구에 몰두하고 나서 저녁에 한 두 시간 정도 선생의 강의를 듣는다. 이 때 랍비는 질문도 받고 대답도 해주면서 학생들이 더 예리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결론은 스스로 내려야 한다. 탈무드에서는 동일한 내용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그대로 모두 실어놓는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제시하지 않고 수많은 해답들을 제시하여 다양하게 사고할 수 있도록 하고, 결론은 스스로 내릴 수 있도록 한다. 우리와 같이 정해진 지식을 전달하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것이다. 이런 예시바의 교육은 대부분 하브루타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브루타의 기원에 대해 랍비 아하론 손(Aharon Shon)은 랍비의 부족에서 찾는다. 유대인들은 어디서든지 토라와 탈무드를 공부해야 하는데 가르쳐 줄 수 있는 랍비는 많지 않았다. 있다고 해도 도시에 몰려 있어서 시골 지역 사람들은 토라를 배우기 어려웠다. 그래서 누구나, 어디서든 성서를 공부할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해 낸 것이 서로가 서로에게 교사가 되는 하브루타 방법이었다는 것이다.
7. 하브루타의 전형, 탈무드 논쟁법
이런 하브루타의 전통은 탈무드 논쟁법(talmudic debate)이라는 치열한 연구 방법을 탄생시켰다. 유대인들은 탈무드의 내용 중 한 구절을 놓고도 한두 시간씩 논쟁을 벌이는 것이 보통이다. 한 쪽이 탈무드를 해석하면 다른 쪽은 그것을 왜 그렇게 해석했는지 하나하나 질문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말하면 상대방은 다시 그 답의 부당성을 조목조목 따지고 반박한다. 여기서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허점을 보이면 사정없이 그곳을 집중 공격해 곤경에 빠뜨린다. 답변자는 가능한 한 모든 가정 하에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공격에 날카로운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전에 철저하게 공부해오지 않으면 토론 자체가 되지 않는다. 논쟁에서 실컷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해석자와 질문자의 역할을 서로 바꾸어 다시 논쟁을 시작한다.
유대인들이 논쟁하는 모습은 하도 격렬해서 싸우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때론 주먹으로 책상을 쳐가며 큰소리로 언쟁을 벌이기도 하고 삿대질을 해가면서 서로 지지 않으려고 사력을 다해 토론을 한다. 이럴 때는 옆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탈무드를 공부하는 탈무드의 집이나 예시바, 회당 등은 항상 시끄럽다. 그러나 누구도 개의치 않는다.
싸우듯이 논쟁했다고 해서 둘 사이가 나빠지는 경우는 없다. 토론자들은 서로 상대방의 학습태도나 방법을 존중한다. 토론과 논쟁이 끝난 후에는 언제 논쟁을 벌였냐는 듯이 금방 다정해진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따질 때는 따지고 절제할 때는 절제하는 능력, 즉 감정을 스스로 조절하는 능력을 이런 방식으로 키워왔다.
유대인들은 우리처럼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에게 무엇을 배웠느냐, 선생님 말씀 잘 들었느냐고 묻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무슨 질문을 했느냐고 묻는다. 우리는 선생님이 무엇을 가르쳐 주었느냐를 중시하지만 유대인들은 아이가 실질적으로 무엇을 배웠고,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질문을 가졌는지를 더 중시한다. 우리는 배운 내용이 중요하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아이가 무엇을 궁금해 하고 어디에 관심을 가지고 있고, 무엇을 묻고 무엇에 대해 토론했는지 궁금해 한다. 성서 신명기 6장 7절에서 부모는 자녀에게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말씀을 강론하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강론이란 단어는 어떤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토론하는 것을 말한다.
부모는 자녀들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절기의 기원과 의미, 방법 등에 대한 질문을 유도한다. 이런 질문과 대답의 교육 형식은 어린이들을 학습의 주체자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다. 학습자가 가만히 앉아 교사의 가르침을 듣고만 있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어린이가 배움의 주체가 되게 한다. 학생이 이런 의식을 가지면 학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또한 어린이들의 사고에 자극을 주어 학습의 효과를 주며 인지 발달을 돕게 된다. 이들은 성서나 탈무드 등을 공부할 때 계속 토론하고 논쟁한다. 유대인 아버지들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이러한 하브루타를 자녀와 함께 하면서 자녀에게 생각하게 하고 책을 읽도록 만든다.
이런 탈무드식 토론은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 주제에 대해 학생들 끼리, 또는 랍비와 학생이 토론하는 것이다. 이 토론 교육은 끊임없는 질문과 답변으로 진행된다. 한 주제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고 이에 대해 서로의 주장을 펴며 변론한다. 이렇게 토론식 수업으로 교육을 받은 자들이기에 유대인은 때로는 까다롭게 느끼기도 한다. 유대인의 변호사나, 학자들은 매우 우수하고 꼼꼼한 것은 그들의 토론식 교육에 의한 훈련 때문이다. 탈무드의 많은 부분은 이렇게 토론 교육이 가능하도록 질문과 응답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하브루타의 전통이 전문화 되어 등장한 것이 탈무드 논쟁법이다. 탈무드는 그 내용이 너무 방대하고 어려워 “읽는 책이 아니라 연구하는 책”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글자도 깨알같이 작아서 탈무드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안경을 쓴 사람이 많다. 이 교육 방법은 한 책상에 두 사람이 짝을 지어 서로 마주보고 논쟁하면서 탈무드를 연구하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런 논쟁을 통해 자연스럽게 분석적이고 비평적이며 체계적이고 조직적이며 논리적인 사람이 된다.
학생들이 하브루타로 수업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둘이서 말싸움 하는 것처럼 보인다. 손을 움직이고 몸을 흔들면서 큰 소리로 논쟁한다. 소리 내어 토론하면서 공부하는 것은 새로운 내용을 빠르게 익히는 아주 효율적인 방법이다. 들으면서 말하고, 말하면서 듣기 때문이다. 그 속도가 빠를수록 뇌는 빠르게 움직이다. 뇌가 빠르게 움직일수록 뇌는 발달하고 사고는 넓고 깊어지며 상황 대처 능력, 문제 해결 능력은 높아진다.
이들은 책을 읽어도 속으로 읽지 않고 소리를 내서 읽는다. 그러면 집중력이 높아진다. 그들은 소리를 내고, 일어나 걸어 다니면서 외우는 것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까를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두가 그렇게 하기 때문이다. 시각과 청각, 움직임을 동시에 활용하기 때문에 뇌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그만큼 효과도 높아진다. 하브루타 친구 없이 혼자 공부할 때도 마치 하브루타 하듯이 걸어 다니면서 스스로 묻고 답하면서 하는 경우가 많다.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에 서서 토라를 읽고 기도하는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앞뒤로 몸을 흔들면서 한다. 가만히 있으면 토라를 읽고 있지 않은 것이고 몸을 움직이면 읽고 있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면 혈액 순환이 잘 된다. 뇌는 우리 몸무게의 2-3%에 불과한 1.4kg에 불과하지만, 산소 소비량은 25%에 이른다. 산소를 가장 많이 소비하는 뇌에 빠르게 혈액을 공급하여 뇌가 빠르게 움직이게 한다. 랍비에 의하면 그런 동작이 시작된 이유는 옛날에 토라가 매우 귀했고 비쌌기 때문이다. 토라 한 권을 쓰기 위해서는 양피지가 필요한 데, 양 30 마리를 죽여야 얻을 수 있었다. 또 토라를 양피지에 필사하기 위해서는 몇 년 동안 써야 했다. 토라 한자 한자를 아주 정성들여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권을 여러 사람이 보기 위해 읽고 뒤로 몸을 젖히고, 다시 다음 사람이 읽고, 이렇게 번갈아 가면서 읽게 되면서 생긴 전통이라는 것이다.
8. 하브루타의 핵심, 질문법
하브루타 공부는 대화와 토론 그리고 논쟁이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질문법이 자리잡고 있다. 질문은 하브루타 학습의 핵심이다. 탈무드 원전을 보면 거의 2천년에 걸쳐 시대를 달리하며 유대인 최고의 지성들이 질문과 답을 해가며 끊임없이 논쟁을 펼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런데 하브루타 학습법의 오해가 존재하는 것 같다. 바로 질문을 누가 만드냐 하는 건데, 결론부터 말하지만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많은 교재에 질문이 나와 있다. 어떤 토론 교재에도 누군가 만든 질문이 있어서 그것만 가지고 대화와 토론을 하자고 하면 그건 진정한 의미의 하브루타 학습법이라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그 질문들은 자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질문은 앎에 대한 갈증과 호기심에서 만들어진다. 내가 배우고 내가 알고자 하는데 남의 질문을 빌릴 수는 없다. 따라서 주어진 본문을 연구하고 공부하면서 생겨나는 의문들이 바로 질문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질문을 가지고 상대방과 토론해야 한다. 논쟁을 벌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런 교육적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래서 최근 여러 가지 탈무드 교재가 많이 나와 있으나 일부는 아무런 질문도 없고 일부는 몇 개의 질문이 이야기 뒤에 붙어 있는 경우가 있다. 어떤 것도 사실 적합한 탈무드 교재는 아니다.
탈무드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단순히 읽고 마는 책이 되지 않으려면 그 이야기를 가지고 대화와 토론 더 나아가 논쟁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바로 질문을 만들어 보는 연습이다. 그런 연습 없이 하브루타 학습법으로 공부하겠다? 그건 어불성설이다.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묻는다. 하브루타 학습법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느냐? 대답은 한결 같다.
"스스로 본문을 연구하시고 질문을 만들어 보시고 그 질문들을 가지고 상대방과 토론하십시오."
9. 질문은 지식과 지혜를 캐내는 도구
질문이 없이는 지식과 지혜를 파헤칠 수 없다. 그래서 질문은 마치 호미와 같다. 감자를 깨내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한데 호미만한 도구도 없다. 만약 호미가 없다면? 물론 다른 도구를 사용하거나 손을 사용해 파야 할 것이다. 지식을 파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질문이 던져졌을 때 소기의 원하는 답을 구할 수 있다. 어부들도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물과 낚시 작살 같은 도구 없이는 물고기 잡기가 어렵다.
배우는 사람이 질문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호미없이 감자를 깨내려고 애쓰는 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상상해 보라.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낚시나 그물, 작살 없이 배를 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이 횡횡하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주입식은 아주 어리석은 교육이다. 호미 없이 감자밭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강사가 알아서 감자를 캐서 적당한 한 입씩 베어물게 하는 것이 주입식 아닌가? 교재에 나와 있는 질문도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니므로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교육에 다름 아니다. 남이 만든 질문은 그 질문자가 의도하는 바를 따르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말인가?
질문이 무뎌서는 안된다. 칼처럼 날카로워야 한다. 어부들이 사용하는 그물의 경우 그물코가 촘촘할수록 아주 작은 치어들까지 다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큰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물코가 그리 클 필요가 없다. 그리고 넓게 펼쳐야 한다. 참치 같은 고기를 잡을 때와 멸치를 잡을 때의 그물코는 전혀 다르다. 또한 고래를 잡을 때는 그물보다는 작살을 사용한다. 작살을 고래의 어디에 박을 것인가 한 번에 고래의 급소에 꽂을 줄 알아야 제대로된 작살잡이라고 할 것이다.
질문자는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으로 핵심을 바로 찔러서 답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두리뭉실 돌아가서는 안된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잡을 고기를 면밀히 공부하는 작업이 없고서는 적절한 그물이나 작살을 선택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많은 훈련을 쌓은 어부가 능수능란하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듯이 질문자도 노련할수록 좋은 질문을 만들어낸다.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훈련은 잠자던 호기심을 일깨우는 좋은 방법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에 질문을 가함으로써 왜 그럴까 생각해 보는 것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질문은 학습동기를 유발하는데 매우 좋다. 며칠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질문만들기 훈련을 마치고 나서 하는 말이 "질문을 만들고 나니까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실 한 문장으로 20개 정도의 질문을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질문들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상상력과 사고력을 필요로 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책을 찾아본다든가 전문가에게 물어본다든가 하는 등의 지식탐구의 과정을 통해 소기의 목적은 물론 그 과정 자체로서도 큰 공부이고 게다가 다른 부수적인 지식이나 지혜들도 얻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질문이 단순히 도구로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탐구정신을 이끌어내는 화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용수 박사님은 "현대과학은 발달하는데 왜 인간은 더 타락하는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유대인 교육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디슨은 왜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올까 하는 의문을 품었고, 프로이드는 암흑에 싸인 정신세계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고 평생을 연구에 바쳤다. 그뿐인가? 뉴턴은 모두가 상식으로 생각했던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사과가 왜 떨어질까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냈다.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의 같은 종의 다양한 새 모양을 보고 왜 그럴까 의문을 품고 연구하여 마침내 진화론이라는 놀라운 이론을 생각해냈다.
하나님은 놀라운 선물들을 우리 자연 속에 숨겨 두셨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려주시지 않고 오직 이성이라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주셨다. 그 이성을 잘 활용하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질문이다. 이성은 모든 사고와 창의의 원조다. 그러나 질문이 없으면 이성은 한갓 저장창고에 불과하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끄나풀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질문이다. 질문하지 않고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이뤄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은 하나님이 세상에 숨겨놓으신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며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이성이라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질문은 지식과 지혜를 캐내는 절대적인 도구다. 위대한 질문은 수많은 발견과 발명, 철학의 끄나풀이 되기도 한다. 질문 없이 가르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질문 없는 교실은 그래서 공동묘지다.
10. 질문 잘하는 법
유대인의 하브루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 만들 줄 알아야 합니다. 답하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답 잘하는 학생보다 질문 잘하는 학생을 더 유능한 학생으로 생각한다지 않는가? 실제로 학생들과 하브루타를 해 보면 아이들이 가장 많이 어려워하는 것이 질문을 어떻게 만드느냐 하는 것이었다. 사실, 훈련이 돼 있으면 참 쉬운데 그렇지 않으면 질문을 만든다는 것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브루타를 막상 하려고 들면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브루타는 끊임없는 질문과 답을 교환하는 학습법이다. 질문을 만들지 않고는 하브루타를 할 수 없다. 바라보고 앉아서 멍 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육은 지독한 주입식 교육이라 질문하는 연습이 전혀 안 되어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도대체 배운다면서 질문하지 않는 것은 뭐고, 가르친다면서 질문을 받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은 앎에 대한 호기심의 표현이며 정확히, 더 많이 알고 싶다는 열정의 표현이다. 우리 교육현장에서 질문이 사라진 후 좀비 같은 학생들만 양산하고 있다. 정말 무서운 일이다.
배움이 고통스럽다면 누가 배우려고 하겠는가? 단순히 무슨 시험을 대비하기 위해 좀비처럼 엎드려 혼자 요리조리 도모해 보는 공부를 누가 평생하겠는가? 현대는 평생교육의 시대이다. 지식과 정보의 수명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조금만 교육 받지 않으면 뒤쳐져서 구시대 소릴 듣는 시대이다. 따라서 배우지 않으면 낙오하기 십상이다. 이런 시대에 좀비처럼 책상에 앉아 떠먹여주는 지식에만 골몰한다면 지루해서 무슨 재미로 공부를 하고 싶겠는가?
그런 병리현상이 교실에서 이미 심각한 징후로 나타나고 있다. 학생들은 더 이상 질문하지도 않고 교사들은 더 이상 연구하지도 않는다. 질문과 답이라는 소통이 끊어진 교실은 잠자는 호텔이 된지 오래. 이런 비극적 상황을 방치한 것이 도대체 누구인가? 누구의 책임인가?
이런 울분을 삼키면서 그래도 우리나라 교육을 살리겠다고 나선 분들이 바로 하브루타를 연구하는 분들이다. 하브루타는 친구와 친구가 서로를 가르치는 공부법이다. 그것은 지식만 나누는 것이 아니고 삶도 나누고 인격도 나누는 토론과 대화의 장이다. 하브루타 공부는 유대인들이 수천 년 동안 신봉해 왔던 천재교육법 중의 하나이다.
어쨌든 하브루타 학습법에서는 질문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하므로 관련하여 설명하겠다.
일단 한 문장으로 30개의 질문 만드는 연습부터 해 보겠다. 별 거 아닌 문장을 가지고 30개의 질문을 만들기 위해서는 거의 모든 것을 의심해야 한다. 다 알고 있는 것도 의심하여 실제로 정확한지 확인하는 것도 질문이 될 수 있다. 하찮다 생각 말고 뭐든 그 문장에 들어 있는 것, 또는 생략된 것, 그리고 상상할 수 있는 것 등으로 충분히 생각을 가다듬어서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 질문에도 물론 질적인 차이가 있어서 간단한 질문부터 아주 복잡한 질문까지 그리고 차원 낮은 질문부터 차원 높은 질문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질문은 다 좋은 것이다. 다만 질문이 중복되거나 하지 않아야 한다. 질문을 잘 만드는 학생이 좋은 학생인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미 다른 글에서 '가난뱅이' 라는 탈무드 이야기 중 첫 문장으로 질문 30개를 만들어보았다. 그것을 유형별로 묶어 설명하겠다.
"옛날에는 가난뱅이였던 벼락부자가 있었다."
가장 쉬운 질문은 의미를 묻는 질문이다.
- 가난뱅이는 무슨 뜻인가요?
- 벼락부자의 '벼락'은 무슨 뜻인가요?
- '벼락부자'는 어떤 뜻인가요?
- '옛날에는' 은 무슨 뜻인가요? 그리고 왜 '옛날에' 하지 않고 '옛날에는' 으로 표현했나요?
- '옛날'은 무슨 뜻인가요?
문장의 표현에 대하여 묻는 질문이다.
- 왜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가난뱅이'라고 표현했나요?
- 왜 그냥 부자가 아니고 벼락부자라고 표현했나요?
느낌에 대한 질문이다.
- 가난뱅이라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 이 문장 전체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나요?
- 가난뱅이였던 사람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었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 당신이 평소에 가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어떤 느낌일까요?
문장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질문이다.
- 벼락부자는 어떤 방법으로 될 수 있나요?
- 갑자기 부자가 되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 가난뱅이는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나요?
- 가난뱅이가 벼락부자가 되면 가장 어색한 것은 뭘까요?
- 가난뱅이가 벼락부자의 생활과 사고방식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이 문장은 비교질문이 가능하다.
- 가난뱅이였다가 벼락부자가 되면 가장 좋은 점과 힘든 점을 생각해보세요.
- 가난뱅이와 부자의 생활을 비교해 보세요.
상대방에게 의견을 묻는 질문이다.
- 당신은 평소에 부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당신이 지금 벼락부자가 된다면 무슨 일을 제일 먼저하고 싶은가요?
- 당신은 벼락부자인 친구에게 어떤 조언을 해 주고 싶나요?
- 노력으로 얻지 않은 재물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 노력으로 얻지 않은 재물이 위험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갑작스런 지나친 부의 획득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갑자기 벼락부자가 되었다가 나중에 타락하거나 재산을 탕진하는 경우도 많던데 그런 것을 경계삼아 가난뱅이가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질문이다.
- 당신이 현재 갖고 있는 재물이 정당하게 노력을 통해 얻은 것인지 살펴보세요.
- 벼락부자가 되는 방법 중에 행운에 의하지 않고 불의하게 얻은 재물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세요.
- 불의하게 얻은 재물이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면 그 재물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 당신은 어떻게 부자가 되고 싶습니까?
- 당신이 생각하는 가난과 부자에 대해 이야기해 보세요.
가정에 대한 질문이다.
- 당신이 만약 벼락부자가 되어 많은 재산이 생겼다면 어떤 유혹이 가장 먼저 닥쳐올 거라고 생각하세요?
- 그 유혹을 벗어나기 위해서 어떻게 좋을까요?
결론적이고 종합적인 질문이다.
- 빈부와 행복과의 관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해보세요.
- 이 이야기에서 배운 내용을 정리해 보세요.
(기타 다양한 질문들이 있을 수 있음)
이외에도 많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다만 이렇게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하지 않아도 된다. 생각나는 대로 질문하되 점점 고차원적인 질문을 하시기 바란다. 질문을 하는 이유는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거나 무식을 탄로내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 질문은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것이다. 정답은 없으며 어떤 질문이든지 수용하고 가야 한다.
또한 하브루타를 할 때 질문자는 무조건 질문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질문을 했더라도 상대방이 반문할 수도 있고 관련된 질문을 나에게 되물을 수도 있다. 그땐 나도 답을 하면서 충분히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다.
질문도 훈련이다.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낼 줄 알아야 하브루타가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질문이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브루타의 목적은 논쟁하여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의견을 수용하여 상대방의 생각을 살펴주는 것이다. 질문을 통해 사고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때로는 힘을 합하여 문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의 토론문화와 확연히 다른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토론 문화이다.
11. 하브루타 학습 순서와 팁
하브루타 학습은 한 사람의 파트너와 함께 하는 유대인의 전통적 학습 방법이다. 학습 파트너들은 차례로 본문을 읽고 토론에 참가한다. 가끔 토론 속에 주석가들의 견해들도 소개할 수 있다. 그들은 함께 반응을 공유하고 통찰력을 얻어낸다. 또한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함으로써 표현의 자유와 창조적 사고를 자극한다.
선생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배우는 전통적인 학습 방법과는 달리, 하브루타에서는 두 사람이 상호작용하며 창조성을 발휘하는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형성한다. 이런 식으로 파트너들은 타고난 지혜에 다가서고 그들 스스로가 선생도 되고 학생도 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일부 사람들에겐 그런 공부에 대한 지능적인 접근을 통해 아하! 하며 감정적인 탄성을 발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여러 차원을 이해하는 지적인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어떤 것이든 간에 하브루타는 지적인 도전 이상이다. 인간적인 감정, 창조성, 직관의 질에 관계돼 있다. 이런 이유로 자신의 모든 것에 관계된 하나의 전체적인 학습의 형태로 보여진다.
12. 하브루타를 위한 몇 가지 조언
하브루타는 어떻게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 될 수 있는지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당신이 본문 한 조각을 공부하면서 그 깊이를 탐험하다 보면 휙 읽고 지나갈 때 놓쳤던 많은 내용들을 알게 될 것이다. 하브루타는 얼마나 많이 달리느냐를 판가름하는 경주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파느냐 하는 도전이다.
논쟁을 피하라. 하브루타의 목적은 누가 옳으냐를 결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순수하고 의미 있는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차이를 만들어가는 데 있다. 실제적인 용어에서도 '그러나'보다는 '그리고'를 사용한다. '그러나'는 거부하는 것이지만 '그리고'는 포함하는 것이다.
이 섹션에서 리더들은 선생보다는 조력자와 도우미 역할에 더 역점을 둔다. 교훈적인 가르침이 있는 경우, 이것은 본문의 중요성 보다는 하브루타 공부의 기술과 과정에서 비롯된다. 리더들은 또한 학습을 더욱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 간단한 묵상기도, 형상화, 성가 등을 도입할 수 있다.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은 개인적이고 감성적으로 실현될 수 있는 창조적인 배움의 경험에 기여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비판하는 자세를 버리는 것이다. 학습 파트너의 개인적인 나눔은 엄격한 비밀로 지켜야 한다. 그래야 하브루타에 성공할 수 있다.
13. 하브루타 학습법의 실제
1. 한 파트너가 전체 본문을 소리 내어 읽는다.
2. 잠시 중단했다가 숨을 쉰다. 아직 대답하거나 토론하지 않는다.
3. 이제, 다른 파트너가 첫 번째 줄을 읽는다. 또는 본문에서 첫 번째 하일라이트가 된 단어까지 읽는다.
4. 당신의 파트너가 방금 읽은 줄에 나타난 행위, 인물들, 언어에서 어떤 감정이나 생각, 또는 질문을 내놓는지 살펴보라. 예를 들면, "나는 사람들에게 말할 때에 나타난 모세의 목소리 톤에 놀랐어. 그는 매우 화가 난 것 같아."
5. 당신의 파트너가 주시하고 있는 것을 비판이 섞이지 않은 단순히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다시 한 번 살펴보라. "너는 모세의 톤에 놀랐구나. 그는 화가 난 것 같은데."
6. 당신의 반응과 생각을 나눠라. 예를 들면, "글쎄, 그의 누나 미리암이 방금 죽었구나. 그는 슬퍼할 시간조차도 없었어. 지도자는 그런 상황에 처하기가 힘이 들지."
7. 당신의 대화를 계속하라. 그리고 다음 문장이나 용어로 넘어갈 준비를 하라. 읽는 순서를 바꾸고 차례로 반응하라.
8. 하브루타를 도와줄 중요한 질문들:
-왜 저 단어가 아니고 이 단어가 쓰였지? 예를 들면 돌 아니면 바위?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은가? 어떤 대화가 생략됐으며 어떤 대화가 가능한가?
- 읽으면서 무슨 생각이 드는가? 본문과 연결된 당신의 인생의 무언가가 있다면 파트너와 나눠라. 비밀을 지켜라 그것이 하브루타를 지키는 방법이다.
- 이 이야기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만약 전통적인 해석을 알고 있다면 그것은 나눠도 좋다.
- 이 본문을 읽고 토론하면서 당신에 떠오른 통찰력은 무엇인가? 있다면 그것을 공부 모임에서 나눠라.
14. 랍비(교사)와 함께 하는 쉬우르(수업)
하브루타와 함께 짝을 이루는 탈무드 공부 방식은 '쉬우르(shiur)' 또는 뛰어난 탈무드 학자들에 의한 단위별 공부이다. 여기 10-200명 사이의 학생들이 교실에 함께 모여서 탈무드 본문에 등장하는 학자의 뛰어난 학문적인 지식을 흡수한다. 여기서도 역시 학생들간, 학생들과 교사간에 활발한 토론이 이뤄져 매우 생동감이 있다.
그런 수업은 마치 무엇과 같은가? 여기에서 예를 하나 들어 보자. 이것이 전형적인 예시바 식 수업은 아닐지 모르지만 첫 10-15분의 현대 탈무드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당신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탈무드를 가르치는 한 학교가 있다. 20-30세가량의 학생 15명이 청강하고 있다. 일부 학생들은 대학을 떠난 지 오래다. 나머지는 최근 대학을 갓 졸업한 학생들이다. 책상 둘레에서 우리는 화학과 교수와 경제학 교수, 물리학 교수, 신문 편집장, 회사 중역, 랍비 학교 학생들까지 만날 수 있다. 그들의 공통점이라면 모두 탈무드 공부의 초보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논리와 도덕적 가르침에 자극받는 것을 좋아한다. 그들은 또 랍비 클레인 교사의 지혜와 재치를 사랑한다. 교사가 수업을 시작하자 일부는 복잡하게 정리된 히브리 글자들의 복사본을 들여다본다. 일부는 영어판 탈무드를 가지고 있다. 교보재로서 칠판도 준비돼 있다. 수업이 시작되었다.
"자 이제 배워봅시다." 랍비가 말했다.
그는 소리 높여 탈무드 원문을 가끔 번역본을 애드립으로 섞어가면 읽는다. 토론하고 있는 본문은 예배를 드리는 데 필요한 종교적 정족수은 최소한 몇 명이어야 하는 질문에 관한 것이었다. 라브 후나(Rav Huna)는 아홉 명과 토라 궤(Aron haKodesh)라고 말한다. 그러자 랍비 나흐만(Rabbi Nachman)이 라브 후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궤가 사람은 아니지 않는가?" 라브 후나는 그의 진술을 교정하고 다시 말한다. "열 사람처럼 보이는 아홉 남자가 묶여야 정족수를 채운다."
13세 이상의 남자 열 사람이어야 자격이 주어진다. 초보 학자들 앞에 놓인 도전은 라브 후나의 진술에 대한 애초의 반대를 설명하는 것이다.
랍비 클레인은 학생들에게 묻는다. "논쟁의 기본 문제를 마무리하는 데 무엇을 주장하시겠습니까?" 이때 물리학자는 몇 년 전에 들은 것을 기억해 내고는 대답했다. "랍비님, 바알 셈 토브(Baal Shem Tov)는 모든 사람은 토라 두루마리와 같다고 설명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궤와 함께 우리는 아홉 개의 토라 두루마리와 각각의 궤를 가지고 있으므로 총 10개 입니다."
랍비 클레인은 대답이 인상적인 듯 말한다. "아, 아주 좋은 통찰력이에요. 그리고 탈무드에서 랍비 나흐만은 그 개념으로 건너 뛰었죠. 왜냐하면 각 사람은 물리적인 사람이 될 필요가 있으니까요. 추가로 하나의 토라 두루마리와 같이 추가돼야 하니까, 그렇다면 궤는 자격이 없는데요."
회사 중역이 이의를 제기한다. "죄송하지만, 라브 후나의 입장을 해석하는 바알 셈 토브의 접근은 억지스럽습니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토라 두루마리 수준으로 될 수 있습니까? 랍비 후나가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가 무엇을 뜻했습니까? 아마도 그것은 당신이 '궤(ark)'를 만들기 위해서 그 단어 "아론(aron)'에 어떻게 모음 부호를 붙이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전혀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완벽한 회의론자인 그 비즈니스맨은 이 답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아마도 실제 본문과는 이질적이라고 느끼는 것 같다.
랍비는 학생들에게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도록 격려하면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최소 인원이 10명이어야 한다는 그 기원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묻는다. 신문 편집장이 나선다.
"랍비님, 그것은 탈무드 메길라 23b에서 찾아볼 수 없나요? 10명이 필요하게 된 이유는 약속의 땅에 대하여 부정적인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꾼을 표현하려고 에다(edah, 회중)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 비유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요?"
"아주 좋아요. 데이빗, 정확한 자료에요." 랍비는 계속해서 묻는다. "이제 랍비 후나의 어려운 진술에 대한 대안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분 없나요?"
랍비 학교 학생이 협조한다. "나는 예배에 필요한 10명의 성인식을 치른 남자들은 그 자체로는 중요하지 않다고 배웠습니다. 열이 성취한 것은 그들이 모든 이스라엘을 대표하게 되었다는 것이지요. 라브 후나는 이 관련성이 토라를 통한 것이므로 그 궤가 열 개에 속한다고 본 것이지요. 그러나 랍비 나흐만은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커뮤니티를 대표할 열 사람이 필요하고 궤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훌륭한 설명입니다." 랍비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신은 어디에서 그런 설명을 들었습니까, 아니면 당신의 의견이에요?"
본질적으로 그 미래의 랍비의 발언은 정답이었다. 그래서 찬사를 과장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랍비 클레인이 사람들을 격려하여 탈무드 자체로만 배우지 말고 깊이 사고하여 그 신비로움에 대한 이해로 더 많은 통찰력을 얻도록 하는 방법이다. 그럼으로써 랍비가 얼마나 학생들을 존중하는지를 보여준다. 그의 지혜와 재치뿐만 아니라 어떤 사람이 탈무드 본문에 대해 단순한 질문을 해오거나 탈무드의 이슈를 해결하는데 옳지 않은 시도를 하더라도 그는 말하는 사람의 답변이 매우 훌륭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만든다.
15. 유대인 랍비들의 하브루타에 대한 생각
/By Rabbi Julian Sinclair
하브루타 또는 파트너와 공부하는 것은 유대인의 전통적 학습의 특징이다. 주제 본문에 함께 머리를 부딪히고 두 사람의 마음이 문제에 함께 몰두하는 것은 거의 항상 하나 보다는 더 낫다.
각각은 다른 사람의 오해를 지적하고 교정하며,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에 의문을 제기하고 날카롭게 하면서 상대방에게 자신의 생각을 분명하게 표현함으로써 홀로 배우는 것보다 훨씬 더 큰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실로, 탈무드는 토라를 혼자 공부하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베라홋 63a)
하브루타는 히브리어로 단순히 친구를 뜻한다. 피르케이 아보스(아비들의 윤리)는 유대인들의 학습에서 친구의 본질적인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스스로 교사가 되어라, 친구를 찾아라, 그리고 모든 사람을 호의적으로 판단하라."
많은 자료들이 학습의 핵심적인 사교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자적인 우정이 없는 인생의 참을 수 없음에 대해 랍비 호니는 다음과 같이 가슴에 사무치게 표현한다. "하브루타 아니면 미투타를," (우정 아니면 죽음을) (타아니트 23a)
일부 사람들은 학습 파트너들 간의 질높은 우정은 그들이 공부하는 내용만큼이나 종교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두 사람의 토라 학자들이 서로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은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신다"라고 탈무드는 말한다.(샤벳 63a)
16. 하브루타 학습의 예-논술
논술은 자기주장을 펼치는 것이다. 그러려면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이 필요하고 사고력도 요구된다. 게다가 그런 생각과 주장을 잘 펼칠 수 있는 기술도 필요하다. 즉 글쓰기 훈련이 필요하다. 독서는 말할 것도 없다.
논술은 그래서 종합적인 사고능력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를 익히는데도 하브루타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일단 하브루타를 통해 주어진 논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교환한다. 논지파악은 기본이다. 그리고 그 의견 각각의 장단점을 파악하고 어떻게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보완할 것인지를 토론한다. 이 과정을 통해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개발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를 정확하게 글쓰기에 반영하면 그것이 논술이다.
논술은 혼자 끙끙대는 것보다 여럿이 함께 모여 토론식 수업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양한 의견을 경청하고 나만의 생각을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하브루타로 논술한 사람의 체험담이다.
“최근에 하브루타 친구와 함께 논술 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주어진 지문과 문제를 가지고 정밀하게 토론하면서 논지를 파악하고 문제에서 요구하는 사항들을 정리했더니 정말 쉬워졌습니다. 지문은 매우 어려운 시험 중의 하나인 법학대학원 입학시험 문제였습니다.
혼자서 처음 지문을 읽고 분석하려 했더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습니다. 여러 번 지문을 읽어도 알송달송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아는 분과 하브루타를 진행하자 서로 질문을 주고받는 중에 어려운 지문이 쉽게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질문에 답하면서 머릿 속에 정리가 되었습니다. 지문이 요구하는 답을 쉽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말하면서 자연스럽게 논술 답안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하는 아이디어들이 떠올랐습니다. 더욱이 그 지문에서 주장하는 결론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이유를 찾으라는 문제에서는 당혹스러운 점도 있었습니다. 지문의 논리가 매우 그럴싸했기 때문에 결론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이유를 찾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이야기를 하던 중에 서로 그 논제의 논리의 단점을 주고받으면서 그 단점을 역이용하여 논리를 전개하면서 쉽게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하브루타 친구와 하브루타를 하기 전에 집에서 몇 번 읽었으나 그런 점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하브루타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내자 절로 탄성이 터지더군요.
하브루타는 대단히 위대한 공부법입니다. 일대일로 친구와 공부한다는 것은 잠언 27:17에서 말씀처럼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이 사람이 사람을 날카롭게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것입니다. 놀랍도록 정확하신 말씀입니다. 뭔가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문답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 하브루타이기 때문입니다.”
17. 참고: 취학 전 아동을 위한 하브루타 학습법
취학 전 아동들은 아직 어리기 때문에 하브루타(일대일 학습)이 어려울 수 있다. 가능하다면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좋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부모님이(대개는 엄마가 하겠지만)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재미있는 동화를 읽어주면 된다. 다만 읽을 때 이것저것 물어 보는 것이 좋다. 질문에 익숙해지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엄마들이 너무 성급하면 안 된다. 너무 목표 지향적이어서 정답만을 강요하면 안 된다는 말이다. 아이에게 질문을 연습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답은 사실 중요치 않다.
유대인들은 답 보다는 질문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질문을 잘하는 학생을 우등생으로 취급한다. 우리와는 정반대지만 그들이 왜 그렇게 질문 잘하는 학생을 우대하는지를 알면 이해가 간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앎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는 것이다. 또 질문을 날카롭게 한다는 것은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경청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질문은 인격형성과 실력향상에 매우 중요한 학습 요소이다. 이것을 일찍이 간파한 유대인들은 질문하지 않고 듣기만 하며 답이나 겨우 몇 마디 하는 학생들을 높이 평가하지 않는 전통을 만들어 냈다. 마빈 토카이어는 “나쁜 답은 있어도 나쁜 질문이란 없다” 라고 딱 잘라 말한다. 그들의 질문 학습 방법은 무려 2500년 이상이나 된 권위 있고 전통 있는 학습법이다. 그들이 현재 수많은 분야에서 수많은 인재를 키워온 학습 키워드는 질문이다.
아이가 질문하는 것을 막고 일방적으로 엄마가 질문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아이가 호기심이 많아 이것저것 물어 보면 정말 좋다. 그런 아이를 학습으로 이끌기에 무척 수월하다. 아이가 질문한다고 답을 그대로 떠 먹여 주면 너무 단순하다. 아이가 그 질문을 해결할 수 있도록 책을 소개한다든지, 인터넷을 찾아보게 한다든지, 여러 가지 2차 학습자료를 통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대인 교사들은 답을 잘 안 가르쳐주기로 유명하다. 그들이 몰라서가 아니다. 그 기회를 통해 학생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 함께 참여하여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이 그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한다. 부모나 교사가 답만 말해주면 그 아이는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인 양 머리에 각인할 것이다. 그렇다면 아이의 호기심이 발전할 가능성을 스스로 제한하게 된다. 그 질문에 대한 답 호기심을 풀어내기 위해 이것저것 참고서적을 찾아가다 보면 더 깊은 앎의 세계로 인도할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에게 교사는 안내자, 도우미 역할에 머문다. 그렇다고 엄마나 교사가 무식하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언제나 깊게 공부하며 어떤 질문에도 다양한 참고서적을 찾아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스스로 찾아보며 공부하는 것이 그 아이가 발전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즉시 답을 주는 것을 유보할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의 의도는 고기를 잡아주지 않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려는 것이다.
이제 엄마가 아이에게 질문을 하는 이유를 말해야 할 것 같다. 호기심 왕성한 아이가 아니라면 질문하기보다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 엄마가 사고력 확장하기 위해 아이에게 질문을 의도적으로 하는 것이다. 답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훈련 과정으로서 말이다. 조심해야 할 것은 깊은 앎의 세계로 그 아이를 인도하기 위해 부담을 주려고 해선 안된다. 아이가 잘 답을 못할 수도 있고 모른다고 시큰둥하게 대답할 수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질문을 잘 하는 연습을 시키는 데 있다. 질문을 받다 보면 아이도 모르게 질문하는 방법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이 그 아이를 살리게 된다. 질문하는 법을 아는 것 자체가 학습을 위한 가장 중요한 기초를 배우는 것이다. 아이도 엄마의 질문에 반문할지도 모른다. 답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엄마도 반문하면서 아이가 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도록 인도한다.
그 과정이 잘 되려면 엄마들도 사실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의 엄마들도 학교 다닐 때 질문하는 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엄마들은 막상 이렇게 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답을 재빨리 먹여 주어 호기심이 발전할 기회를 미리 봉쇄해 버린다. 그렇게 해야 더 공부를 잘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어쨌든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취학해서도 스스로 알아서 공부한다.
엄마들도 따로 모여서 엄마들 스스로 일대일 하브루타 공부를 해나가면 훨씬 아이들을 가르치기 쉽다. 단순히 책을 읽히는 것만이 아이들을 뛰어나게 키우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학습을 주도적으로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아이들을 훈련시켜야 하는 것이다. 엄마들이 이 비밀을 알면 얼마나 좋을까? 유대인 엄마들의 자녀교육의 비밀은 이에 다름 아니다. 우리는 유대인 보다 훨씬 아이큐가 높기 때문에 그들보다 얼마든지 더 잘할 수 있다. 이제부터 아이들에게 떠 먹여주는 공부가 아니라 스스로 떠먹도록 하는 공부를 시켜보자. 그러자면 질문부터 하자. 그리고 격려하자. 칭찬하자. 답을 잘 못해도 칭찬하고 격려하다 보면 아이들은 어느새 학습의 흥미를 갖게 될 것이다.
자료출처 : http://cafe.naver.com/talmudkorea/1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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