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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질문은 지식과 지혜를 캐내는 도구

by 많은이용 2017. 10. 18.




< 질문은 지식과 지혜를 캐내는 도구 > 


질문이 없이는 지식과 지혜를 파헤칠 수 없다. 그래서 질문은 마치 호미와 같다. 감자를 깨내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한데 호미만한 도구도 없다. 만약 호미가 없다면? 물론 다른 도구를 사용하거나 손을 사용해 파야 할 것이다. 지식을 파내는 것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질문이 던져졌을 때 소기의 원하는 답을 구할 수 있다. 어부들도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도구가 필요하다. 그물과 낚시 작살 같은 도구 없이는 물고기 잡기가 어렵다.


배우는 사람이 질문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호미없이 감자를 깨내려고 애쓰는 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상상해 보라. 물고기를 잡으려는 사람이 낚시나 그물, 작살 없이 배를 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주입식 교육이 횡횡하는 것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주입식은 아주 어리석은 교육이다. 호미 없이 감자밭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강사가 알아서 감자를 캐서 적당한 한 입씩 베어물게 하는 것이 주입식 아닌가? 교재에 나와 있는 질문도 사실은 자기 것이 아니므로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교육에 다름 아니다. 남이 만든 질문은 그 질문자가 의도하는 바를 따르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것을 이해하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말인가?


질문이 무뎌서는 안된다. 칼처럼 날카로워야 한다. 어부들이 사용하는 그물의 경우 그물코가 촘촘할수록 아주 작은 치어들까지 다 잡을 수 있다. 하지만 큰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그물코가 그리 클 필요가 없다. 그리고 넓게 펼쳐야 한다. 참치 같은 고기를 잡을 때와 멸치를 잡을 때의 그물코는 전혀 다르다. 또한 고래를 잡을 때는 그물보다는 작살을 사용한다. 작살을 고래의 어디에 박을 것인가 한 번에 고래의 급소에 꽂을 줄 알아야 제대로된 작살잡이라고 할 것이다.


질문자는 날카롭고 예리한 질문으로 핵심을 바로 찔러서 답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두리뭉실 돌아가서는 안된다. 그래서 공부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잡을 고기를 면밀히 공부하는 작업이 없고서는 적절한 그물이나 작살을 선택하거나 사용할 수 없다. 그리고 또한 훈련이 필요하다. 아무래도 많은 훈련을 쌓은 어부가 능수능란하게 물고기를 잡을 수 있듯이 질문자도 노련할수록 좋은 질문을 만들어낸다.


질문을 스스로 만들어 보는 훈련은 잠자던 호기심을 일깨우는 좋은 방법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의심하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것에 질문을 가함으로써 왜 그럴까 생각해 보는 것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질문은 학습동기를 유발하는데 매우 좋다. 며칠 전 수업에서 한 학생이 질문만들기 훈련을 마치고 나서 하는 말이 "질문을 만들고 나니까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사실 한 문장으로 20개 정도의 질문을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질문들을 만들기 위해선 많은 상상력과 사고력을 필요로 한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또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답을 찾기 위한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책을 찾아본다든가 전문가에게 물어본다든가 하는 등의 지식탐구의 과정을 통해 소기의 목적은 물론 그 과정 자체로서도 큰 공부이고 게다가 다른 부수적인 지식이나 지혜들도 얻게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질문이 단순히 도구로서만 기능하는 것은 아니다. 위대한 탐구정신을 이끌어내는 화두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용수 박사님은 "현대과학은 발달하는데 왜 인간은 더 타락하는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유대인 교육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힌 바 있다. 에디슨은 왜 달걀에서 병아리가 나올까 하는 의문을 품었고, 프로이드는 암흑에 싸인 정신세계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라는 의문을 품고 평생을 연구에 바쳤다. 그뿐인가? 뉴턴은 모두가 상식으로 생각했던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사과가 왜 떨어질까 의문을 품었기 때문에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냈다. 찰스 다윈은 갈라파고스 섬의 같은 종의 다양한 새 모양을 보고 왜 그럴까 의문을 품고 연구하여 마침내 진화론이라는 놀라운 이론을 생각해냈다.


하나님은 놀라운 선물들을 우리 자연 속에 숨겨 두셨다. 인간에게 모든 것을 한꺼번에 알려주시지 않고 오직 이성이라는, 다른 동물에게는 없는 특별한 능력을 주셨다. 그 이성을 잘 활용하는데 필요한 것이 바로 질문이다. 이성은 모든 사고와 창의의 원조다. 그러나 질문이 없으면 이성은 한갓 저장창고에 불과하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하나의 끄나풀이 필요한데 그것이 바로 질문이다. 질문하지 않고 위대한 발견과 발명을 이뤄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인간은 하나님이 세상에 숨겨놓으신 보물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하며 탐구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주신 이성이라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다.


질문은 지식과 지혜를 캐내는 절대적인 도구다. 위대한 질문은 수많은 발견과 발명, 철학의 끄나풀이 되기도 한다. 질문 없이 가르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질문 없는 교실은 그래서 공동묘지다.


자료출처 : 교육평론 노벨상 30% 유대인 교육의 비밀, 하브루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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