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가볼만한 곳-전남 목포
3월말이되면 전남 목포 유달산 기슭과 2.7km의 일주도로변에 심어진 개나리꽃 나무들은 노란 꽃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라 관광객과 꽃마중을 나온 시민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사진제공=목포시청
눈물 흩뿌린 자리, 봄꽃 가득 피어났네…
‘목포는 항구’다. 한반도 서남단 끄트머리 항구이기에 봄향기가 먼저 불어온다. 내륙에서야 봄꽃향기 맡아보기 아직은 이르지만, 목포는 이미 봄꽃의 향연을 시작했다. 하지만 싱그러운 새계절의 꽃이 먼저 피어난다한들, 목포로의 여행이 마냥 들뜨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음 한구석이 무겁다. 하지만 빛난다. 놀고 쉬고 먹고, 즐길 거리만 찾는 여행 속에 목포가 더욱 빛나는 것은 우리 역사의 상흔지이기 때문이며, 의미 깊은 근대 유적지들이 곳곳에 뿌리박혀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암울했던 식민지 시절의 설움도 딛고 핍박도 견뎌낸 목포항이 다시 찬란한 봄을 맞았다.
바다만 바라보고 살던 소박한 뱃사람들의 고향 ‘다순구미’ 골목
항구의 비린내와 복잡다단한 삶의 무게가 뒤엉킨 도시가 목포다. 유달산 자락 좁고 가파른 비탈길에도, 허름한 달동네 골목길에도, 옛 일본인들이 살았다는 반듯한 격자형 2층집에도 오래된 사연이 묻어난다. 목포로의 여행은 그래서 더욱 아련하고 애틋하다.
목포에는 일제 개항 무렵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의 풍경이 오롯이 남아 있다. 하당동 일대에 번쩍번쩍한 신도시가 들어서고 개발의 축이 그쪽으로 다 옮겨가면서, 목포의 옛 도심은 성장을 멈췄다. 그래서 목포는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오랜 유럽의 도시들처럼 시간이 깊어가고 있는 중이다.
목포의 옛이야기들은 걸어서 더듬기에 좋다. 근대의 도시를 둘러보는 데는 타박타박 걷는 여정이 어울릴뿐더러, 보아야 할 것들은 대부분 목포역에서 걸음으로도 넉넉히 닿는다. 온금동에서 유달산을 거쳐 일본인 골목, 도심 오거리까지는 서너 시간이면 족하다. 대부분의 길목들이 항구도시의 100년 세월을 담아낸 고단했던 삶의 터전들이다.
목포는 개항과 함께 만들어진 도시다. 그 시가지가 형성되기 전 유달산 자락을 지키며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 살던 원조 목포마을이 있다. 지금의 온금동(사진◀)이다. 따뜻할 온자에 비단 금자를 써서 따스한 햇볕비치는 동네라는 뜻을 가졌다. 토박이말로 ‘다순구미’란 옛 이름을 가지고 있다. ‘다순’은 ‘따숩다’라는 뜻이며 ‘구미’란 바닷가나 강가의 곶이 후미지게 깊숙이 들어간 곳을 말한다. 유달산의 가파른 경사 길에 기댄 채 바다를 굽어보는 온금동은 이름이야 ‘번지르르’하지만 실상은 선착장에 맞닿아 있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주 가난한 달동네다. 하지만 알록달록한 슬레이트 지붕길 사이로 스며드는 봄볕은 그 어느 ‘부자동네’보다 따사롭다.
뱃사람들의 마을인 만큼 동네에 전해지는 사연에도 그들만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온금동 마을 사람들에게는 유쾌하지 않은 단어이지만 이곳엔 ‘조금새끼’라는 말이 있다. 바닷물이 빠지는 조금 때(조차가 적을 때)면 어부들은 출어를 포기하고 모처럼 집에서 쉬어야 했다. 특별히 할 것이 없는 그때가 마을의 집집에서는 아기를 갖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마을엔 유독 생일이 같은 아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을 조금새끼라고 불렀다. 이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아버지처럼 고기잡이 선원이 되고, 함께 배를 타고 나갔다가 풍랑과 싸우다 한꺼번에 생을 마감하는 일도 잦아, 마을에는 제삿날이 같은 집도 많았다. 우물가에는 바다로 나섰다 돌아오지 못한 뱃사람들의 비석도 세워져 있다.
대를 잇는 가난의 사슬을 끊으려 죄다 떠나서인지 마을에선 인기척을 느끼기 쉽지 않다. 노인들만 몇 남아 골목을 지키고 있다. 봄볕이 곱게 스며든 다순구미 골목을 걷고 있자니, 그 따뜻한 이름뜻과는 상반된 ‘조금새끼’들의 애달픈 운명이 애잔하게 마음을 적신다.
아픈 과거 되새기며 차분하게 뒤돌아봐야할 역사학습장
온금동에서 유달산을 에돌아 자리하고 있는 서산동(사진▶) 역시 달동네의 허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아랫집 장독대와 윗집 대문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이 단란하다. 십여 분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탁 트인 목포 앞바다가 가슴으로 밀려든다. 해안가의 경사면을 따라 처마를 맞대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지붕 위로 낡은 고깃배들이 들어오고 나간다. 누추하지만 정겹다.
서산동 언덕 위에 서면 목포의 옛 도심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옛 도심의 노른자위인 유달동 일대 일본인 거리는 산자락 달동네와는 달리 잘 갖춰진 모습이다. 일본인 거리란 당시 유달산 동남쪽 자락과 바다 사이 유달동 일대의 평지에 바둑판 모양의 큰 길을 내고 반듯한 골목과 가옥을 지어 조성한 거리를 가리킨다. 당시 일제는 호남평야의 곡식을 반출하기 위해 호남선 철길을 놓고 목포 항만시설을 확충하는 등 목포를 ‘개발’했다. 그 흔적들이 유달동 일본인 거리다. 유달산 자락 남동쪽 평탄한 지역을 일본인들이 장악하게 되면서, 한국인들은 밀려나 산비탈 쪽으로 올라가야 했다. 유달동 격자형 거리에 일본인 집들이 수두룩하게 남아 있다. 동양척식주식회사, 호남은행 목포지점, 청년회관, 양동교회 등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만 9곳에 이른다. 치욕의 역사가 깃든 거리도 이젠 차분히 뒤돌아봐야할 역사학습장으로 다가온다.
근대사 유적을 가장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구 일본영사관 건물(사진◀)이다. 목포 최초의 서구식 건물로 1900년 완공됐으며 일본인 거주 지역을 내려다보는 목 좋은 위치에 들어서 있다. 붉은 벽돌로 지은, 우진각 지붕을 한 르네상스 양식의 2층 건물이다. 인과응보를 받는지, 이 건물은 목포부청사, 목포시립도서관, 목포문화원 등으로 용도를 바꾸면서 떠돌고 있다.
바로 아래 길가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도로인 국도 1.2호선 기점비가 서있다. 의주가 종착지인 1번 국도와 부산이 종착지인 2번 국도가 이곳에서 비롯했다. 골목으로 내려서면 일제 수탈의 대명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현 목포근대역사관)가 모습을 드러낸다. 내부에는 예전에 금고로 쓰던 방도 남아 있으며 일본인들이 활보하는 목포 옛 거리와 관광지 풍경, 체포된 대한독립군과 군대위안부들에 가한 일제의 만행을 담은 사진들이 전시돼있다. 특히 처참하게 유린된 어린 군대위안부들의 모습이 담긴 희귀 사진들이 가슴 아프다.
3월말~4월초 유달산 개나리 장관, 유년의 추억을 찾아서
목포의 ‘아픈’ 근대사로 무거워진 마음을 ‘예쁜’ 봄으로 달래보자. 3월말이면 유달산이 새봄 꽃잔치를 준비하는 시기다. 동백은 발치에 붉은 꽃송이를 떨어뜨리기 시작했고, 매화가 한창 고고한 향기를 내뿜는다. 유달산은 본디 개나리 산이다. 손가락 모양의 일등바위·이등바위를 떠받치듯 둘러싼 개나리가 노란 꽃망울을 터뜨린다. 벚나무들도 분홍빛 꽃봉오리를 내밀었다. 4월초까지는 산자락 대부분이 노랗고 하얀 꽃안개에 휩싸여 장관을 이룬다. 매년 4월 첫 주에는 유달산 꽃축제가 열리지만 올해는 구제역 여파로 축제들은 취소됐다. 그래도 변함없이 꽃은 만발한다.
유달산 봄꽃 감상 포인트는 순환도로를 달리며 개나리·벚꽃 드라이브를 즐기거나, 꽃길을 걸어올라 산등성이 대학루·달선각·유선각 등에서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하는 것이다. 순환도로 중 개나리꽃이 가장 멋스런 곳은 노적봉에서 조각공원에 이르는 2km구간. 유달산 자락을 휘감아도는 순환도로의 유려한 곡선을 따라 개나리꽃이 만개하고 도로 아래는 일제 때의 건물까지 남아있는 구시가지가 정겹게 펼쳐진다. 조각작품 104점이 전시된 조각공원은 개나리 산수유 벚나무 동백 등 다양한 봄꽃이 피고 지는 산속의 화원. 유달산에 옹기종기 흩어져 있는 정자에서 목포 시내를 내려다보면 지나온 역사의 흔적이 한눈에 그려진다. 봄바람에 실려온 꽃향기를 맡으며 시원하게 조망되는 거리와 항구, 목포 앞바다를 둘러볼 수 있다.
참! 목포는 식당과 슈퍼 코앞을 지나는 기찻길(사진▶)이 남아 있는 정겨운 추억여행지이기도 하다. 유년시절이 그리워 질 때, 개발의 소용돌이 속 우리의 근현대 과거들이 대부분 사라져가고 있다는 것이 새삼 아쉬워질 때. 목포로 가서 위안을 삼아보자. 허름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달동네, 부서진 담벼락과 지붕, 좁고 지저분한 골목 등 약간은 불편한 풍경일테지만, 왠지 그 속에서면 가슴이 아련해지며 뭉클한 위로를 얻는다. 빛바랜 흑백사진 앨범을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시간을 되새김질 하는 여행지, 목포다.
김경희 기자
노령산맥의 맨 마지막 봉우리이자 다도해로 이어지는 한반도 최서남단에 위치한 유달산은 4월이 되면 개나리꽃과 동백꽃, 그리고 벚꽃, 살구꽃 등 봄꽃이 만개한다.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의 경관이 시원스레 펼쳐지며, 서해안고속도로의 종착지 북항회센터 일원에서는 봄꽃의 진수와 함께 싱싱한 회 맛도 볼 수 있다. 사진제공=목포시청
ㅣ여ㅣ행ㅣ정ㅣ보ㅣ 사진·자료제공 = 한국관광공사
● 당일 추천 여행코스
온금동→유달산→서산동→이훈동정원→옛 일본영사관→목포근대역사관→오거리
● 1박2일 추천 여행코스
- 첫째날 : 온금동→유달산→서산동→이훈동정원→옛 일본영사관→목포근대역사관→오거리→하당(숙박)
- 둘째날 : 갓바위→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자연사박물관→삼학도→북항
● 목포 5미
꽃게무침,홍탁삼합,갈치조림,민어회,세발낙지 요리를 목포 5미(味)로 꼽는다. 홍어회의 구릿한 냄새와 톡 쏘는 맛 때문에 먹지 못한다면 아쉬운 일이다. 홍어회 한 점을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알싸한 기운이 온 몸으로 퍼진다. 홍어회처럼 맛으로 정신을 활짝 깨우는 오묘한 음식이 어디 있는가. 홍탁삼합(홍어,돼지고기, 김치 + 막걸리)을 맛보며 남도의 미각에 취할 일이다.
● 대중교통 정보
- 버스 :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목포행 40분마다 출발
동서울 하루 6차례 운행. 4시간 소요.
- 기차 : 서울-목포 KTX 1일 9회, 새마을 1일 2회
코레일 1544-7788
● 자가운전 정보
목포IC : 북항방면 직진-죽교동-목포해양대학-온금동
● 관련 웹사이트 주소
- 목포시청 www.mokpo.go.kr
- 목포문화관광 tour.mokpo.go.kr
● 문의전화
- 목포시청 관광기획과 061-270-8430
- 목포근대역사관 061-270-8728
- 목포역관광안내소 061-270-8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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