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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진정한 '다윗' 되기

by 많은이용 2014. 7. 8.

진정한 '다윗' 되기



다윗의 승리는 지혜·전술 결과… 자만한 골리앗의 실패는 順理
브라질월드컵에서 無勝 탈락… 한국팀, 다윗 같은 전략 부족
"공은 바라는 쪽으로 오지 않는다" 인생의 선수들, 지혜롭게 뛰어야

 

군대는 갔다 오지 않았지만, 때가 때이니만큼 축구 이야기로 시작하자. 1994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브라질과 이탈리아의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다. 조지아주립대 연구팀은 경기 전과 후에 응원단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각각 측정했다. 테스토스테론은 성(性) 충동을 촉진하며 더욱 공격적으로 만드는 호르몬이다. 경기는 승부차기 끝에 브라질이 이탈리아를 이겼다. 그 결과 브라질 팬들의 수치는 평균 28% 상승했고, 이탈리아 팬들의 수치는 평균 27% 하락했다. 뇌과학 혹은 심리학 관련 교양서 '승자의 뇌(腦)'에 소개된 내용이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한국은 16년 만에 무승(無勝)으로 조별 리그에서 탈락했다. "한국이 훌쩍이며 월드컵을 떠났다"고 ESPN은 보도했다. 아무리 승패와 상관없이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해도 한국인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아마 27% 정도 떨어졌을 것이다. 더욱이 이번 대회에서는 초반에 약체팀이 돌풍을 일으키며 스페인·잉글랜드·이탈리아 등 강팀들이 16강에도 오르지 못하고 탈락하는 이변이 속출했던 상황이어서 더욱 그렇다. 한국팀은 이런 강팀들을 탈락시킨 이변(異變)의 주인공들이 부러웠을 것이다. 월드컵에서 한국팀은 대부분 자신보다 강한 팀과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윗과 골리앗'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에 따르면 다윗의 승리는 기적과 행운이 아닌 지혜와 전술의 결과였다. 그런데도 '불가능해 보이는 승리'의 비유로 잘못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다윗은 청동 투구를 쓰고 전신 갑옷을 두른 210cm 거인이었던 골리앗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양치기였던 다윗은 맹수와 싸우면서 터득한 방식으로 속도와 기동성을 살려서 느리고 시력이 약한 골리앗을 향해 정확하게 돌을 던진 후에 쓰러진 그의 목을 벴다.

다윗의 승리는 강력하고 힘센 것들이 언제나 겉보기와 같지 않다는 점을 예리하게 간파한 지혜와 그것을 겁내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준 용기에 기인한다. 강점의 불리함과 약점의 유리함은 기적이 아닌 과학, 행운이 아닌 전략, 실적이 아닌 훈련의 결과라는 의미도 된다. 체력·경험·수비 면에서 한국팀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낸 이번 윌드컵 대회였지만 무엇보다 다윗과 같은 전략이 부족했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 크다. 다윗은 골리앗이 원하는 백병전(白兵戰)이 아니라 자신이 잘하는 투석전(投石戰)을 펼쳐서 승리를 쟁취했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과 가능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은 '필요'와 '충분'의 차이에서 판가름나기 쉽다. 필요해서 배운 것은 쉽게 배운 것보다 훨씬 강력하다. 이미 충분하다는 마음은 바로 옆에 있는 기회도 놓치게 만든다. 자신의 한계나 불운을 상징하기도 하는 골리앗과 싸울 때 필요한 것은 절박함이고, 충분한 것은 실망감이다. 다윗은 필사적이기에 이겼고, 골리앗은 자만했기에 졌다. 그래서 다윗의 승리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고, 골리앗의 실패는 배리(背理)가 아닌 순리(順理)이다. 모든 다윗은 이기고, 어떤 골리앗도 진다.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의 맹점을 소설화한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 속에는 영화화했을 때는 생략될 수밖에 없었던 축구에 대한 인문학적 정보가 가득하다. 가령 1957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된 후 축구광(狂) 카뮈가 한 말은 이렇다. "공은 어느 누군가가 오기를 바라는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어디 축구뿐이랴. 그래서 필요한 전략이 바로 '나를 지배하라. 그러면 경기를 지배할 것이다'라는, 예전에 유행했던 CF 카피일지도 모르겠다. 진정한 다윗은 남이 아닌 스스로가 등번호 10번을 달고 절박하면서도 지혜롭게 뛰는 인생의 선수들이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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