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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수강생 평균 연령 69세 "늘 마지막이라 여기며 공부"

by 많은이용 2014. 11. 28.

수강생 평균 연령 69세

"늘 마지막이라 여기며 공부"

-숙대 평생교육원 동양사 강의
27년째 이어지는 長壽 수업 "역사가 연속극보다 재밌어"
열기 후끈, 他대학서 참관도

숙명여대 평생교육원 동양사 강의에는 '이번 수업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강의실을 찾는 할머니들이 있다. 수강생 31명의 평균 연령은 69세. 55세 막내부터 81세 맏언니까지 있다. 27년째 이어지는 장수(長壽) 수업이다.

이번 학기에 수강하기 시작한 할머니부터, 무려 46학기를 연속으로 등록한 최영복(74)씨까지 다양하다. 수강료는 한 학기 31만원인데 21학기째, 41학기째 등록을 하는 수강생들에게 각각 수강료를 면제해주고 있다. 올해엔 5명이 혜택을 받았다.

할머니들은 일주일에 한 번 매주 목요일 있는 강의를 정말 마지막인 것처럼 듣는다. 조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교수의 말을 빼곡히 노트에 적는다. 고려대 사학과 교수가 "이 할머니들이 너희보다 아는 것도 많고, 더 열심히 공부하신다"며 학생들을 데리고 와서 수업을 참관한 적도 있다. 25년째 같은 수업을 듣는 김경애(71)씨는 "다음 주에 또 올 수 있다는 기약이 없다"며 "언제 건강이 나빠질지 몰라 늘 '마지막 수업'이라고 생각하면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동양사 강의를 듣던 할머니 수강생들이 강사의 농담에 웃고 있다.
 지난 2일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동양사 강의를 듣던 할머니 수강생들이 강사의 농담에 웃고 있다. 수강생 31명의 평균 연령은 69세로, 막내는 55세, 맏언니는 81세다. 이 수업이 27년째 이어질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학교 측은“배움에 대한 할머니들의 열정 덕”이라 했다. /이태경 기자
할머니들은 '더 배우지 못한 한' 때문에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다. 올해 여든한 살인 홍인경 할머니는 열두 살 되던 해 6·25전쟁이 터졌다. 1·4 후퇴 때 부산으로 피란을 갔다. 범일동 운동장에 천막을 치고, 가마니 자루를 깔아서 공부했다. 억척스레 길러낸 1남 1녀가 품을 떠나고, 남편은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그제야 범일동 천막 교실에서 공부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제대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솟았다. 그렇게 숙명여대 평생교육원에서 동양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벌써 22년째다.

지난 1987년 당시 첫 강의에 출석했던 중년 여성들이 이제 할머니가 됐다. 강의실 자리마다 두꺼운 돋보기 안경과 방석이 놓였다. 하지만 수업 시작 전에는 마치 여고생들처럼 수다를 떤다. "언니, 스카프 하니까 젊어 보인다" "보청기 끼고 수업 들으니까 훨씬 낫더라고" "요즘 아픈 데는 없어?" "교수님 오셨다~아" 맨 앞자리에 앉은 수강생이 외치면 일동은 허리를 곧게 세운다.

강의를 맡고 있는 이는 이 교실에서 가장 어린 전경숙(44) 교수다. 매 학기에 한 번 가는 현장 답사가 가장 인기다. 할머니들은 집합 시간이 새벽이고 날씨가 궂어도 늦는 법이 없다. 지난 학기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신 전북 전주의 경기전을 다녀온 데 이어, 이번 학기에는 일본 후쿠오카 일대를 갈 계획이다.

할머니들은 최근 잇따라 불거지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 분해 오히려 더 열심히 역사 공부를 한다고 했다. 이정자(72)씨는 "역사 왜곡 발언이 나올 때마다 더 열심히 배워서 반드시 손주에게 가르쳐준다"고 했다. 맏언니 홍씨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위안부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데 대해 "나는 위안부를 두 눈으로 본 세대인데, 아베는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다"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두 눈을 뜨고 있는데, 그런 거짓말을 대놓고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습다"고 말했다. 4년째 강의를 하는 전 교수는 "일제강점기의 참상이나 6·25전쟁 때 이야기는 학계보다 어르신들이 훨씬 더 풍부하게 알고 계신다"고 했다.

세상을 다 아는 것 같은 이 할머니들도 개강 첫날에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컴퓨터로 수강 신청을 할 줄 모르는 할머니들은 강의 첫날에 빳빳한 현금을 싸 들고 강의실로 찾아오는 것이다.

 

 

출처 : 조선일보        2014.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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